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창작은 처음입니다만] #10 날마다 쓰면 된다고요? 그걸 누가 몰라요?
정확히 기억한다. 친구의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 건 2015년 8월이었다.
나는 임용에 새로 도전하느라 방학도 반납하고 선풍기 하나 붙잡고 원룸 구석에서 임용 교재와 싸우고 있었다.
임용에 집중해야 하니, 한동안 연락이 잘 안 될거라고, 주변 친구들에게 미리 알려둔 터였다.
그런데 전화가 울렸다. 반가운 이름. 내 절친이었다.
"여보세요? 여진아?
그녀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잘 지냈어? 웬 일? 왜 이리 흥분했냐?"
친구는 숨이 막 넘어갈 지경이었다.
"응, 그게! 그게! 나 ! 나! ㅇㅇ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 대상 받았어!"
"뭐, 뭐라고?"
"처음으로 습작을 하나 썼거든. 근데 그걸로 대상을 받았다고!"
우리 둘은 거의 호흡곤란 수준으로 헐떡거리면서 격한 기쁨을 주고 받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대상이라니. 대상이라니.
10년전 쯤, 아직 신규교사 티를 벗지 못했던 우리는 500cc 생맥주 한 잔 시켜두고 자주 10년 후, 20년 후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었다.
20대 중반에 친구는 이미 그림책에 미쳐 수백권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림책은 왜 이렇게 많이 모은거야?" 라는 내 물음에 친구는
"응, 나 그림책 작가가 되는 게 꿈이야.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한 20년 후?"
라고 대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너라면 당연히 그림책 작가 되고도 남을거야!"
라고 겉으로는 친구를 응원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었다.
'작가가 아무나 되는 건 아니지. 그게 그렇게 쉬운 건 줄 아나?'
나라면 꾸지도 못할 포부를 당당하게 밝히는 친구가 눈부시게 멋져보이고 샘이 났다. 맞다. 그건 바로 질투였다.
"못할걸."
"야, 그건 아무나 못하는거야."
뭔가 시작하고 싶어졌을 때, 마음이 부풀었을 때 우리는 이런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걸음마를 떼기 아주 전부터, 부모에게서, 선생님에게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사실, 내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없을거라고 미리 단정짓는 사람은 부모도, 친구들도 아니다.
무섭게도, 바로 나 자신이었다.
다름아닌 내가 나 자신의 넘쳐나는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친구가 도전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깨달았다.
친구가 대상 수상 소식을 내게 알리고, 이듬해인 2016년에 책이 나왔다.
나는 너무 기뻐서 책을 여러권 사서 주변에 돌리고 야단법석이었다.
그 책은 지금 여러 학교에서 널리 읽히고, 심지어 우리 학교 공개수업 때 그 책으로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책은 중쇄를 거듭해, 꽤 많이 팔려 친구에게 여러번 축하를 해 주었다.
나는 늘 책을 빌리거나, 사서 읽는 사람이었다.
평생을 매우 충성스럽고, 열정적인 독자로 남는 게 내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그런데,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해 1월, 뉴질랜드 여행 갔을 때였다. 그날따라 밤에 잠은 오지 않고, 페이스북에 접속해 사람들 글에 '좋아요' 나 누르면서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 학교 58기 모집"
광고가 눈에 확 들어왔다.
무려 6개월짜리 코스, 유명한 동화 작가 선생님이 이론 강의를 해 주실 뿐 아니라, 습작도 함께 합평하는 자리라고?
눈이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이건 사야 해, 이건 해야 해. 얼른 얼른.
흥분해서 벌벌 떨리는 손으로 수강료를 계좌이체로 송금했다.
1월말 인천공항에 귀국. 집에 가서 짐을 풀자마자 강의실로 달려갔다. 기다리던 동화 수업이 시작되었다.
초반 3개월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동화 작가 선생님들이 오셔서 수업해 주시고, 자신들이 쓴 작품들 얘기도 재미있게 해 주셨다.
4월부터는 작품을 써 가야만 했다. 없는 이야기가 어디서 나오나. 땅을 파건, 도둑질을 해서건 어떻게든 작품을 완성해서 가야만 했다.
많은 수강생들이 이때 중도하차했다.
글을 사람들에게 공개한다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니까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일기장 대신 쓰고 있는 SNS에 당시 내가 올렸던 글을 보며 감정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이건 첫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의 내 환희.
내가 남긴 기록을 보니 두번째 합평 때 꽤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작품생활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창작의 애환을 글로 남겼더니 여러 동화 작가 선생님들의 공감어린 댓글을 받기도 했다.
다섯 번째 작품을 대차게 여러명한테 까이고 비장한 각오를 남기기도 했다.
물론,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장편은 아직이다.
아동문학 작가 코스에서 내가 써야 하는 건 단편 5개였다.
작품을 써야 된다고 생각하니, 세상의 모든 것이 글감으로 보였다.
이윽고 첫번째 작품을 썼을 때의 등줄기가 찌릿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날은 마치 다리가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팠다.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다섯 편 모두 마칠 때마다 그런 감정은 아주 비슷했다. 익숙해지거나 심드렁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칠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쾌감이 정수리를 관통했다.
단편을 완성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짜릿한데, 장편은 어떨까?
장편이라고 소리내서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 앞이 아득하게 어두워졌지만,
언젠가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머리 속에서 떨쳐지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으면 매일 써야 한다고,
글에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데 그건 바로 '써지지 않더라도 매일 엉덩이로 버티는 능력' 이라고 말했던
셀 수 없이 많은 얄미운 작가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는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얀 바탕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하며
지금도 머리를 쥐어뜯는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친다.
그래요. 같이 버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