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창작은 처음입니다만] #3 따라 그리는 게, 뭐가 어때서?
두 번에 걸쳐 드로잉을 찬양하는 글을 썼더니 누가 말했다.
"좋아요. 이제 그리기로 마음 먹었어요!"
오,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당신은 이제 곧 멋진 일상예술가가 되실 겁니...
(불쑥)
"아뇨, 잠시만! 근데 도대체 뭘, 뭘 그려야 하죠?"
아주아주 좋은 질문이다.
뭔가 그려보기로 맘 먹은 당신, 도대체 뭘 그려야 할까?
(처음으로 그려본 무화과 그림. 무화과가 영어로 Fig인 것도 처음 알았다!)
쉽게 말해 정답은 없고, 옵션은 많다.
미대입시학원에 가면 선긋기를 먼저 하라고 할 것이다.
소묘를 하게 될 것이고, 줄리앙이나 아그리파 같은 석고대가리(?)를 줄창 그리게 될 것이다.
정말 좋은 방법이다.
취미로 미술을 배우러 간 사람들이 제풀에 지쳐 한두달 안에 그만두게 된다는 단점을 빼면 말이다.
어쩌다 드로잉 도구나 재료가 손에 들어오면 흥분된 마음에
그걸 이용해 그린 그림들을 막 찾아본다.
"어머..수채화 완전 예쁘다! 나도 저렇게 그려봐야지!"
하는데 막상 그려보면 스케치북 위에 잘못 반죽된 고구마 같은 게 하나 그려져 있을 뿐이다.
'에이, 그럼 그렇지.'
하면서 괜히 혼자 화를 벌컥 내거나 한숨을 폭 쉬고, 그렇게 스케치북을 처박아 두기 일쑤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겠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다.
마음만 앞서서 내 앞에 있는 커피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친구에게 그려줄 예쁜 엽서 같은 걸 그리고 싶었다.
그래, 말은 참 쉽지.
우물에서 숭늉 찾을 일도 아니고 그게 어디 쉽게 되냔 말이다.
그리고 싶은 마음은 가득인데, 뭘 그릴지 모르던 어느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건 크레파스로 그린 걸까? 느낌이 참 좋은데."
그림 아래에 적힌 설명을 읽어보니 oil pastel이란다. 파스텔은 알았지만, 오일 파스텔은 처음 듣는다.
(부끄럽지만 시간이 좀 지나, 오일 파스텔과 크레파스가 결국 같다는 걸 알았다!)
내친김에 화방에 가서 오일 파스텔을 사니 48색에 단돈 1만원도 안 한다.
'오, 득템!'
내 돈 주고 샀는데, 왠지 횡재한 기분이 든다.
그럴리가! (하하)
오일 파스텔로 예쁜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릴 수 있는 책을 한 권 사고, 아침마다 한 점씩 따라 그렸다.
내 독창적인 작품도 아니고 그저 따라 그렸을 뿐인데,
모아두니 꽤 그럴 듯했다.
번번히 찍어서 올리니 사람들이 댓글로 작품이 예쁘다고 칭찬도 해 주었다.
그 댓글에 더욱 신이 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렸던 나날이었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음식 그렸어요?"
"얼른 보여주세요!"
그저 원래 있던 그림을 따라 그렸을 뿐인데
보여주는 나도 뿌듯해했고, 보는 아이들은 날마다 감탄했다.
"선생님, 선생님 36색 색연필 좀 써봐도 돼요?" 하고 드로잉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물론이지! 얼마든지 그려."
이 세상에 따라 그릴 거리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래도 무엇을 그릴지도 떠오르지 않을 당신에게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첫번째, 구글 이미지에 가서 검색을 한다.
수채화로 예쁜 꽃을 그리고 싶으면 watercolor flower라고 검색하면 되고,
오일 파스텔로 강아지를 그리고 싶으면 oil pastel dog라고 검색하면 된다.
색연필로 음식을 그려보고 싶으면 color pencil food라고 검색하시라.
평생 따라 그려도 다 못 그릴만큼, 독창적이고 예쁘고, 매력적인 작품들이 차고 넘친다.
컬러 프린터가 있으면 뽑아서 보면서 그리면 되고,
그것도 없으면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따라 그리면 될 일이다.
두 번째, 서점에서 책을 고른다.
각종 드로잉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책이 수없이 출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서점에 가서 '색연필' 이라고 치면 700종이 넘는 책이 나온다. 미리보기로 찬찬히 확인하면서 골라보시라. 리뷰를 참조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몇 권의 후보를 골랐으면 서점에 직접 가서 살펴보고 사면 된다.
(한 권만 사러 갔는데, 여러 권을 사들고 올 확률이 높긴 하지만, 나쁠 것 없다!)
마구 끌리는 재료를 발견하면, 맘이 시키는대로 자연스럽게 따라가 봤으면 좋겠다.
그 매력에 흠뻑 젖어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하다보면 그 재료의 특성을 알게 되기도 한다.
꼭 공식을 따라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이리저리 홀로 탐험하다가 막히면 인터넷이나 책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렇게, 그렇게 한걸음씩 가면 된다. FM의 길은 없다.
똑같이 따라 그리다가 디자인만 조금 다르게 해 봐도 된다.
그림이 두려운 당신에게는 꽤 큰 한 걸음이다.
색만 아주 조금 다르게 해도 된다.
색을 다르게 하는데도 과감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저 색을 다르게 했을 뿐인데 그 그림이 꽤 볼만하다고 느껴질 때,
가슴 속에서 스물스물 나오는 기쁨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그 따라 그린 그림을 당당히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 보자.
수줍은 기쁨이 두 배가 될 것이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