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식물 project] #1 동백꽃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년 전 봄이었어요.
지금도 정확히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2017년 4월의 어느 날, 새 학교로 발령받고 출근하던 어느 아침 학교 화단에서 이 꽃을 발견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죠.
아무리 식알못(?)이어도 이 꽃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가 않았어요. 바로 동백이었습니다.
빗물, 아니면 이슬이었을까요. 꽃잎에 맺힌 방울들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이게 내 직장 화단에 있다니! 믿을 수 없이 기뻤습니다.
학교에는 정문, 후문이 있었는데 이 동백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빙 둘러 후문까지 오곤 했습니다. 동백은 제주도나 가야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으니까요.
정확히 그 날부터 저의 식물 덕질이 시작되었습니다.
길 걷다가 처음 보는 꽃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어플로 검색도 했습니다. 디씨 인사이드 식물 갤러리에 가서 물어보기도 하고, 도감도 있는대로 사 들였습니다.
알수록 즐거웠고, 공부할수록 식물은 많았습니다. 그냥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던 그 어떤 식물이 이름을 가진 반가운 식물로 다가오는 경험은 정말 아찔하도록 좋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압니다. 식물에 관심 없는 사람은 있어도, 좋아했다가 다시 무관심해질 수는 없다는 걸요.
올해 1월, 포르투갈에 여행 갔다가 길거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떨어져 있는 동백들을 만났습니다.
동백은 통꽃이라 꽃송이가 그대로 툭, 하고 떨어져버립니다. 꽃잎 하나하나 생색내며 떨어지지 않아요.
통째로 툭, 하고 떨어져버려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쩔 줄 모르게 합니다.
포르투갈의 오랜 도시 포르투에서 이 예쁜 꽃들이 뒹구는 걸 보고 어쩔 줄 몰라하다, 가로로 쭉 놓아보았습니다.
이리 배열하고 저리 늘어놓고. 땅에 굴러다니던 깃털까지 곁들여 사진을 찰칵, 찍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포르투는 무엇으로 기억되는 도시일까요? 에그타르트, 아니면 해리포터 영화에 나왔던 렐루 서점의 도시?
아마 저에게는 평생 동백의 도시로 남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식물 project>를 떠올린 것은 에듀콜라 집필진으로 합류한 2018년 5월부터였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봄에 압도적으로 많으니, 꼭 봄에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너무너무 시작하고 싶었지만,봄을 위해서, 오로지 봄을 위해서 꼬박 10개월을 기다렸고, 어느새 훌쩍 봄이 왔습니다.
"동백꽃 사진을 보내주세요" 공지를 올리고 10분도 되지 않아 사진 한 장을 메일로 받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글과 사진에 마음이 마구 일렁였습니다.
"작년 7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11월쯤 아빠에게 들러서 보니
어머니가 돌보시던 화분에서
동백꽃이 예쁘게 피었더라구요.
아빠가 대신 열심히 키우셨나 보다 하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박지연)
애초에 저는 일상에서 스치는 식물들을 밀착해서 만나보자는 의미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었더랬어요.
처음으로 전달받은 글과 사진에 저는 그야말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미처 전혀 떠올리지 못했어요.
누군가는 식물을 보고 소중한 사람을 떠올릴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동백을 집에서 키울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지연님은 동백을 보고 아버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떠올리셨지요.
"동백꽃이 발갛고 예쁜게 마치 엄마 같았어요."
다른 사람들에겐 몰라도 지연님에게 동백은 온전히 어머니일 거예요.
동백은 봄이 오면서 서서히 지지만, 또다시 겨울이 되면 탐스럽게 피어나니까요.
울컥해졌다가, 지연님의 담백하고 단정한 말투에 다시 눈물을 닦습니다.
최경진님은 제주도에 정착한 분입니다. 여행과 사진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고요.
세계를 누비고 지칠 때쯤이면 제주도의 포근한 안식처로 돌아오는 행운의 사나이죠.
동백, 하면 제주도가 떠오르니 내심 경진님이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을 때 제주의 어디에서 찍으셨을까 궁금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경진님, 제주도의 어디서 찍으신 건가요?"
"제주 송당마을 당오름이요."
오름에 동백에 피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용눈이 오름이나 새별 오름처럼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름. 그곳에 핀 은밀하게 만개한 동백을 떠올려 봅니다.
그래서인지 색이 그윽합니다. 아마 사진을 찍은 이의 깊은 시선 때문이었겠지요.
언젠가 겨울에 제주를 찾게 된다면 카메라를 매고 오름에 오르게 될 것 같습니다.
"동백 드로잉도 돼요?"
꽃을 키우거나 사진으로 찍는 사람도 있지만, 꽃을 조용히 그려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현정님은 보태니컬 아트 수업을 듣고 식물 그리기에 매료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나중엔 1년간 개인교습도 받았다고요.
동백보다 더욱 동백같아서, 그 섬세함과 화려함에 감탄하며 한참 드로잉을 바라봤습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면서, 혹은 보면서 도저히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모양을 그대로 내 스케치북에 옮겨야 할 뿐 아니라 꽃의 호흡까지도 담아야 할 테니까요.
온전히 종이와 나, 색연필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었겠지요.
대구에 사는 제 친구 이주현은 아기를 재우고 홀로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날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끝에 드로잉과 운동을 시작했다고 해요.
힘든 육아 속에서도 본인을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이런 쓸모없이 아름다운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마카로 그리는 동백은 또 다른 톡톡 튀는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제주도에 사는 지소영님은 '실물이 아니어서 죄송해요.'라며 한라도서관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 오셨습니다.
<당신의 식물 project>를 아시고, 꼭 동백 사진을 보내고 싶어서 한 동안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이에요.
도서관 이름이 '한라도서관' 이라뇨. 새삼 그런 곳에서 책을 빌리는 소영님이 부러워졌습니다.
제주도에 사시는 박소해님의 글과 사진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사람 머리가 떨어지듯 꽃봉오리 전체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고 해서 제주 토박이 어르신들은 집안에 동백나무를 못 심게 해요.
그래서 이 동백도 마당이 아닌 돌담 밖에 덩그라니 심어져 있는 거고요."
화려하고 탐스러운 동백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찾습니다. 하지만 동백이 4.3 사건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렇기에 소해님은 민중가수 최상돈님의 <아기 동백꽃의 노래>를 꼭 들어보셨으면 좋겠다고 권하시기도 했습니다.
눈 속의 동백.
꽃 나름의 사정대로라면 참 차갑고 아플텐데. 제 눈에는 그저 너무 아름다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최창남님이 제주 중산간 교래리에서 2017년 12월에 찍은 사진을 차현주님이 허락받고 제게 보내 주셨습니다.
동백을 보고 저를 떠올려 주셨구나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고백합니다.
매달 2번 올리는 연재 글을 좀 쉽게 써볼까 하는 꼼수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지점도 없지 않았다는 것을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당신의 식물 project>를 기억하고, 공유하고, 참가해 주셨습니다.
스마트폰 사진첩에 사람들이 보내준 사진을 차곡차곡 모아놓고, 출근 길 미어터지는 만원 버스 안에서 혼자 싱긋 웃으며 꽃들을 들여다 보곤 합니다.
70여장 되는 사진을 다 한 글에 녹여낼 자신이 없어 평소보다 오히려 고민이 더 많았습니다.
무슨 사진을 고르고, 무얼 포기하지?
모든 꽃이 아름답고, 그걸 찍은 사람들의 마음이 귀해서 한 장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식물 project 동백편>을 한 번 더 쓰기로 맘 먹었습니다.
그대, 오늘도 식물하는 하루되시기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