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교실이 실패하는 이유] 1.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당신의 교실은 안녕하십니까?
‘교실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꾸려가는가?’의 답은 대부분의 교사가 알고 있는 것 같다. 많은 명저와 조언들, 블로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운영 할 수 있는지 다들 그 '느낌'정도는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어트와 공부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경력 8년차의 교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하면 교실을, 수업을, 생활지도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경력이다. 그리고 그 방법도 지극히 경험적이고, 편향적일 수 밖에 없다. '당신의 교실이 실패하는 이유'라는 문장을 쓸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재할 글들은 당신이 아닌 '나의 교실'이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필자는 어떻게 하면 교실이 ‘폭망’할 수 있는지는 확실히 안다. 이것은 필자의 네거티브한 성격탓이기도 하고(무엇이든지 일단 까고 보는 성격) 신규시절, 체육시간에 군대 제식인 '발 맞추어 가'를 집중훈련시키는 열정과 공문을 보내기 위해 우표를 구입하는 멍청함을 두루 가진 탓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조직을 말아먹는 ‘멍부(멍청한데 부지런한 사람)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 자다가도 갑자기 이불을 뻥뻥차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교실을 망칠 수 있는지 경험으로 확실히 알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 유병재가 그랬다. 훌륭한 사람을 멘토로 삼으면 인생이 괴롭다. 그러나 멍청이를 멘토로 삼으면 마음이 편하다. 적어도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 겠다'고 하는 게 생기니 말이다.
이번 글의 목적은 실패사례를 통해 나와 당신의 교실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듣고 보고 경험한 실패사례를 통해 당신의 교실(그리고 나의 교실이) 이 왜 실패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여기서 실패의 기준은 없다. 기준이란 것은 원래 마음 속에 있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면 실패다. 실수라는 것은 변명에 가깝다. 당신에게는 매년 최소 1명이상의 학생과 교실공간과 190여일의 기회가 주어진다. 모든 기회가 주어지고 난 뒤, 혼자 남아 지난 1년을 돌아보았을 때, 문득 떠오르는 그 장면! 그 느낌! 그 느낌에서 당신이 하지 말았어야 할, 그리고 겪지 말았어야 할 사례를 살펴보자. 이건 필자의 이야기면서 올해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동학년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이야기하는 내용만 잘 피해가보자. 그럼 적어도 그 부분은 덜 후회하지 않겠지.
첫번째 이야기.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에게는 두 개의 역할이 있다. '학생들의 수업과 생활지도를 하는' 교사로서의 역할과 '교육관련, 혹은 관련이 없다고 느껴지는 행정업무를 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이다. 수업시간에는 교사로서, 방과후에는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이 딱딱 분리되어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첫번째 이야기는 이 두가지 역할의 충돌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다루며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바로 결론을 이야기하면,
나는 솔직히 수업 외 적인 업무로 인해 학생들에게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화를 낸 적이 있다. 많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뭔가 엄청난 잘못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꼬투리 잡으려면 얼마나 잡을게 많은가
왜 이렇게 떠드니?시킨건 다했니?공부시간에 누가 딴 짓하니?
하지만 그들은 잘못이 없다.
사실은 내가 짜증난거다.
신규로 발령받고 얼마 안되었을 때를 상상해본다. 학생들은 그야말로 아이들이다. 사랑받아야 할 존재, 존중받아야 할 존재, 열심히 해야하는 않으면 안될 존재들이다. 하루 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학생들이 향해 별안간 소리를 지른다. 모르겠다. 갑자기 화가난다. 5분전으로 돌아가보자.
메시지가 온다. 무시. 전화가 온다. 무시. 그러자 찾아왔다. 급하니 이것만 빨리 해달라고. 어쩔 수 없다. 학생들에게 급하게 무엇인가를 학습하게 한다. 공문을 연다.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들긴다. '빨리 해야하는 데...' 빨리 될턱이 없다. 성급하게 내준 과제는 학생들을 식상하게 만들고 선생님의 눈빛이 멀어지자, 쉽게 자기들끼리 흥미거리를 만들어 낸다. 작은 소리들이 점점 커진다. 나는 급하고 아이들은 내 통제를 벗어난다. 나는 무능하다. 뚜껑이 열린다.
펑!
나는 누구지?
내가 왜 이런 것을 하고 있지?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이런 일에 왜 낭비하고 있지?
화가 난다.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화를 내기로 결심'했다.
나를 무능하게 만드는 생각을 멈춰야 하므로.
"이녀석들! 누가 떠들라고 했어!"
내 별명이 악마쌤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한 일은 모두 이런 일에 걸터 앉아 있다. 내가 힘들고 바쁘고, 무능하다고 느낄 때,
내가 왜 학생들 앞에 서있는가 반문할 때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호통치고 화내고 있었다. 가장 미안해야 할 존재에게 말이다.
나란 교사, 정말 못난 교사.
업무에게 뺨 맞고 왜 학생에게 풀었을까
그렇게 한바탕 일을 치르고 학생들을 돌려보낸 방과후가 되면 돌아오는 것은 죄책감뿐이었다.
그날의 실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교실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학생과 교사아닐까?
난 최고의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공문도 잘 처리하고 관리자로부터 인정도 받고 싶었다. 수업이면 수업, 업무면 업무, 모든 곳에서 적어도 욕은 안 먹었으면 했다. 솔직히 칭찬받고 싶었다. 그런데 학생들로부터는 당연히 '선생님'이기에 언제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우선순위는 관리자와 동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먼저였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좋아할거야
왜냐하면 난, 선생님이니까
그 날, 나의 화내는 모습에 학생들은 무척이나 당황해 하고 있었고, 특정 학생은 그 날 이후로 나와의 대화가 부쩍 줄어들기까지 했다. 다음 수업시간의 분위기는 냉랭했고, 난 또 나대로 남은 시간들을 어색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그 날의 실패는 나에게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에 대한 교훈을 일깨워주었다.
난 누군가? 선생님이다.
또 여긴 어딘가? 교실이다.
그럼 너의 우선 순위는? ...
시간이 많이 흘렀다. 업무능력이 크게 탁월해지지도,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업무처리를 해야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일로는 화를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선순위를 정했기 때문이다. 업무지연으로 인해 먹을 수 있는 욕은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 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수업중이니, 수업 마치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