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나쁜 짓 하지 않았어요." 그냥 노는 거예요
요즘 아이들이 매일 등교해서 무척 기쁘고 겁이 난다. 현재 삼척시는 코로나19 확진자 0명. 지금까지 누적 환자는 1명인데, 지난 3월 4일 완치 퇴원 이후 추가 인원은 없다. 새하얀 도화지 같은 곳. 여기서는 먹물 한 방울만 떨어져도 번져가는 가느다란 실금까지 생생히 드러나 보인다.
전교생이 등교한 학교는 긴장감으로 공기가 팽팽하다. 이 긴장감은 교사의 속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절대로 우리 반에서 확진자가 나와서는 안 돼!', 이것이 현재의 교실을 지배하는 진리다.
책상은 시험 대형으로 점점이 흩어져 있고, 각 책상에는 불투명 칸막이가 요새처럼 서있다. 쉬는 시간은 10분에서 5분으로 반토막이 났고, 놀 권리를 위해 30분 간 주어졌던 중간놀이는 증발해 버렸다. 점심시간도 20분으로 줄어, 정규 수업을 제외한 기타 시간은 최소한의 기준에 고정되어 있다. 학생 간 접촉 빈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이다.
덕분에 6교시인 날에도 오후 2시면 하교를 하지만, 학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가 일찍 끝난다고 해서 학원 스케줄이 날아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에 공부하러 왔으면, 노는 보상이라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빽빽한 스케줄 속에서 탈출구를 찾는다. 선생님의 잔소리와 감시가 미치지 않는 아침이 황금시간으로 등극하기 시작했다.
탁! 탁!
8시 40분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물통 놀이가 한참이다. 아이들은 둥글게 앉아 원을 만들고 물통을 돌린다. 절반쯤 찬 물통을 공중으로 던져 똑바로 세우면 성공이다. 실패하면 다음 사람이 이어 하고, 성공해도 다음 사람이 이어한다. 묘기 훈련에 가까운 무한 반복.
물통 던지기는 과거의 교실에서 행해지던 과격한 놀이에 비하면 단조롭고 지루하다. 그럼에도 상당 기간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나도 한 번 던져 볼까나.'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물통 던지기의 매력인 것 같다. 내가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우리 거리 지켰어요!"
누가 뭐라나,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간 건데 대번에 "우리 나쁜 짓 하지 않았다."라고 결백의 손짓을 했다. 거리두기가 습관이 된 것이다. 올해 들어 하도 "서로 떨어져! 친구랑 붙지 마!" 소리를 듣고 살아서 그런지 애들은 잔소리에 이골이 나있다. 과연 다시 보니 플레이어 간 거리가 1m는 된다.
"온라인 수업 기간에 집에서도 연습했어요."
"유튜브에 레전드들 많은데."
하긴 반년을 집에서 지겨워 죽을 만큼 뒹굴었으니, 만만한 게 물병 아니었을까. 나도 기회를 얻어 물병을 던져보았다. 물병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물병은 똑바로 서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손끝 감각을 예민하게 세워 다시 던졌다. 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간다.'
그런데 옆에 않은 T가 찌릿한 경고 신호를 보냈다. 맞다, 한 턴에 두 번의 기회. 놀이판에 낀 이상 나는 선생이 아니라 평등한 플레이어일 뿐이다. 순순히 물병을 옆으로 건넸다. 놀이가 끝난 후에도 물통 생각이 났다.
2교시가 되었다. 영어 전담 수업이라 학생은 특별실에 가고, 나 홀로 교실에 남았다. 오후 수업 준비를 하고 10분 짬이 생겼다. 유튜브를 켰다. 유튜브에는 노는 것과 관련한 거의 모든 영상이 있다. 검색어는 물통 세우기. 나만 빼고 전 세계 사람들이 다하는 놀이인 듯, 온갖 영상이 즐비하다. 서양인도 종종 눈에 띄었다. 검색어를 'water bottle flip'으로 바꿨다. 역시 덕후 중에 덕후는 양덕이라더니 3단 쌓기, 탁구공 결합 미션까지 성공한 영상은 조회수가 수천 만을 상회한다.
1.5배속으로 영상을 재생하였다. 핵심 노하우는 균형과 손목 스냅. 요령을 익혔으니 교실 의자 위에 물통을 올리는 정도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홉 번의 시도 끝에 나는 의자 위 물통 세우기에 성공했다. "예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아이들과 제대로 놀지 못해서 좀이 쑤셨는데, 물통 돌리기가 연결고리가 되어줄 것 같았다.
"얘들아 쌤 봐봐."
전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책을 내려놓기 무섭게 물통을 들었다. 짧은 기합을 토하고, 준비해 둔 의자 위로 물통을 던졌다. 머릿속 그림과 달리 물통은 자유의지로 제 갈길을 갔다. 나는 쓰러진 물통을 주으러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은 차마 앞에서 나를 비웃지 못하고 등을 돌려 몸을 들썩였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닌 썩을 녀석들.
놀이의 세계도 어느 정도의 실력은 필수적이다. 퇴근 후에 집에서 연습을 했다. 우리 집 여섯 살, 네 살짜리보다는 내가 더 잘한다. 큰 녀석은 내가 성공하면 막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의 성취감은 높아만 졌다.
'아, 이걸 우리 반 애들 앞에서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교에 가야만 한다. 교실에서 물통 돌릴 생각을 하면 지긋지긋한 월요병도 약한 수준에서 가라앉았다. 애들도 이 맛에 학교에 나오겠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더니, 공용 정수기를 틀어막아도 물통은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