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그림책을만나다]Ep4. 평화를 가르친다는 것
지금까지 평화의 개념, 폭력에 대한 이해 등, 평화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학교와 교실에서의 평화교육,
그림책을 이용한 평화교육에 대해 좀더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교육을 이야기할 때에는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칠 것인가 라는 3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도 이 세 가지 질문에 따라 평화교육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무엇을, 어떻게에 관한 질문 중심으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왜’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PART 1, 평화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이야기한 것과 대체로 겹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하게나마 평화교육이 ‘왜’ 필요한가를 적어본다면,
평화교육은 폭력의 문화 대신, 평화의 문화를 퍼뜨리고,
학교와 사회를 좀더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 평화교육,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평화교육의 내용, 평화교육이 무엇을 가르쳐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각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이 있지요.
자주 이야기되는 평화교육의 영역은 이런 것들입니다.
“전쟁, 폭력, 차별, 불평등, 문화다양성, 생명존중, 환경, 역사,
통일, 빈곤, 노동, 젠더, 인종갈등, 커뮤니케이션, 갈등 해결...”
평화교육은 이런 수많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이 내용영역들이 민주시민교육, 인권교육, 통일교육, 법교육 등등,
각종 인접교육과 관련을 맺기 마련입니다.
겹치는 부분도 있고, 비슷한 결을 갖고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평화교육과 이런 인접교육들의 차이를 밝히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직접 만나는 우리, 교사들에게는
이 내용영역이 오롯이 평화교육의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하고 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이 내용들을 평화의 관점, 특히 적극적 평화의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학생들과 전쟁에 대해서, 환경에 대해서, 통일에 대해서,
빈곤에 대해서, 노동문제에 대해서, 젠더와 인종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장면과 갈등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 모든 주제를 적극적 평화의 관점으로 녹여내고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나누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교육이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필자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평화교육은 나를 둘러싼 타자, 그리고 세상과
‘평화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과 권력의 위계에 따라 억압하고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를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고,
그렇게 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린게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
성별이나 외모, 인종 등등으로 누군가가 차별당하지 않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
생명과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평화교육의 장면이 아닐까요?
나. 평화교육,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평화교육이 평화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고, 평화교육의 내용이 ‘평화로운 관계맺기’에 관한 것이라면,
평화교육의 방법 역시 평화로워야 합니다.
평화는 평화로만 물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평화교육은 특정한 교재, 혹은 특정한 교수 방법을 통해서 ‘수업’의 형태로 이뤄진다기보다는
본질적으로 교실의 공기와 분위기에 의해서 ‘잠재적’으로 가르쳐집니다.
학생들은 교사가 교실에서 다른 사람들-학생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를 보고,
교실의 분위기가 힘과 권력의 위계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지를 느끼면서 평화를 배웁니다.
하지만 교육이 온전히 그렇게 경험과 체험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지요.
학생들에게는 평화를 느끼고 체험하는 것 못지않게 평화를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평화교육-평화수업은
적극적 평화의 개념 및 평화롭지 않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수단으로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책입니다.
평화교육을 한다고 할 때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반대급부에 있는 폭력이나 전쟁의 위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평화교육이 오히려 폭력적인 방식을 띄게 되는 것입니다.
어렸을 적, 독립기념관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전시되었던 고문 전시실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음산한 배경음악, 살짝 어두운 조명,
그리고 고문의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인형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일제의 만행, 그리고 나라의 소중함이라는 내용보다는 ‘무섭다’라는 정서적 자극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몇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나라사랑교육을 한다면서 학생들에게 북한의 실태를 알려준다는 명목으로
유아살해, 낙태 장면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비디오를 상영했던 일입니다.
비디오를 본 학생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무서워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지요.
독일에서는 유치원때부터 홀로코스트를 가르칩니다.
다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홀로코스트 교육을 할 때에는 명백한 원칙 한가지를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로, ‘아우슈비츠 없는 아우슈비츠 교육’입니다.
어린이에게도 나치의 잘못을 가르치지만,
그들에게 정서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지나친 시청각 자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도록 하고,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하되,
그 방식이 정서적 학대의 가능성을 띄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림책은 평화를 교육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폭력의 장면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성찰을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