[짬그교14] 그래서 선생님은 누구 뽑을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누구 뽑을 거예요?
[짬그교14] 올리버 제퍼스의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어요!>
"5월 9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라 학교에 나오지 않습니다."
주중 하루를 쉬게 되었다는 말에 3학년 꼬마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10살밖에 안 된 어린이들에게 5월 9일은 나라의 대표자를 뽑는 날이기에 앞서 빨간 날이었다. 아직 정치가 뭔지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조기 대선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마냥 노는 날로 알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중요한 행사였다. 해맑은 녀석들의 눈동자를 보며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채연이가 춤추는 남자애들에게 일침을 놓았다.
"투표하라고 쉬는 거야. 나는 엄마 아빠 따라 투표소에 같이 갈 거야."
부모님과 투표소에 같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는지 학생들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굵어진 눈동자가 동시에 담임을 향했다.
"저희도 투표할 수 있어요?"
"투표소까지는 가도 되는데, 투표용지에 도장 찍는 기표소에는 못 들어가요."
"아~ 나 뽑고 싶은 사람 있는데!"
여기저기 익숙한 후보들의 이름이 들려왔다. 확신에 찬 그 목소리만 듣고도 그 집안의 정치 성향이 어떤지 가늠되었다. 말이 나온 김에 어떤 사람이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냐고 물어보니 22명의 대답이 가지각색이었다. 죄를 짓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대통령, 나라를 안 뺏기고 잘 지키는 대통령, 사람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대통령... 장난칠 궁리만 하는 꼬마들인 줄 알았는데 대답이 제법이었다.
"선생님은 누구 응원하세요?"
속으로 묻지 않기를 바랐던 질문이 승표 입에서 튀어나왔다. 난감한 표정으로 생각 좀 해보겠다고 둘러댔다. 그래도 어물쩡 넘어갈 수 없어 쉬는 시간에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승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며 책을 펼쳤다.
똑같이 생긴 콩콩이들 ⓒ주니어김영사
피부가 희고 팔다리가 가는 콩콩이란 존재들이 있다. 아주아주 많은 콩콩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똑같았다. 헤어스타일도 똑같고, 커피 마시고 싶은 생각도 똑같고, 그림을 벽에 걸려고 하는 행동도 모두 똑같았다. 콩콩이들은 한 데 모여 있으면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다.
"살찐 졸라맨 같아요!"
추억의 졸라맨을 어찌 알았는지 지환이가 끼어들었다. 졸라맨은 시뻘건 헬멧이라도 썼지 콩콩이들은 판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콩콩이들 중 한 명이, 그러니까 '콩돌이'가 예쁜 스웨터를 뜬다. 밝은 주황색 털실로 짠 스웨터 가운데에는 붉고, 흰 지그재그 무늬가 선명하게 박혀있다. 하지만 모두가 콩돌이의 스웨터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콩돌이는 스웨터를 자랑하고 싶어서 어디든지 입고 다녔다. 콩돌이가 지나가면 콩콩이들은 입을 가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수군거렸다. 사실, 다른 콩콩이들은 콩돌이의 스웨터를 끔찍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스웨터를 입으니까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어떤 콩콩이는 마시던 커피잔을 떨어뜨리고, 다른 누구는 끔찍한 탄성을 지르고, 어린 콩콩이는 엉엉 울기까지 한다.
'콩콩이들은 모두 똑같아야 한다는 걸 콩돌이는 모르는 걸까요?'
이 문장을 천천히 읽자, 전부 다른 옷을 입은 22명의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학 후 같은 옷을 입고 온 아이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양말, 신발, 머리방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다른 행색을 하고 있었다. 소원이는 콩돌이 스웨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아쉽지만 종이 속에 사는 콩돌이는 소원이 말을 듣지 못했다.
하나에서 둘이 되면 시선이 바뀐다. ⓒ주니어김영사
콩돌이는 콩아에게 간다. 콩돌이를 비웃는 남들과 달리 콩아는 스웨터를 관심 있게 지켜본다. 그러고는 콩아도 콩돌이처럼 스웨터를 뜬다. 콩돌이와 콩아는 똑같은 스웨터를 나란히 입고 다닌다. 콩아와 함께 있는 콩돌이는 기운이 넘치고 자세도 당당하다. 다른 콩콩이들은 더 이상 콩돌이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
다른 콩콩이들도 달라지고 싶었는지 한 명씩 한 명씩 새 스웨터를 입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콩콩이들은 모두 오렌지 빛깔이 도는 스웨터를 입는다. 예전과 똑같은 콩콩이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무늬까지 똑같은 스웨터를 걸친 콩콩이들이 광장에 가득 찬다. 빼곡히 들어찬 콩콩이들 숫자를 손가락으로 일일이 세던 다한이가 숨을 헥헥거렸다.
"얘네 바보 같아. 또 똑같은 옷 입었어. 아까랑 다른 게 뭐야?"
뼈 있는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한이의 비웃음을 들었던 것일까? 콩돌이는 모자를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콩돌이의 생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책을 엎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멋진 대통령은 다음 장에 있어요."
"콩돌이가 모자 쓰고 대통령 돼요?"
"콩콩이들이 전부 모자 따라 쓰는 거 아니야?"
애들은 한결같이 모자 얘기를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짜잔!
서로 다른 콩콩이들 ⓒ주니어김영사
희끄무레한 콩콩이들은 어디 가고 온몸이 색으로 뒤덮인 콩콩이들이 등장했다. 나폴레옹 모자를 쓴 콩콩이도 있고 꽃장식이 달린 노란 모자를 쓴 콩콩이도 있다. 콩콩이의 화려한 차림새에 정신을 빼앗겼던 아이들이 다시 따져 물었다. 도대체 선생님이 응원하는 후보가 누구냐고. 지금 말해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조바심 난 십 대들이 무릎을 들썩거렸다. 나는 침착하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보고 있잖아요. 이렇게 서로 다른 콩콩이들이 오천만 명 있어도 차별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대통령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