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맡긴 부모의 처지
“공개수업 참관 신청서 다 냈죠?”
학기마다 한 번씩 있는 공개수업을 앞두고 학부모 참관 신청서를 받았다.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스카우트 선서식, 체육관 청소, 어린이날 체육대회….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이었다. 달리 이야기하면 학교에는 늘 오는 학부모만 왔다.
공개수업 당일, 복도에는 수업 20분 전부터 기다린 엄마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모의 존재를 확인한 아이들은 기세가 올랐다. 쉬는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와서 엄마가 근무 교대를 했다느니, 휴가를 썼다느니 하며 귀띔을 해주었다.
“오늘 엄마가 일 생기면 못 갈 수도 있어. 웬만하면 갈게.” 이렇게 집에서 엄마 아빠한테 애매한 대답을 듣고 온 녀석들은 연신 뒷문을 힐끔거렸다. 복도에 엄마 얼굴이 안 비치면 열 살짜리 아이들은 초조해했다. 참다못한 일부 아이들이 까치발로 창밖을 내다보거나 급하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이제 집에서 나가고 있어!”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김보경
학부모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학생들도 책상 정리를 마친 오전 9시59분,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아이가 튀어나왔다. 아이는 내 셔츠 자락을 잡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한테 전화해도 돼요? 엄마가 안 와서 쓸쓸해요.” 아이의 엄마한테 가게 일이 바빠서 못 온다고 사전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당장 수업을 시작해야 했지만 통화를 못하게 하면 아이가 흥분할 기색이 있어서 허락했다. 엄마의 대답이 신통치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으며 눈을 부라렸다. 아이는 수업 시간 내내 울적해하며 책상에 머리를 박거나 동물 소리를 냈다. 부모가 학교에 오지 못한 다른 학생들은 그 아이처럼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평소보다 약간 의기소침했다.
수업 참관을 마친 엄마들은 자녀를 한 번씩 꼭 안아주고 돌아갔다. 품에 못 안긴 아이들은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부모님이 안 온 애들을 한 명씩 따로 불러 사탕을 쥐여주었다. 불쑥 내민 사탕에 영문을 몰라 하기에 오늘 수업 열심히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부모가 못 온 까닭을 물어보니 대부분 직장 문제가 걸려 있었다. 이 중 다섯 명은 작년과 재작년에도 엄마 아빠가 못 왔다고 했다.
“당신들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내가 겪은 그 다섯 아이의 학부모는 평범한 분들이었다. 상담주간에는 불참했지만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 학교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어쩌다 운동회 날이나 학예회 때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일하는데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등 굳이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해주었다. 자식 맡긴 부모의 처지가 그랬다.
열심히 사는 부모와 사랑을 바라는 아이들. 가족과 행복하게 살려고 맞벌이도 하고 야근도 하는데 그 때문에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교사에게 양해를 구하는 학부모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8시에 퇴근하는 한 아이의 엄마는 자식들 아침밥과 저녁밥을 꼬박꼬박 챙긴다고 했다. 그 엄마가 밥만 하겠는가? 청소하고 빨래하고 애들 씻기고…. 이미 초인적 일상을 꾸려가는 그녀에게 공개수업 불참을 두고 교육에 열의가 있니 없니 따지는 건 어리석어 보였다.
합계 출산율 1.17명(2016년) 시대에 아이를 낳아 든든하게 먹이고, 깨끗하게 입혀 학교 보내는 것만으로도 부모들께 감사드린다. 너무 자식에게 미안해하지 말기를,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교사로서 꼭 말씀드리고 싶다.
시사인 제515호 <학교의 속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