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민주주의를 위한 넓고 얕은 대화]1. 당신의 교실 민주주의는 안녕하십니까?
내가 정의하는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정의해보세요.' 혹은 '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서 머뭇거리는 사람을 없을 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국가에 살고 있고, 그 문화를 향유하고 있으며 학교와 사회에서 질리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영화 대사로도 많이 회자된 대한민국 헌법 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와 제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처럼 입에 착붙는 문장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직업병처럼 이 낱말을 하나씩 뜯어보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민주주의, 民主主義, Democracy 를 하나씩 뜯어봅니다. 사전적으로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사상, 혹은 제도를 말합니다. Democracy는 민중을 뜻하는 'Demos'와 권력을 뜻하는 'Kratia'를 합친말이라고 하네요. 그렇기에 다른 사상을 표현할 때 붙는 '-ism' 이 민주주의에는 붙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더 명확하고 간결합니다. 민주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수많은 서적을 뒤질필요 없이 한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어요. '내가 가장 바닥에 있을 지라도 나에게 권력, 권리가 주어질 수 있는 사상'입니다. 이건 제가 정의하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제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 '평등한', '권력분배'는 모두가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더라도 민주주의 자체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듣기에 참 좋은 낱말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교사가 정의하는 교실 민주주의
'교실에 민주주의가 필요합니까?' 라고 했을 때, 선뜻 '아닐걸요?'라고 대답하는 교사는 없을 겁니다. '필요하죠. 어려워서 그렇지...'정도의 솔직한 대답이 어쩌면 가장 보편적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고 있어요.'라는 대답을 들으면 그 교실에서 하루정도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교실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만, 교사가 창조해낸 특색(?)있는 민주주의가 횡행하기 때문입니다. (좀 거칠게 말하면 북한도 엄연히 명목상 민주주의 국가) 교실 공간 속 교사라는 한 개인에게 많은 의무가 지어져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권리와 권력행사가 당연히 생길수 있는 것 아니냐? 어떻게 완벽한 민주주의 교실을 따질 수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권리행사의 일부를 대신할 국회의원, 대통령, 경찰과 검찰, 군대 조직을 만들었으며 그들에게 권리를 제한 당하고, 통제받을 때도 있습니다. 교실에서 교사는 더 많은 권한과 권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의 주체가 학생이란 점이 다릅니다. 사실상 교사는 교실의 구성원으로 부터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교실 규칙을 살펴봅시다. '규칙의 통제 대상은 누구인가? 규칙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규정의 강력한 개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것만 살펴보아도 답은 나올 겁니다. 심지어 교사의 다정하고 친절한 태도, 학생친화적 이벤트가 '민주적'태도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 교사가 정의하는 교실 민주주의는 다채롭습니다. 그래서인지 실제 삶 속 민주주의와 많이 멀고요. 그리고 위험합니다.
솔직히 말해봐요, 교실 민주주의가 필요해요?
이쯤되면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려야 합니다. 수 많은 수업 장면과 학생들의 얼굴이 지나쳐 갈 겁니다. 실패의 경험과 분노의 감정이 차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가 혀를 끌끌차며 토해낸 말이 뇌리를 스쳐갈 겁니다.
'쟤네들은 안된다니까, 잘해주면 기어오르기하고. 편하게 해주면 안되...'
'학생들은 지식이 부족하다. 판단의 경험이 적고, 행위의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지 못한다.'
이런 말들을 듣고 나면 온건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철인독재'가 나을 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됩니다. 그러나 위의 문장을 상황과 대상을 조금만 바꾸면 생각이 달라질 거에요.
'그러면 안된다니까, 자꾸 해주면 요구가 많아져, 다른 생각못하게 빡세게 돌려야지' (어느 관리자가 술자리에서 복무관련으로 한 말)
'교사들이 공부만해서 경험이 부족하니까 그래'(어느 기사의 댓글)
'공무원이라서 연금도 받고 철밥통인데 그런걸로 불평을 해?'(역시 자주보이는 댓글)
만약 누군가가 이런 이유로 우리의 권리를 제한하려 한다면, 우리는 '네'하고 받아들일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실의 학생들은 '네'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최근 학생인권이 신장되면서 학생들이 자기목소리 내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만)
'그런 말하는 너희 교실은 교실민주주의를 완벽하게 하고 있냐?'고 묻는 다면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반문해봅니다. '대한민국은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인가?' 오히려 완벽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세력은 더더욱)는 위험합니다. 불가능하거든요. 정치권력 견제를 통해 더욱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이 노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교실은 완벽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가능한 시스템을 함께 구현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것에 있다'고 대답할 겁니다.
초등교사로서 초등학생이 가지는 역량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과 제한하는 것은 다릅니다. 시스템과 대화의 가능성 안에서 역량은 언제나 그 한계를 도전받으며 성장합니다. 수학풀이 능력에는 늘 도전과 심화과정이 있는데, 민주시민역량은 왜 늘 지식만 있고, 실천과 심화, 도전과정이 없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말로 교실에 '민주주의'가 필요한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실 민주주의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답답하며 교사를 괴롭히는 일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끝까지 함께 해온 당신은 이 괴로운 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지요! 우선, 우리의 교실은 얼마나 민주적인지 진단해보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다음 연재는 '2. 우리의 교실 민주주의는 쌍똥일까요?'로 교실의 민주주의 요소를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