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대신 교권의 날은 어떨까?
5월 15일, 스승의 날이 즈음이면 늘 익숙한 뉴스를 본다. '교원 10명 중 8명... 그만 두고 싶다' 교권 하락, 매년 만족도 최저 갱신, 추락과 같은 이야기를 본다. 결론은 '요즘, 선생님 하기 참 힘든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설문은 어떤 직군에 대입해도 비슷할 것이다. 마음 속에 사표하나 품지 않은 직장인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예상가능한 통계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교권 하락이 가져올 미래에 있다. 교권 하락의 문제는 단순히 직업인으로써 교사의 권리 침해 문제에 멈추지 않는다. 한국 교육의 10년 후를 보고 싶으면 지금의 일본을 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일본의 교권 관련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 교원의 임용경쟁률이 떨어지고, 정규직 교사의 수가 부족해지면서 임용 연령 제한을 낮추었고, 50대의 신규교사가 발령나기도 했다. 교사 수가 부족하다 보니, 입시 학원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마저 생겼을 정도이다. 학교가 입시학원과 결탁하여 '교내 학원'을 만들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우리나라 학교도 예체능 과목 등을 강사에게 맡겨 전문적인 교육의 기회를 학생에게 제공하는데, 일본은 국,영,수와 같은 과목마저도 '외주'를 줘버린 것이다. 한국의 사교육비 급증의 문제와 질 높은 교사의 확보 실패를 정치권에서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미 교원 경쟁률 하락과 기간제 교사 증가, 담임회피 등은 대한민국에서도 진행중이다. 이렇게 보면, 저출생-고령화 문제와 교권의 문제는 비슷한 점이 많다. 바로, 관심은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의지도.
학생인권에서 '교육권'으로 시선 바꾸기
이 소제목에 날카롭게 눈이 번쩍 뜨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교권하락의 책임을 학생인권에 묻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교권은 말 그대로 교사의 권리이고, 교사는 학생과 학교가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이다. 즉, 학생과 교사 모두의 인권이 같이 성장해 나가야 하며, 두 주체의 권리는 결코 제로섬이 아니다. 만약,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있고, 교사가 학생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교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은 학생인권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제지하거나 멈추게 하도록 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때문일까? 이것은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을 침해 받은 상황이 아니라, '교권과 (다른 학생의)기본권이 모두 적극적으로 침해 당하고 있는데, 그 책임을 교사에게만 지우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 학생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모두의 교육받을 권리와 교사의 자율성을 침해당한 것이다.
만약, 학생인권이 처참했던 200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그것은 교권도 급격하게 하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교실에서야 학생에게 강력한 존재가 되겠지만, 학교 민주주의가 붕괴되면 관리자와 교육청으로 부터 일선의 교사가 어떤 대우를 받을 지 생각해보자. 그러므로 교권의 향상을 위해 대중들에게 전략적인 설득을 위해서라면 학생인권이 아닌 다른 부분을 쟁점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많은 시민들은 자신의 학생인권이 처참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지금의 교사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교권관련 기사에 댓글로 '요즘 애들이 안맞아서 그렇다.'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이 추락한다'고 댓글을 다는 사람은 여전히 20세기의 교육현장에 머무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결코 교사의 편이 아니다. 교권향상의 주장을 조금 더 전략적으로 납득시키려면, 교권 향상이 '당신의 자녀가 정당하고 온전하게 수업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
교육권 보호의 핵심은 '지원'
교육 선진국 하면 떠오르는 북유럽 국가들은 교권침해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핀란드의 '교원노조 조사'(2015)에 따르면 1/3의 교사들이 학부모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3년, 한 교사가 학생들의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신체적 접촉이 있었고, 그로인해 헬싱키 교육부로 부터 해고당하는 일이 생겼다. 이에 15만명의 국민들이 부당한 처사라며 철회를 요구했고, 교사 단체 또한 함께 행동하였다. 그 결과, 교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법이 개정되었다. 핀란드에서는 이후 교사의 교권침해 사례 발생 시 지원주체 다양하게 보장하는 데, 첫번째로 교원 노조, 두번째는 직업안전 보건청 (우리나라로 치면 고용노동부, 그러나 교사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호를 받지 못한다.) 세번째는 '제 3의 교장'이다. 제 3의 교장이라는 제도를 눈여겨 볼만하다. 제 3의 교장은 학교 내 교권만을 전담하는 교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리기 어려운 상황과 그 이유를 떠올려 보면, 교사를 지원해 줄 교권보호위원회가 학교 관리자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미국 또한, 최근 교권침해 문제가 심각한데 우리와 달리 대응은 매우 선제적이고 과감하다. 위스콘신에서 한 학생이 교사의 훈육에 '나한테 총이 있었으면...'이라고 말하자 교사는 경찰을 호출했으며 해당학생과 부모를 대상으로 법정 소송도 진행하였다. 교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학생의 경우 법원에서는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거나, 가해 사실이 인정되면 전학조치 또한 쉽게 결정된다. 영국의 경우는 더 과감한데, 2011년 개정 법률에 따르면 훈육적 처벌이 강화되어 수업활동을 따르지 않거나 운영을 방해하는 아동을 교실에서 내보내거나, 근신, 정학 및 퇴학 조치를 내릴 결정권을 교사에게 보장하고 있다. 어떤 나라의 정책이 옳다, 더 낫다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법률과 인적지원,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있어 교사의 수업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교사가 교권 침해를 당했을 때, '이것 공론화해야 하나, 혹은 그냥 참아야 하나'라는 점부터 고민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다양한 지원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교사가 정서심리 상담을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사는 직업의 특성상 수업 뿐 아니라 생활지도 등 정서적 상담을 많이 수행하는 데, 정작 교사 스스로가 심리정서적 상담을 받아보는 경험이 적다는 점이 큰 문제다. 문제가 생겨서 받는 치료적 상담이 아닌,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돌보면서 상담 기법을 체험하고, 감정적 해소와 직면의 경험을 통해 교사의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아동학대'교사가 된다는 공포
최근, MBC에서 방영한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편을 시청한 많은 교사들이 해당 교원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포심은 사람을 더욱 보수적으로 만들게 된다. 움츠러든 교사에게 수업의 다양성과 자율성, 높은 교육의 질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학생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교과서 진도만 맞추는 교사, 스스로도 절대 되고 싶지 않은 '철밥통'을 조용히 선언하는 교사들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지점에서 미캘리포니아 교원보호법은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면책특권 조항을 따로 명시했다는 점이다. 이 법에 따르면, 교원이 정당한 교육활동을 적법하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의, 범죄나 명백한 과실, 중과실을 의식적이고, 노골적인 무지로 야기된 것이 아닐 때는 교원의 배상의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고 것이다. 즉, '우리 자녀가 누군가에게 맞았으니 담임도 책임이 있지 않으냐'는 식의 '유사부모책임'은 지울수 없있다. 일부 주에서는 '성가시고 경솔한 소송'을 당하지 않을 권리와 학교기관이 교사의 소송방어를 도와줄 권리도 보장해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민형사상의 면책, 교권 침해의 생활기록부 기록 등의 내용을 담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 논의 중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이러한 법률과 제도가 하루라도 빨리 시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실제 현장에서 어떨지 토론이 활발해지는 등의 공론화가 이루어지면, 교육현장과 시민들의 의식 속에 교권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식의 추상적 개념에서 구체적인 행위의 인식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예로 '청탁금지법'이 있다. 청탁금지법이 여전히 완벽한 제도는 아니겠지만, '교사는 커피 한잔도 받지 않는다.'와 같은 행동 양식을 많은 사람에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교권침해를 받은 나와 교사인 나는 분리될 수 없다.
교사의 심리적 고통은 즉각, 현재 마주하는 학생들이 받는 수업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이미지 출처: AI)
스승보다, 그냥 교사가 되고 싶다는 욕망
여전히 매년, 스승의 날은 찾아온다. 많은 교사들이 스승의 날을 학생과의 소통과 이벤트 등이 기대되는 날이라기 보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은 날마다 떨어지는데, 네가 '스승'임은 잊지 말고 있으라는 일종의 '가스라이팅 데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교사는 그냥 교사가 되고 싶어한다. 수업에 힘쓰고, 학생들과 안전하게 지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인이고 싶어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분명 중요하고, 교육은 그 자체로 가치있지만 세상에 가치있는 일과 직업이 교육과 교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잘 가르치고, 학생은 잘 배울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만 준비해주면 된다. 존경과 스승의 타이틀은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문제이지 교사에게 사명감처럼 덮어씌울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 대신 '교권의 날'이 교사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만약, 교권의 날이 생긴다면 어떨까? 교권의 날이 어떻게 구성되면 좋을 지 에듀콜라 집필진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교권의 날이라고 특별히 교원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다.(괜히 욕먹는건 싫음) 그날은 (혹은 주간) 교권관련 집중교육을 실시한다.
-당일, 교원단체들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작년 교권침해 사례와 예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시간을 정례화 한다.
-학교에서는 대한민국 1교시(장애인의 날 교육)처럼 교육침해사례, 보호와 수업권을 위해 학생들이 함께 노력하는 계기 수업을 국가차원에서 실시한다.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보내는 동안 1번은 교권의 날에 직접 수업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진로탐구 수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교사라는 직업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데 교사의 일이나 직업적 이해도를 높이는 기회로 삼는다.
-'당신의 자녀를 위해 선생님의 수업권을 보호해 주세요'라고 BTS가 공익광고에 출연한다.
등이 었다. 만약 교권의 날이 생긴다면 정부와 학교 등에서 교권확립을 위해 어떤 활동 혹은 지원이 있으면 좋을지 함께 독자들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 '존중'의 크기가 날로 작아져 간다. 그리고 그 작은 덩어리 조차, 여러갈래 찢겨 존중받을 자격에 연령이나 능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자유주의와 경쟁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학교라는 공간은 그 안에 있는 것 만으로도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을 자격이 생기는 '이세계' 같은 곳이다. 그리고 교사들은 그 세계를 수호하기 위한 마지막 울타리이다.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도 교사와 그 세계를 존중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힘들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유가 학생때문일까? 최근 조기 등교, 저녁 돌봄 등의 논의를 보며 진심으로 학교와 교사, 학생과 교육을 존중하지 않는 건 과연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및 자료>
-전제상(2016), 외국의 교권보호 정책과 동향, 행복한 교육 2016년 5월호
-임미나(2019), 핀란드의 교권침해 사례와 지원정책,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
-한상희(2019), 교원과 그 교육활동은 어떻게 보호되는가 -해외사례들을 중심으로, 서울교육2019가을호(236호)
-땅에 떨어진 교권...만족 23.6%역대 최저... (뉴시스2023.5.14.)
-입시학원 강사에 학교 수업 맡기는 일본... (세계2022.8.18.)
-정당한 생활지도에 아동학대 면책 필요...(한경20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