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민주주의를 위한 넓고 얕은 대화] 2. 우리의 교실민주주의는 쌍똥(◎)일까?
벡델테스트를 아시나요?
영화의 양성평등적 요소를 나타내는 간단 지표가 있습니다. 벡델테스트라고 하는 것인데요.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백델이 고안한 것으로 영화속 여성의 지위를 통해 평등적 시선이 담겨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것은 영화를 평가하는 방식 혹은 감상하는 방식이 될 수 있으나 영화의 완성도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장르에 따라 적용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다만, 이러한 테스트를 통해 시사하는 바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테스트는 간단합니다.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한다.
2.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
3. 이야기의 주제가 남자에 대한 것외에도 존재한다.
이 테스트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기존 영화산업에서 여성이 어떤 시각과 소재로 소비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이 등장하되 이름이 불리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존재, 혹은 피해자로 등장하고, 등장하더라도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 이야기를 이끌지 못하며, 대화를 하더라도 연애, 결혼 등의 고정된 주제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벡델 테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교실의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도구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럼, 지금 부터 학급민주주의 쌍똥테트스를 만들어 봅시다.
가끔씩 반성하는 나의 모습, 그곳에 답이 있다.
우리는 가끔씩 학급 살이를 하며 반성합니다.
"굳이 화낼 필요는 없었는데..."
"지금 꼭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기회를 더 줘도 되었을 텐데..."
나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느낌 때문에, 인간적인 굴욕감 혹은 교사로서의 위신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럴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화'하면 됩니다. 학생들은 한번 교사와 학급 분위기에게 적응하면 비민주적 상황이나 규칙도 하나의 소속감, 개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상황과 규칙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죠.
"12시 55분까지 들어오기로 한 약속을 3번이나 어긴 사람이 5명이나 있어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믿고 기다려줬는데, 안되겠어요.
내일부터는 모두다 12시 50분까지 들어오세요."
학생들은 당황하고 놀라지만, 참을 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잘못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무려 '선생님'의 말씀이니까요. 그럼 묻습니다. 선생님이 학급에 내린 지시는 선생님도 대상이 되고 있나요? 선생님이 부득이 벗어나야 한다면, 학생들과 합의 혹은 동의의 과정을 가지셨나요? 첫번째 질문이 나왔네요.
1. 교실 내 모든 규정과 행동지시의 범위에 교사가 포함되는가?
그리고 이 규칙 제정 과정에서 학생의 의견이나 반론을 들어보면 더욱 규칙 제정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겁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의견개진과 반론을 말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무려 '선생님'의 말씀이니까요. 그러므로 과정이 민주적으로 진행된 규칙이라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구성원의 의견을 다시 묻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3월에 만든 규칙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민주적 과정을 거쳤다하더라도 1년 내내 군말없이 지키라는 것은 사회와 비교해보면 웃기는 일입니다. 모든 규칙은 구성원의 삶을 편리하기 위해 '합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화가 필요합니다. 언제든지 그리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의무적인 개정의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훌륭한 부분(이면서 느리게 만드는 점)은 합의를 통해 한번 정한 결정을 다시 뒤집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2. 규칙의 가역성을 인정하고 개정의 기회를 수시,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3. 교사가 의사결정과정에 '발언권'을 가지고 말하는가?
언뜻, 교사가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교실 민주주의 쌍똥테스트'에 들어가는 게 어색할 수 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당연히 언제나 말할 수 있잖아?'라는 생각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교사도 회의시간에 '발언권'을 얻어 자신의 의견과 조언을 해야 합니다. '발언권' 없이 말하는 교사는 그 위치와 맥락상 '판사' 혹은 '왕'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내린 결정을 뒤엎거나, 조정할 수 있는 위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급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서 교사도 1표를 가진 구성원으로 당당히 '발언권'을 얻은 뒤 다른 구성원을 설득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선생님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고, 조언에 감화될 겁니다. 선생님은 영향력이 있는 존재니까요. 그럼에도 결정된 사안에는 승복하여 따르고 다음 기회에 다시 안건을 올려 사안을 다투어야 합니다.
필자는 놀이시간에 하고 싶은 놀이를 함께 결정하는 회의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피구'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필자는 피구 놀이가 가끔 다툼이 생길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놀이이므로 다른 놀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으나 근소한 차이로 투표에서 지고 말았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발언권을 얻어 피구를 반대한 학생들이 많으므로 안전한 피구룰을 반대측 학생들이 만들게 하는 것이 어떤가 제안했고, 찬성쪽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피구 시간에 평화롭게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을 경험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언제나 교사의 입만 바라보게 됩니다.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결국 교사의 한마디면 모든 게 달라지니까요. 마치 몇 학교의 부정적인 교직원 회의처럼 말이죠.
우리의 교실 민주주의, 쌍똥(◎)이 될수 있을까?
1. 교실 내 모든 규정과 활동의 범위에 교사가 포함되는가?
2. 규칙의 가역성을 인정하고 개정의 기회를 수시,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는가?
3. 교사가 의사결정과정에 '발언권'을 가지고 말하는가?
위 3문장으로 교실 민주주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교육과정과 의사결정, 학생상담과 생활지도에서 스스로 권력욕이 끓어오를 때마다 떠올리는 문장으로는 제격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나도 지킬 수 있는지, 학급 안에 절대적이고 폭력적인 규칙이나 문장이 있지는 않은지, 나도 1명의 구성원으로서 인식되고 행동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다음 연재는 '3. 교실 민주주의의 뼈대세우기'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의 첫삽을 떠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