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안돼!!! vs 그래, 한 번 해봐!
'아! 아! 아!’
짧고 강렬한 그녀의 목소리.
계란말이를 만들려는 나를 향해 날계란을 가리키며 달라는 그녀.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순간 인생극장의 주인공이 된다.
해줄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럴 때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한다. 고민을 하는 이유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이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일관된 태도를 보이기 위함이다. 같은 상황에서 부모가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면 아이는 혼란이 올 수 있고, 간혹 ‘떼를 쓰면 엄마는 들어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마다, 가정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육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기준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단, 육아를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엄마로서 또지 아빠와 함께 세운 기준은 다음과 같다.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고 시도해보려 한다면 한번쯤은 내어주자.
단, 안전과 관련한 경우에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해주자!’
그래서 나는 또지의 고사리같은 두 손에 날계란을 쥐어주었다. 당연히 날계란을 조절하는 힘의 크기를 잘 모르는 또지는 계란을 깨버렸다. 이미 날계란을 건네던 그 순간 예상했던 부분이라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계란을 톡톡톡 살짝 금이 가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다가 실패했을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실제로 19개월차 또지는 날계란 열 알 남짓을 깨고는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이제 음식을 만들 때 계란을 깨는 일은 또지의 몫이 되었고, 삶은 계란을 온전히 혼자 까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발달을 위해 아이의 ‘자율성’은 적극 권장해줄 필요가 있다. 이는 아이의 자신감, 나아가 자존감의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지야, 안돼! 계란 깨져, 그냥 내려놔!’
‘또지야, 엄마가 해줄게!’
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가 대신 해주는 것이, 혹은 지름길을 알려주는 것은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의 조급함이 아이의 자립을 더디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안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아이 스스로 부딪히고 쓰러지는 실패를 경험할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주는 것이 어떨까? 나의 아이는 많은 실패 속에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도전하고 성공하면서 큰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그 순간 그것은 진정 자기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목표를 가지고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