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그교13] 길바닥에 누운 아이, 왜 모두 따라 누웠을까?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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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2 15:18
길바닥에 누운 아이, 왜 모두 따라 누웠을까?
[짬내어 그림책 읽는 교실13] 정진호가 쓴 <위를 봐요!>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는 소녀가 있다. 베란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행인들 정수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이름은 수지다. 가족여행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친 수지는 휠체어를 탄다. 그녀의 취미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다.
책을 펼치면 독자들은 수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5:5로 나뉜 가르마, 난간을 꼭 쥔 두 손, 뾰족한 코를 가진 수지를 약간 위에서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내려다보는 수지를 내려다보는 독자. 이 독특한 시점은 주인공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조용한 새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도대체 수지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구경하는 것일까?
검은색 가로수와 보도블록 그 위를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가방을 든 사람,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 정도만 구분할 수 있다. 검정 머리만 보이는 개미 같이 작은 사람들은 빠르게 길을 지나간다. 우리 반 시후가 이마가 넓어 탈모로 추정되는 아저씨 한 명을 찾았을 뿐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다.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 ⓒ은나팔
"비가 오나 봐요. 우산을 썼어요."
사람을 의미하던 까만 점이 큰 팔각형 모양으로 커졌다. 수민이는 우산이 다 시커먼 색이라고 외쳤지만 다른 아이들은 비 오는 게 뭐가 새롭냐는 듯 심드렁하기만 하다. 우울한 흑색 풍경이 흐릿해지며 수지 내면의 목소리가 비 오는 거리 위에 울려 퍼진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
걷지 못하는 소녀의 간절함이 닿았던 것일까? 어느 날 기적처럼 한 아이가 수지를 발견한다. 소년은 그냥 휙 보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말까지 건다.
"거기서 보면 제대로 안 보일 텐데?"
"응, 머리 꼭대기만 보여."
"그럼 이건 어때?"
여기서 딱, 책을 접었다. "그럼 이건 어때?"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던 아이들이 빨리 다음 장을 넘기라고 아우성쳤다. 서진이는 손톱으로 두꺼운 책 표지를 톡톡 두드렸다. 접었던 책을 더 깊숙이 끌어안으며 "너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니?"라고 물었다.
"소리를 지르라고 할 거예요."
"망원경을 쓰라고 해요."
모두들 수지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요청했다. 방법이야 달라도 어찌 되었건 수지가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러 뜸을 들이며 듣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자꾸 고개만 끄덕거리니 답답해진 아이들이 빨리 답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마지못해 들어주는 척 책장을 슬며시 넘겼다.
"헐! 애가 누웠어!"
수지가 위해 바닥에 누운 아이 ⓒ은나팔
수지를 처음으로 바라봐 준 소년이 바닥에 누웠다. 사람들 머리 꼭대기만 보던 수지가 몸 전체를 잘 볼 수 있도록 지저분한 길에 몸을 누였다. 수지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던 아이들이 자기 이마를 탁! 쳤다. 책을 먼저 읽은 담임도 똑같이 무릎을 쳤는데 아이들도 그랬다. 내가 변하면 되는데 남을 바꾸려는 인간의 이기심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허를 찔리는 법이다.
"너 왜 길거리에 누워 있니?"
"어떤 일이냐 하면요, 위에 저 아이가..."
사려 깊은 소년의 마음은 민들레 꽃씨 퍼지듯 주변으로 이어진다. 장바구니 들고 가던 아주머니가 눕고, 책가방 맨 중학생이 눕고, 자전거 타던 청년이 눕고, 다정한 연인이 손하트를 그리며 눕는다. 수지가 늘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던 "위를 봐요!"를 바닥에 누운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외친다.
"모두 위를 봐요!"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수지가 기뻐서 소리를 질렀을까? 춤을 췄을까?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두 가지는 말하지 않겠다. 살짝 귀띔해 주자면, 수지가 서있던 자리에 놓인 화분에 고운 새싹이 돋았다. 푸르고 예쁜 떡잎 두 개.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