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때기 독서시간]#5. 전지전능하지 않아도 괜찮아.
#1. 왕칼의 기억.
처음 교사가 되고 나서, 제 별명은 <왕칼>이었습니다.
강력한 힘과 통제력으로 학생들을 꼼짝못하게 '다스렸'습니다.
신규답지 않게 아이들을 잘 잡는다는 말을 들었고,
그게 칭찬인 줄 알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지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학급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사의 책임이라고,
교사가 능력있고 잘 하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요.
한마디로, 교사라면 학생과 교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결국 '사건'을 맞닥뜨리게 되고,
교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마술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2. 닥터 로저 파우츠.
<침팬지와의 대화> 의 인간 주인공, 아니, 관찰자인 로저 파우츠 박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충분히 실험의 성공을 거둔 어느 시점,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치고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술에 빠져’ 한참의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로저는 자신이 과학적 오만에 싸여있었다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침팬지와의 의사소통을 연구한다는 것은
침팬지가 독립적인 객체이며, 주체적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일종의 ‘인격’을 가진 존재임을 발견하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그런 ‘인격’을 가진 존재를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파우츠 박사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수용합니다.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꽤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이후, 파우츠 박사와 침팬지 워쇼 사이의 관계는 좀더 질적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파우츠 박사의 삶도 단순히 ‘연구자로서의 성공’이 아닌,
‘더 나은 공존’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지요.
#3. 교사의 삶.
교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가 ‘성공한’ 교사가 되기 위해 교실과 학생을 전적으로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낼 때,
오히려 교사의 삶은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수용할 때,
나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겸허함과 동정심으로 대할 수 있을 때,
교사로서의 우리는 더 잘 해나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탓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교사라고, 다 내 탓이라고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학생을 동정심과 연민으로 대하듯,
자신을 그렇게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오히려 우리는 학생들과도 더 ‘인간적이고 허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뿐더러,
더 나은 교사의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