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창작은 처음입니다만] #12 나만의 쾌락의 아이템 덕질하기
"어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세요?"
내가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아유, 아니에요. 그렇지도 않아요."
응당 겸손한 대답을 해야할텐데, 난 그렇게 대답한 적이 없다.
"그러게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징그럽게 많이 읽고 있네요."
세상에 존재하는 취미생활은 정말 다양하다지만, 책읽기 만큼이나 후광 효과가 있는 취미가 있을까.
내가 집 청소를 말끔하게 한다거나, 매일 TV를 5시간씩 본다거나, 게임을 8시간씩 한다고 해도 저런 칭송을 받을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서 공개한다.
나는 특정 인터넷 서점에서만 저만큼 책을 샀다.물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많이 샀다.
저게 1달 전 기록이니, 지금은 아마..
아니,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이쯤 해 두자.
내 책 덕질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많은 책을 정말 다 읽으세요?"
그에 대한 답변은 나 대신 김영하 작가가 친히 TV 예능 <알쓸신잡>에 나와 말해주기까지 했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물론이다.
가진 책을 다 읽어야만, 새 책을 사거나 빌릴 수 있다면?
집에 <레 미제라블> 전집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집,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우연히 꽂혀있다면 어쩔 셈인가?
그 책을 읽어내기 전까지는 책읽기를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읽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대단하세요."
나는 그때마다 변함없이 대답한다.
"아뇨.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읽는 게 절대 아니고요. 저한테는 이게 쾌락이에요. 오락이고요."
내 중독 증세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책이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읽는 수준이 아니다. 책이 없으면 불안 초조가 극에 달한다.
실제로 외출할 때 가지고 나간 책을 다 읽어, 변비걸린 강아지처럼 초조해하다,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간 일도 있다.
이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외출 할 때 최소 2권에서 3권 정도. 든든히 백팩에 넣어서 간다. 언제 발병(?)할 지 모르니 비상약이 필수 아니겠는가.
다독가들은 거의 99%의 확률로 독서를 쾌락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중독 수준으로 미친듯이 읽어댄단 말인가?
<개인주의자 선언>에 이어 <미스 함무라비> 소설까지 쓴, 글 잘 쓰기로 소문난 판사 문유석도 그런 인간이었나보다.
최근, 문유석 판사가 새 책을 냈다. 이름하여 <쾌락독서>.
난 이미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내가 이 책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내용이 어떤지 상관없었다. 독서가 쾌락이라는데. 일단 반가워서 얼싸안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마음으로)
가끔 이렇게 묻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 읽는 아리랑 7권이 너무 안 읽혀서 멈췄어. 다른 책도 못 읽고 그냥 갇혀버렸어."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잠시 덮어. 그리고 다른 책을 만나. 그러다 다시 그리우면, 옛 책으로 돌아가. 그럼 되는거야."
문유석 판사는 자신의 독서를 편식에 비유했다.
"엄마가 억지로 먹으라는 토란국은 국물만 몇 수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소시지야채볶음은 소시지만 쏙쏙 골라 먹는데,
운좋게 킹크랩을 먹게 되면 마지막 다릿살 하나까지 꼼꼼히 발라먹기 마련이다.
모든 음식을 똑같이 정성스럽게 먹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부분만 먹고는 다음 음식으로 넘어간다."
나는 어릴 때 무슨 맛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콩국수를, 이젠 구수하다며 잘만 먹는다.
내 입맛이 어떻게 바뀔 지 모르듯, 내 독서취향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어떤 책이 안 읽히면, 아직 때가 아니겠거니 한다.
그때가 영원히 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기억하자.
우리가 매일 1편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평생 책을 읽는다고 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의 먼지만큼도 다 읽지 못하고 죽는다는 걸.
그의 서재에는 1만 7천여권의 책이 있고, 스스로 그 책들을 다 읽고 죽지 못할 것이라고 벌써 말한 적도 있다.
아주 노골적인 제목으로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좋은 책을 어떻게 척척 골라내서 사는 걸까? 이야기를 들어보자.
"독자로 보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실패한 독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1만권 이상의 책을 내가 내 돈을 내고 샀단 말이에요.
사람이 자기 돈으로 뭘 산다는 것은 굉장히 치열한 경험이에요. 그걸 1만번 이상 반복했단 말이죠.
저는 책을 너무 많이 잘못 산 결과로 책을 잘 사게 된 사람이거든요. 그 이유는 과거에 너무 많이 실패한 일종의 빅데이터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나 또한 물론, 무슨 책을 살지 고민하는 일 따윈 절대 없다.
항상 장바구니에 5백만원 이상의 책이 쌓여 있다. 소중하게 모아둔 목록이지만, 6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된다.
애써 보관함으로 옮기진 않는다. 그 동안 사지 않았으면 인연이 다한 것. 고이 보내준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장바구니엔 이미 수천만원 치 책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책을 이렇게 고른다.
일단 좋아하는 작가가 아주 많이 있다.
나와 취향이 잘 맞거나 식견이 높은 친구가 추천해 주면 일단 메모해 둔다.
기사나 리뷰를 읽고 끌리면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책 팟캐스트를 듣고 좋으면 얼른 기록해 둔다.
좋은 책은 늘 차고 넘친다. 하루가 48시간이 아닌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에 필적하는 영원한 딜레마.
'고전이나, 신간이냐.'
항상 고민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정도는 읽어야 되지 않는가 말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을 읽어야 한다고 하니까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마음.
그런 내 고민을 말끔하게 해소해주는 구절을 이 책에서 만났다.
패션지의 에디터를 거쳐 현재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 인터뷰어 김지수가 만난 16명의 인터뷰집<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다.
<고민하는 힘>으로도 우리나라에서 꽤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은 이렇게 말한다.
"신문 읽기는 피부 호흡, 신간 읽기는 폐 호흡, 고전 읽기는 복식 호흡입니다.
페이퍼의 활자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흡수하게 만듭니다. TV나 인터넷에서 흘러가는 플로(flow)랑은 다르죠.
둘이 모두 있어야 균형 잡힌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 하나로 말끔하게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신속하지만 밀착된 이야기를 접하고 싶으면 신문이나 신간, 현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거대한 월척을 낚고 싶으면 뜸을 들여 가면서 고전을 읽을 가치가 있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이 아이디어 또한 독서를 통해서 건졌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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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덕질의 마무리는 뭐니뭐니해도 함께 읽기!
책을 더 많이 읽는 것이 목표라면, 책 모임은 그야말로 시간낭비.
그 모임을 하러 오고 가는 시간과 앉아서 함께 얘기하는 시간을 합치면 최소 4,5시간이 든다.
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 바로 책 모임이다.
종이책, 도서관에서 빌린 책, Crema나 리디북스에서 읽는 전자책, 휴대폰으로 읽는 경우까지.
이젠 하드웨어도 달라졌다.
여전히 전자책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고집스럽게 종이책이다.
북한을 주제로 책을 읽었을 때는 4권의 책을 힘 닿는 만큼 각자 읽어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자본주의 공화국'
'조난자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팔과 다리의 가격'
한 가지 테마로 3,4시간동안 수다 떨다보면 내가 팟캐스트나 토크쇼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인증샷은 필수!
나 같은 사람들을 소재로 만든 웹툰도 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다음 웹툰에서 완결이 되고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
웹툰으로 다 무료로 볼 수 있는 걸 또 종이책으로 돈 주고 사서 보는 사람이 있냐고?
물론이다. 책 중독자들을 얕잡아 보는 건 금물.
책을 펴자마자 우리는 작가에게 팩폭을 당한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그 병, 평생 못 고칠 거란 거 안다. 사실, 고칠 생각도 없다는 것도.
같은 책을 읽은 사람과 같은 건물에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같은 책을 읽은 사람과 지하철 같은 칸에 탈 확률은?
그럼, 당신과 내가 앞으로 같은 책을 읽게 될 확률은?
그 희박한 확률에 설렘을 얹은 채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덕질, 어떻게 좀 잘 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