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교실이 실패하는 이유] 7. 당신의 교실을 망치는 3가지 생각들
1. 나도 신규때는 그랬어
신규 교사들이 열정과 노력으로 많은 일들을 벌이고(?) 활동들을 수행해나갈 때, 주변 선배교사들이 흔히 던지는 걱정과 안타까움, 부러움이 뒤섞인 조언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 모든 교사에게는 신규시절이 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경험을 쌓은 선배들에게 신규들은 '열정은 짧고 교직은 길다.'의 교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몇 개의 학교를 옮기면서 필자 또한 경력이 쌓이면서 신규 때 했던 활동 중 일부는 폐기해버린 것도 있고, 여전히 지속하며 발전을 거듭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저 말을 던지는 선배 교사의 미소가 조롱처럼 보였던 것은 기분탓일까? 학생들에게 조금 더 사랑 받고, 다가가려는 정성이야 말로 학교와 교실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인데 말이다. 교사에게 신규, 중견, 원로교사의 구분은 단순히 경력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의 성장을 선 긋듯이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은가?
꼰대의 대표 직종이 '교사'다. 항상 경계하자.
신규와 수 년이 지난 후의 나는 다른 교사가 아니다. 그 때의 내가 없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나도 신규 때는 그랬어"에는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혹은 "그 때의 내가 부끄러워" 라고 하는 자기부정적 암시가 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교사로서의 연속된 '나'일 뿐이다. 신규에 대한 이런 조롱은 학생에게 식어버린 자신의 열정에 대한 자기합리화로 들릴 뿐이다. 그러므로 신규에게 제대로 된 걱정을 표현하고 싶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도 예전에 해 봤는데 이런 점은 이렇고, 이렇게 하면 더 잘 되더라"
"나는 생각도 실행도 못해본 건데, 하고 나면 나한테도 좀 알려줄 수 있어?"
주변 동료교사, 혹은이 옆 반이 항상 나보다 열정적이고 멋져보인다면, 조롱과 자책이 아닌 배움과 조언을 통해 나의 교실을 더욱 나아갈 수 있는 기회로 만들자. 교실 안에서는 모두가 '배우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신규는 그 시절 나의 '무모함'이 아닌, 학생들에게 대한 '사랑'을 일깨우는 소중한 존재임을 생각하자.
2.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1년간 학생들과 미운정, 고운정이 들고 종업 혹은 졸업으로 학기를 마치고 나면, 많은 교사들은 허탈감이나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속된 말로 "내가 사람 만들었는데!" 로 표현되는 학생도 있고, "내가 1년만 더 가르치면 정말 좋을 텐데!"하는 학생도 있다. 그 만큼 4계절이 바뀌는 동안 교사는 학생들에게 온 정성을 기울여 학급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그런 교사를 가끔 상처주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원능력개발평가와 자체적으로 하는 설문, 그리고 문집을 만들 때이다. 솔직히 교사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체 설문을 하거나 교원평가의 주관식 설문을 할 때에 적지 않게 기대를 하는 것이다. 설문 결과 온통 칭찬 일색이라면 당연히 기분 좋을 것이다. (사실 매일 만나는 교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군대나 회사에서 윗사람을 평가하라고 할 때 제대로 된 평가를 기대하는 게 가능할까? 그럼에도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확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문장 한 줄이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지 꼭 찾고 싶다. 저 1명.
그런데 그 수많은 긍정적 강화에도 가끔씩 눈치 없는 한 줄을 쓰는 학생들이 꼭 있다. 분명, 개선과 발전을 위해 쓴소리도 경청하겠다며 시작한 설문인데, 막상 그 문장을 만나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은 왜일까?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사람들은 자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강화시켜주는 정보만 듣는 경향
이는 우리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하기 힘든 이유
그렇다. 애초에 나는 처음부터 부정적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잘해주고 있는데? 감히 부정적인 글을 쓴단 말이야? 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혹시 '답정너' 놀이를 하고 싶은 교사가 있다면 당장 그만 두길 바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솔직하고, 예리하다.
만약, 제대로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더 나은 학급살이를 위한 의견을 수렴을 해보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해보자. 혹여 나올 소수의 부정적 의견과 막말에 상처받거나 중심이 흔들릴 필요도 없다. 의견은 존중하되, 이러한 의견이 있구나 하는 마음속 견제세력으로 인정하면 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적어도 민주주의 학급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는 버리자. '내가 또 뭘해줄 수 있을까?'로 바꿔보자.
3.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필자의 교실에서 학생들 그룹 다툼이 일어났다. 이유를 들어보니 정말 사소한 것이었다. 불러서 훈계하면 5분이면 끝날 정도의 일이었지만, 학생들이 선택과 해결 능력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선생님은 최후에만 돕기로 하고 각자 원하는 결과는 무엇이고 그 결과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할 지 스스로 선택하여 행동해볼 것을 부탁하였다. 반나절이 지나도 두 그룹의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밝아진 표정의 두 그룹의 친구들이 찾아 왔다. "저희, 화해했어요." 나는 방법도 과정도 묻지 않았다.
많은 교사들이 고민하는 지점의 시작과 끝은 대부분 이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해주어야(도와줘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나의 책임인가?"
질문에 대한 범위를 얼만큼 설정하는 가에 따라 학생에 대한 학습, 생활지도, 상담 등 학급살이 전반에 대한 시스템과 노력이 결정된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만큼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저마다 다르다. 이 한계를 깊고 넓게 설정할 수록 교사의 할 일은 많아지고 스트레스와 걱정은 높아진다. 필자는 이 범위에 대한 정답을 말할 수는 없지만, 오답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교사인 나' 한명으로 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사가 가장 전문적으로 해야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다. 학생의 병을 낫게 하거나 치료할 수 없으며 정신과 상담도 불가능하다. 학생의 가정사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으며 학생의 진로와 미래를 책임 질 수도 없다. 학생의 삶은 실제적으로 사회와 가정, 학교가 함께 묶여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문제는 곧 가정과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짊을 교사 혼자 진다는 것은 스스로를 가혹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적극적으로 주변 동료와 관리자에게 도움을 청하고, 지역기관에 알리고, 학부모와 협력해야 한다. 학생의 문제는 당신의 탓이 아니다. '누구의 탓'이 아닌 '모두의 과제'일 뿐이다.
당신은 슈퍼맨이 아니다. 심지어 슈퍼맨도 못하는 일이 있다.
이미지출처 : 영화 '배트맨 VS 슈퍼맨' 예고편
사회가 교사는 이런 모습 이어야 한다며, 많은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수업은 기본이고, 안전, 건강과 행복, 교우관계, 진로와 미래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생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당하는 내용의 기회와 정보를 제공해주면 된다. '내가 다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학생이라는 독립 인격체로서의 선택할 권리와 자율성을 침해하고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뺏는 것임을 기억하자. 당신은 슈퍼맨이 아니다.
*이번화를 끝으로 '당신의 교실이 실패하는 이유' 연재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