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되어 학교를 보다]#6. 학부모 대표가 된다는 것
교사일 때, 학부모총회가 정말 싫었던 딱 한가지 이유를 꼽자면,
'학부모회 반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임원 선출 같은것만 안하면 학부모총회가 무척 신나고 즐거운 일일텐데,
도대체 왜 소중한 시간을 임원선출 따위로 보내야 하는지,
학부모들은 다들 눈을 내리깔고 있고, 교사는 안달내야만 하는지 싶었다.
동시에,
"이름만 올려달라는데, 왜 이것도 안하려고 하시는걸까" 하는 생각에,
괜히 서운하기도 했다.
난 담임으로서 학부모님들께 뭐 부탁하지도 않을건데,
진짜 '이름만' 올려달라는건데,
난처해하는 담임 생각해서 이름만 올려주시면 되는데,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학부모로 살면서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고학년으로 가면 갈수록 그 모임의 규모나 횟수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일단 반대표가 되면,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제일 먼저 할 일은 학급 단톡방을 개설하는 일이었다.
반대표라고 해서 모든 학부모를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알음알음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전화번호를 수집하고, 반톡을 개설한다.
반톡에는 온갖 이야기가 다 올라온다.
그날그날의 알림장,
그날그날 교실에서 있었던 일 등등.
그러고 보면, 반톡에 그날의 알림장을 올리는 것 역시, 반대표의 일이다.
특히, 클래스팅 등등의 알림장 앱을 안쓰는 학급의 경우,
이 알림장 올려주는 것은 '무척 중요한' 반대표의 역할이다.
워킹맘들이 집에 가서 알림장을 확인하면 준비물 등등을 챙기기에 넘 늦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학부모끼리의 사적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반모임'을 주최한다.
사람들에게 날짜, 시간, 메뉴 등등을 묻고 조율하고,
장소를 예약하고, 참석자들에게 회비(정기적인 회비보다는 그날의 식대)를 걷고...
뭐 이런 일들이 이어진다.
저학년의 경우, 이 반모임은 1~2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이뤄지곤 한다.
이 반모임의 경우, 때로는 생일파티를 겸한다.
생일파티는 해당 월에 생일을 맞은 아이의 엄마가 주로 준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이어지게 하는 건, 또 반대표의 몫이 되어버린다.
때때로, 엄마들 사이에서 궁금증이 생기거나, 담임교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길 경우엔
또 반대표가 그 중간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대표'라곤 하지만, 똑같이 학부모 입장에서 담임교사에게 뭘 묻고,
또 건의사항을 말하는 게 쉽지는 않을테다.
그러나 어쨌든, 엄마들 사이에서 '반대표'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이런 반대표의 역할, 또 반모임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옅어진다고 하지만,
저학년때 이런 반대표를 겪어온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선뜻 '반대표'를 하겠다고 나서기가 쉽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학부모 틈에 껴서 생활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담임교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2년째 학부모 코스프레(?)를 하면서 결심한 한가지는,
학부모 조직이 지금처럼 '사적인' 모임으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것.
그냥 '이름만' 올려달라는 부탁으로 학부모의 짐이 덜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
학교로 돌아가는 그 날 까지,
학부모에 관한 내용이 좀더 '내 교실의 학급살이 안에 녹아들 수 있도록' 고민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