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창작은 처음입니다만] #11 내 몸뚱이, 이번 생은 틀린걸까
다이어트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주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우리 엄마는 어릴 때 다리가 가느다란 게 부끄러워서 치마를 입고 다니지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그래서 임신을 한 우리 엄마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이렇게 기도를 했던 것이다.
"우리 딸, 꼭 다리 굵은 아이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아홉 달 후 우리 엄마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졌다.
내가 이 얘기를 들은 건 내가 대학교 신입생 즈음이었던 것 같다.
"참 나. 엄마 지금 나 데리고 장난해? 세상에, 그런 소원을 빌면 어떡해?" (버럭)
"나 어릴 땐 다리 굵은 게 좋은 거였다니까. 시대가 바뀔 줄 몰랐지..." (주춤)
이렇게 타고난 내 몸, 운명이겠거니 하고 23년을 살았다.
내 몸 일대기에 큰 지각변동이 있었던 건 2006년이었다.
그해 여름 인디스쿨 MT를 다녀온 다음날이었다. 샤워를 마친 나는 무심코 거울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옆 모습을 보니 임산부처럼 배가 불룩했다. 분명 방금 화장실에 다녀 왔는데?
배를 꾸욱 눌러봐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때 결심했다. 독하게 살을 빼기로. 그렇게 석달을 나는 하루를 빼먹지 않고 음식을 줄이고 뛰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귀가하더라도 운동은 꼭 했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집 앞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꼭 1시간을 꼬박 달리고 들어왔고, 식사는 1/2로 줄였다.
음료는 물과 허브티, 블랙커피만 허용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간식은 나와 상관없는 음식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몸무게를 쟀다.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꼭 해야 하냐고 말릴 정도였다.
나는 눈에 봬는 게 없는 상태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체중계 위의 숫자만 보고 달렸다.
효과는 2주도 안돼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몸무게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기쁘게도, 옷이 헐렁해서 싹 다 새로 사고 커진 옷들은 버려야만 했다.
나중엔 체중감량에도 가속이 붙어 이틀에 1kg씩 빠질 정도였다. 그렇게 58kg이었던 나는 48kg까지 몸무게를 감량했고,
나는 그게 내 몸의 완성인 줄 알았다. 그땐 정말 그걸로 고민은 끝인 줄로만 알았다.
젊고 건강하니까. 살이 좀 통통하게 올랐던 건 말고는 괜찮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문제는 체중이 아닌 다른 데서 터졌다.
작년부터 어깨가 뻑뻑하고 목줄기가 뻐근하다는 느낌이 왔다.
못 쉬어서 그런가, 일정이 지나치게 많아서 그런가. 쉬면 괜찮겠지, 좀 자면 괜찮겠지.
그렇게 여행도 가고, 이것저것 다 하고 살았다.
멍청했던 나. 몸이 나 좀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였는데. 그 SOS를 나는 애써 무시해 왔다.
올해 7월, 반갑지 않은 몸의 불청객이 오고야 말았다.
동화도 쓰고, 연재글도 쓰고 평소보다 독서량과 글을 쓰는 양이 압도적으로 늘고선 목의 뻑뻑함이 더해졌다.
목과 어깨를 지나 왼쪽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그러더니 하루만에 그 찌릿함이 발끝까지 전달됐다.
내가 아무리 근골격계 질환에 무지하다고 해도 이건 알았다. 손끝이 저리면 그건 디스크 증상이라는 걸.
밤새 잠도 잘 못 자고 울다가, 다음날 조퇴하고 바로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검은 것은 배경이요, 하얀 것은 내 뼈라! 부드러운 C를 그리고 있어야 할 내 목뼈는 빳빳한 1자 모양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일자목이구나.
내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훌쩍훌쩍 울기만 하니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운다고 고쳐지지 않아요. 지금부터 열심히 운동하고 치료받으면 돼요."
"정말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조금이라도요?"
"그럼요. 울지 마세요."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슥슥 닦았다. 약간의 희망을 품고.
집에 가서 몸에 대한 모든 에세이를 책장에서 끄집어 냈다.
엉엉 울며 병원으로 달려가기 전까지 내가 재미로, 오락으로 그냥 읽어내려갔던 모든 몸에 관한 에세이들.
다시 한 장 한 장 펼쳐 읽으니 남 얘기가 같지가 않았다.
오랜 직장생활로, 운동하지 않았던 방치된 세월로 망가진 몸과 마음들.
다시 일으키는 텍스트로 기합 팍팍 들어가는 책들, 여러분과 함게 내 밑줄 친 구절을 읽고 싶다.
인권운동가 류은숙 씨의 맛깔나는 몸 에세이 <아무튼, 피트니스>.
책날개의 저자 소개부터 라임이 대단한다.
"운동(movement)을 한 지 25년이 넘었다.
쉰이 될 무렵 여러 군데가 아프고나서부터 운동(exercise)으로 피트니스를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된다는 친구들의 등쌀에 떠밀려 어쩌다 헬스장에서 PT를 받게 된 주인공,
매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트레이너의 말에 투덜대다, 어느 순간 습관적으로 끼니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먹는 행위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게 중요했다.
남은 음식 청소하기, '처묵처묵', 때운다, 해치운다, 아무거나...
내가 먹는 행위를 표현하는 데 이런 말들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아래 구절을 읽고, 3개월에 10kg를 우습게 빼던 10년 내가 떠올랐다.
살을 쉽게 빼지 못하는 사람을 나약하다고 비웃었던 그때의 나를 뒤늦게 반성했다.
어렸구나. 저마다의 몸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정말 몰랐구나.
"운동을 해서 몸이 좀 좋아졌다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또 다른 버전을 만들지 말자.
똑같은 산수로 서로 다른 생을 비교할 수 없다.
생애 주기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특화된 나의 몸과 활동이 있다."
"나는 이제 내 몸을 혐오하지 않는다. 아쉽고 모자라도 내 몸이 나와 동행할 나의 일부라는 것,
남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활력이 있으면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부부동반으로 지리산을 갔다가, 내 몸은 글렀다가 등산을 포기하고 아래에 머물렀다.
그때 생각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까봐 등산을 포기하고, 들떠서 올라가는 사람들 등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 좌절감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을 때 우리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어진다.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 근데 또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왜 이렇게 됐지. 왜 이렇게 된 거지. 목소리는 잦아들고..
먼저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을 도전한 주인공, 나랑 너무 똑같은 고민을 했구나. 공감돼서 밑줄을 좍 그어놨다.
"적어도 6개월 이상 계속 강습을 받아야 자유형과, 배영, 평영, 접영까지 대충 섭렵한다.
그쯤 되면 몸에 힘이 빠지면서 물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면, 내 경험으론 말짱 도루묵이다.
미처 재미를 느낄 만한 단계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수영을 못 한다거나, 본인과 잘 안 맞는다고 고개를 젓곤 한다."
몸 에세이는 몸만 다루지 않는다.
맘대로 되지 않는 자기 몸과 상대하면서 인생을 깊이 통찰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그게 내가 몸 에세이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얼굴과 몸매는 절대적이거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외모는 절대로 인성과 태도를 앞지르지 못한다.
젊은 하나로 모든 약점을 가리던 휘장이 하나하나 벗겨질 때,
꾸준히 연마해 온 강함과 우아함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할 것이다."
무슨 운동을 해야 하나?
이것 저것 찔끔찔끔 많이도 해 봤다.
수영 한 달, 스피닝 이틀, 발레 한 달, 요가는 10년 전에 3개월, 필라테스 6개월, 파워워킹은 몇 년간 꽤 꾸준히.
(지금은 미세먼지 때문에 거의 못하고 있지만)
이것저것 손만 대고 제대로 못한다고 스스로를 자책해 왔다.
돌이켜보면 그럴 일은 아닌 것 같다.
수영은 집에서 멀어, 새벽 5:30에 나오기가 쉽지 않았고,
스피닝은 귀를 찢는 시끄러운 음악을 견딜 수 없었다. 귀도 보호해야 했다.
운동을 그만두는 데는 갖가지 핑계가 있지만, 그 핑계가 또 나름대로 다 사연이 있다.
나의 까다로운 고객, 내 '몸과 마음' 이 아무런 컴플레인을 걸지 않을 그런 운동을 찾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목디스크 의심으로 병원에 갔다가 돌아온 그 날, 다시 이 책을 펼쳤다.
나를 위한 구절구절이 하얀 조약돌처럼 빛나고 있었다.
"물론 안 되는 건 (반복하면) 된다. 언젠가는 된다.
그러나 그런 성취 여부를 떠나 맨몸으로 해나가는 요가엔 그 자체로 심플한 멋이 있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조울증과 선택장애를 겪는 현대인들에게) 대단히 드문 체험이 아닌가 생각한다.
삶의 수많은 가능성에 압도당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매트 위 요가를 강권하는 이유다."
목디스크를 의심 증상을 손끝저림으로 만난 다음 날, 바로 요가를 등록했다.
등록하면서도 마음이 푹 꺼졌다.
'건강 관리 잘 못해서, 운동하느라 또 돈만 나가고. 정말 속상하다.'
돈이 아까워 하루하루 갔을 뿐이다. 그런데 가다보니 요가 자체에 재미를 느꼈다.
동작이 안 되면 안 되는대로, 되면 되는대로.
다운독 자세를 하면 등과 뒷허벅지, 오금이 쫙 펴지면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시원함과 개운함이 온다.
뒷꿈치를 바닥에 붙일수록 그 당기는 느낌은 더하다.
무릎 뒤가 유난히 당기는 날이면,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네.'
뒷꿈치를 바닥에 밀착해도 많이 당기지 않고 시원하기만 하면
'좀 하는데!' 스스로 칭찬한다.
나는 몸짱이 될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그저 건강하게, 내 양다리로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활기차게 걸어내는 내 몸에 감사하다.
감사하니까 더 잘하려고, 오늘도 새벽부터 요가를 간다.
모두가 운동했으면, 만나면 반갑게 운동수다 떨었으면.
그것이 숨쉬듯, 밥먹듯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