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되어 학교를 보다]#8. 선생님과 엄마의 차이
“선생님, 저희 아이가 김치를 정말 안먹으려고 해요.
아이한테김치도 잘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씀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 우리 아들이 집에서 게임을 너무 많이 해요.
게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담임, 특히 초등학교 담임은 이런 종류의 요청성 민원(?)을 제법 받게 된다.
학부모들이 이런 요청을 해올때마다 교사인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었다.
“네, 제가 한번 아이와 이야기 나눠볼게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댁에서 직접 아이와 꾸준히 대화하시고
계획을 세워서 지키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솔직히, 10년을 기른 부모가 못고치고 못바꾸는 것을
꼴랑 1년 만나는(그것도 하루에 6시간 남짓) 담임교사의 말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다소 당황스러웠었다.
그리고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한다 싶은 생각에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래미와 유치원에 다니는 7살 딸래미를 키우면서
선생님에게 비슷한 부탁을 하고 있다.
“선생님, 저희 **이가 인사를 큰 소리로 하질 못해요. 부끄러운가봐요.
언제 한번, **한테 인사는 큰 소리로 하는거라고 말씀해주시겠어요?”
학부모로서의 나는 왜 이런 부탁을 했을까?
선생님이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다 고쳐줄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해서?
부모로서 해야할 책임을 교사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돌이켜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건, 아이에게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전유물은 아닌가 보다.
미드, 그레이아나토미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장기입원을 하고 있는 한 소년의 취미생활은 담당 의사의 회진에 동참하여 의사놀이(?)하기.
평소처럼 회진에 동참하고 싶어하지만, 그날따라 소년의 컨디션이 영 별로다.
엄마는 소년에게 그냥 쉴 것을 부탁하지만 소년은 요지부동.
담당 의사는 엄마의 신호를 받고 소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지금은 잠깐 쉬었다가 저녁 회진을 함께 하면 어떨까?”
엄마의 만류는 듣지 않던 소년이 고분고분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이어진 엄마와 의사, 소년 사이의 대화 장면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이 에피소드는 시즌6, 8화에 나온다.)
“엄마는 그냥 엄마잖아요. 이 분은 의사 선생님이시지만...”
아무리 바깥에서 뛰어난 업적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식에게는 그저, ‘그냥 엄마’일 뿐이란 것.
예전엔 ‘그냥 엄마’일 뿐이라는 게 왠지 모르게 가치가 폄하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엄마’로 존재한다는게 자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고 있다.
휴직을 하기 전, 교사이면서 동시에 엄마였을 때,
나는 솔직히,
내 아이를 대하는 과정에서 엄마로서가 아니라 교사로서 아이를 대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아이를 잘 감싸주지 못했던 것 같다.
항상 공정해야 할 것만 같고, 항상 중립적이어야만 할 것 같아서,
내 아이를 대할 때도 그렇게 행동하고 말했다.
공정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엄마.
무척 바람직하고 좋은 엄마인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아이는 ‘절대적인 내 편’이 없이 그냥 세상에 동동 떠있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엄마는 ‘그냥 엄마’이기 때문에
마음껏 응석을 부릴 수도 있고, 때로는(정확히는 거의 대부분) 엄마의 말을 잘 안듣는다.
그 말은 그만큼,
아이가 긴장을 늦추고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누릴 수 있는 대상이란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그런 ‘정서적으로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엄마가 꼭 필요하다.
아마, 좋은 엄마라면 정서적인 지지자이면서도 동시에 아이의 훈육자/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모두다 잘 하는 엄마일 것이다.
하지만, 2개의 역할이 균형있고 조화롭게 공존하기란 생각보다 힘들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 앞세우고 중요하게 여겨야할까?...
휴직 2년차, 교사의 역할을 떠나 온전히 엄마이자 학부모로서 존재하기 시작한 나에겐,
엄마는 우선적으로 정서적인 지지자의 역할을 잘 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그래서 ‘권위를 가진’ 존재인 선생님에게
어찌보면 정말 소소한 것 같은 부탁과 요청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또 학부모에게
교사가 그만큼 ‘의미있는 존재’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선생님들이여!
엄마들의 저런 부탁과 요청을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