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다! 놀고 싶다! - 아이들의 쉴 권리를 찾아서.
이 그림은 저입니다.
올해 초, 7살짜리 아들래미가 그려준 제 모습이지요.
작품의 제목은 <일요일의 엄마> 입니다.
제법 그럴싸하지 않은가요?
소파 위에 여유롭게 늘어져서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는 모습이 잘 나타나있어서 참 마음에 들어한 그림입니다.
아마,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휴일날의 모습은 이 그림 속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나는 교실 속 아이들의 휴일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은 아이들의 휴일과 휴식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6학년 2학기 사회 1단원은 '민주정치' 단원입니다.
큰 단원은 또 작게 4개의 단원으로 쪼개어져 있고, 그 중 작은 4단원은 '행복한 삶과 인권' 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요.
교과서 상의 '진도표' 대로 한다면, 이 부분은 1단원 중에서 가장 나중에 다뤄질 부분이지만,
저는 과감하게 이 부분을 가장 앞으로 끄집어 냈습니다.
왜냐고요?
민주정치라는 것이 그냥 '제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권' 개념의 발달과 함께 성장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아이들과 인권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첫 인권수업은 아이들에게 '권리'의 목록을 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세계인권선언 30개 조항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있는 권리의 목록을 함께 찾아보았지요.
(여러분도 어렴풋하게 보이는 '초성'을 맞춰보시면서 권리의 목록을 쌓아보시면 어떨까요? ^^)
수많은 권리의 목록 가운데, 자신이 침해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권리에 스티커를 붙여보기로 했습니다.
보이시나요?
아이들이 밝힌 '침해받은 자신들의 권리'입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아이들이 <휴식을 취할 권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날 출석한 24명 가운데 4명만 빼고는 모두가 휴식을 취할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이렇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너무 많고, 쉬는 시간은 너무 없어요."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 가야해요. 밥먹을 시간도 없어요."
"학교에서 조금만 잘못하거나 빠뜨리면 남아서 하고 가라고 해요. 그리고 나면 바로 학원 가야하고..."
"일요일에 잠깐 TV라도 볼라고 하면 엄마가 구박해요. 공부는 언제 할거냐고요."
"수업 시간 끝나는 종이 쳤는데도 자꾸 '조금만 더 보자' 라고 하면서 2~3분씩 더 해요."
"매일매일 해서 낼 게 너무 많아요. 수업 시간에 다 못하면 쉬는 시간에 하라고 하고, 점심 시간에 하라고 하고..."
"내 맘대로 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예 없어요. 멍때리고 있을 시간도 필요한데, 그러면 시간 낭비한다고 혼나요."
듣다 보면, 다 맞는 말들입니다.
아이들의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종종 어른의 일과보다 더 빡빡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저희 반 한 아이에게 하루 일과를 물어보았습니다.
7시에 일어나서 30분동안 영어 테이프를 듣고, 밥을 먹고 준비를 해서 학교에 등교합니다.
6교시까지 수업을 마치고 나면 방과후 과정을 1개 듣습니다.
월, 수, 금 일주일에 3일은 2시간짜리 영어 학원에 가고, 영어학원에 가지 않는 날은 전과목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합니다.
집에 오는 시간은 저녁 7시.
그제서야 저녁밥을 먹고, 학원 숙제를 시작합니다.
9시 넘어야 숙제가 일단락되고, 잠깐의 자유시간을 가졌다가 잠자리에 들지요.
주말에는 학원 보충수업이 있다고 하더군요.
만약, 이런 생활을 어른들에게 하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9-6 정규 근무시간이 끝난 뒤, 매일매일 3-4시간의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면?
그것도 월급이라는 보상 없이?
아마, 곧 폭동이 날지도 모릅니다.
이 수업을 마친 뒤, 아이들에게 약속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쉬는 시간 10분과 점심 시간 40분을 반드시 보장하겠다고요.
만약, 내가 그것을 잊어버리고 쉬는 시간에 뭘 하도록 요구하면, '쉴 권리를 보장해주세요!' 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번 8월 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권교육센터 들, 좋은교사운동, 교육공동체 벗 등이 함께 실시한
청소년 학습노동 실태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학업스트레스를 받는 초등학생의 비율은 43%, 성적의 압박을 느낀 학생은 전체의 61.7%에 이르릅니다.
54.7%의 학생은 쉴때도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응답하였네요.
(더 자세한 내용은 http://cafe.naver.com/asunaro/57147참고)
아이들에게 공부는 더이상 권리가 아니라, 강제 노동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공부에 지쳐버린 아이들에게 '쉴 권리'를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