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창작은 처음입니다만] #4 먹고, 그리고, 사랑하라
놀랍게도, '저도 창작은 처음입니다만' 연재 글을 읽고 드로잉을 시작했다는 사람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일 파스텔이 뭔지 궁금해서 사러 갔다는 분도 계셨고, 드로잉 클래스에 등록을 하신 분도 생겼다.
시작은 반이 아니다. 어떤 운 좋은 뜨거운 사람에겐 시작이 거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당신은 '하얀 도화지 공포증' 을 간신히 극복했다. 아니, 극복하려는 중이다.
따라그리기라는 치트키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뭘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 모를 때 뭐든 따라그리면 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아무거나 따라 그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따라그리기에서 가장 만만하고 재미있는 건 뭐니뭐니해도 음식이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 아니다. 23일도 아니고 23개월도 아니고 23년 동안 자신의 삼시세끼를 그림으로 기록한 사람이 있다.
여행회사에서 영업과장으로 일하는 1962년생 시노다 나오키 씨. 바로 시노다 과장이다.
1990년 스물 일곱이 되던 해, 처음으로 대학노트에 세 끼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림으로 세 끼 식사를 그렸다고 한다.
그림 뿐만 아니라 그 그림에 대한 간단한 (혹은 아주 긴) 설명도 빠짐없이 적었다.
1990년에 그린 그림과 2013년의 그림을 비교하면 확연히 다르다. 초반의 그림은 무척 투박하다.
최근 그림을 보면 정교하고 먹음직스럽다.
시노다씨가 그림을 전공한 것도 아니니 우리랑 입장은 똑같다.
23년을 내리 그려대는데, 도대체 그림 솜씨가 안 늘 재간이 있겠는가?
누가 "당신, 절대로 잘 그리지 마, 잘 그리지 말라고!"으름장을 놓아도 드로잉 실력이 늘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최근에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도 출간했다. (와우!)
여행과 드로잉 은 그야말로 찰떡 궁합이다.
혼자 여행을 가서 한가롭게 거닐며 낯선 곳의 정취를 느끼고 싶으면 드로잉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여행 드로잉 중에서도 음식 드로잉은 그야말로 즐겁다.
사진으로 직어둔 음식사진은 너무 많아서 나중에 사진 파일이 어디 쳐박혀 있는지도 모르지만,
한글로 써도 좋고, 영어로 써도 좋다.괜히 외국어로 한 번 써 보면 이국적이고(?) 폼나고 더 좋다.
음식을 종류별로 그려 콜렉션을 하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과일을 종류별로 그린다든지, 갖가지 머그잔을 한 종이에 옹기종기 그려보자.
까무러치게(?) 예쁘다. 원래 그림은 그려놓고 자뻑하는 재미에 그리는거다.
마음껏 감탄하고, 맘껏 주변에 보여주시라.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파스타를 종류별로 그려보는 것도 큰 재미가 있을거다.
면발이 잘 드러나게 하려면 얇은 펜과 굵은 펜을 번갈아 펜드로잉하면 좋을 것이다.
색깔을 꼭 넣지 않아도 된다. 모여 있기만 해도 아주 그럴듯한 그림이 나온다.
이 글에 줄곧 강조했듯이, 음식과 드로잉은 찰떡 궁합이니까 :)
음식을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리기 위해 음식을 시키는지, 음식을 먹는 참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뭐, 아무렴 어떤가.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거고, 마침 비가 오니 잘됐다 하며 술을 마시는거고,
당신이 하필 거기 있어서 사랑에 빠지는 거고, 인생이 다 그런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