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
가벼운 점심 식사에 한계가 왔다. 두 달째 동학년 선생님들과 밥을 같이 먹고 있다. 날마다 논의 거리가 쌓여있으니 약간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어 점심 겸 회의를 가진다. 시켜먹는 음식이라 해봐야 분식, 중식과 패스트푸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묵탕과 김밥, 돈가스와 라볶이, 햄버거 세트 그리고 볶음밥.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음식이 그득 나오던 급식 생각이 간절해진다.
4월 16일 온라인 개학 이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차선이나마 온라인 개학을 했으니 내심 급식이 나올 줄 알고 기대했는데 급식실은 조용했다. 조리사 분들이 출근했지만 식사 준비는 못 하시고, 각 교실을 소독하는 대체 업무에 투입되었다. 학생이 없는 학교는 급식을 시작할 수 없다고 했다. 현행 학교급식법은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에게만 학교급식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돌봄 교실에 참여한 학생을 위해 4월 27일부터 급식이 재개되니 교직원도 신청 가능하다고 했다. 급식비는 평소의 곱절에 달하는 하루 7000원, 인원수가 50명 이하라 재료비 단가가 뛰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얼른 신청은 했지만 27일까지 기다리기 힘들었다. MSG로 버무린 배달 음식이 속에 부대꼈다. 힘든 건 동료 선생님도 마찬가지라 점심시간에 외출을 내고 학교 옆 순두부집으로 갔다. 뜨끈한 김치 순두부가 뚝배기에서 끓고 안경에 김이 서렸다. 흑미밥 한 숟갈에 순두부를 밀어 넣었다. 시금치나물과 김치 비지 버무리 접시가 두 번 채워지고 비워지는 동안 우리 앞에 놓인 밥과 국도 뱃속으로 사라졌다. 오랜만에 밥다운 밥이었다.
밥을 먹는 내내 선생님들은 좋은 식사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들 맞벌이 가정이니 아침은 대충 먹고 저녁이나 집에서 해 먹는데, 급식처럼 맛과 영양을 다 갖추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한 끼 당 평균 3000원 내외의 돈을 내고 급식만 한 식사를 경험하기 어렵다.
밥에도 차별이 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을 지나쳤다. 한 아이가 봉지를 달랑거리며 문을 나서고 있었다. 시간대로 보아 점심을 해결하러 온 모양이었다. 급식이 나오지 않는 방학 때 편의점에 밥 먹으러 오는 애들을 종종 본다. 지금은 온라인 학기 중이지만 급식이 없다는 점에서 식사 패턴은 방학이나 다름없다.
편의점은 형편이 안 좋은 아이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곳이다. 지자체는 결식아동 지원 사업에 따라 취약 가정 어린이에게 급식 카드를 준다. 아동 급식의 단가는 최저 4000원에서 최고 7000원까지 지자체 곳간 사정에 따라 차이가 난다. 부자 동네는 결식아동 밥도 후하게 먹인다.
아동급식카드의 존재는 긍정적이지만 맹점도 있다. 우선, 급식카드는 가맹점이 아니면 결제가 불가능하다. 최근 경기도에서 기존 마그네틱 급식카드를 체크카드와 같은 IC카드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올해 하반기에 시스템 개선이 완료되면 급식 카드 가맹점 수가 10배 이상 늘어난다. 그러나 이 역시 지자체의 역량에 달려 있으므로 모든 아이들이 혜택을 받는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급식 단가가 5000원 이하로 낮은 지자체는 식당에서 한 끼 먹기에 금액이 부족하다.
애들은 식당에 가서 급식 카드 내미는 게 부끄럽고, 혼자 앉아 먹기 멋쩍기도 하여 보통 편의점을 이용한다. 기왕 편의점으로 갔으면 김혜자 도시락, 백종원 도시락이라도 양껏 먹으면 다행이련만 그 돈으로 소시지와 라면, 삼각김밥 따위를 바꿔온다. 고열량에 합성첨가물이 잔뜩 들어있다. 야채와 과일은 비싸고 맛없다고 고르지 않는다.
변해버린 선생님의 마음
결식아동에게 학교 급식은 일상에서 만나는 가장 훌륭한 식사다. 코로나19 전, 적어도 학기 중 하루 한 끼는 영양소가 고루 갖춰진 한 상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전례 없는 온라인 학기를 보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무상 급식의 의미를 떠올려보면 밥의 사각지대에 몰린 아이들을 모른 채 하기 어렵다. 무상 급식은 공교육이 아이들의 건강과 영양까지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전라남도는 기존에 편성되어 있던 급식 관련 예산을 '친환경농산물 가족 꾸러미 사업'으로 사용하고 있다. 학생 한 명당 4만 원 수준으로 식료품 키트를 만들어 가정에 배포한다. 무상 급식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아이들을 먹이겠다는 의지다. 우리 학교도 27일부터 긴급 돌봄을 받는 학생들을 위해 급식을 제공한다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여전히 밥이 개인의 몫이다.
매년 점심밥을 두 번, 세 번 욱여넣는 애들을 만난다. 신규 교사 시절에는 적당히 먹으라 가르쳤다. 비만은 몸에 해로우니 차라리 소식이 건강에 이롭다고 배부른 소리를 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선생님 노릇이 익숙해질수록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저 체하지 않게만 먹으라 한다. 밥 먹으러 학교 오는 애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