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창작은 처음입니다만] #2 혼밥, 혼술? no, no. 그림은 같이!
초록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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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08:23
나는 혼자 뭘 잘 한다.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혼자 시간을 만끽하는 게 내심 더 좋다.
혼밥? 자신 있다.
혼술? 못할 것 없다.
혼영? 영화는 혼자 보는 게 제 맛이다.
그림은?
드로잉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함께 나가서 하는 야외 드로잉의 맛을 알게 되었다.
<2014년 4월, 야외 드로잉 하는 친구와 나의 등짝>
같은 곳에서 같은 건물을 그려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르게 그렸다.
분명히 같은 물감과 같은 붓을 구입했는데도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공원 벤치에 앉아 스케치북을 들고 몰두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꽤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묻곤 했다.
"그리기 대회 같은 거예요?"
"오늘 무슨 행사 있어요?"
나는 그때마다,
"아, 저희 모임에서 야외 드로잉 하는 날이에요!"
하면서 기분 좋게 거들먹거렸다.
"와, 잘 그린다."
"가게를 똑같이 그렸네."
사람들이 가까이 와서 자기들 쪽에서 그림을 보면 그림이 거꾸로 보일테고, 그러면 내가 그린 것보다 더 잘 그려 보였을 것이다.
나는 굳이 거기다 '저, 드로잉 시작한지 두달도 안 됐어요!' 라고 덧붙이지 않았다.
잘 그리는 사람인 척,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찡끗해 줄 뿐이었다.
나는 야외 드로잉을 할 때마다 소풍 가는 것처럼 들뜨곤 했었다.
일단, 같이 그릴 친구나 드로잉 모임의 사람들이랑 함께 하는게 신이 났다. 최소 2시간 정도는 밖에서 앉아 그려야 하니 도시락과 간식을 꼭 챙겼다.
햇빛에 눈이 부실 수도 있으니 선글라스와 모자도 잊지 않았다.
엉덩이가 배길까 푹신한 휴대용 깔개도 챙겼다.
A5 사이즈의 스케치북, 색연필과 휴대용 수채도구를 챙기면 준비 끝!
야외 드로잉은 단연, 봄과 가을이 좋다.
2017년 봄엔 상수에서 모였다.
드로잉 초반만큼 매일매일 꾸준히 그린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나는 과감하게 연필과 지우개를 필통 안으로 넣어버렸다.
드로잉 초반만큼 매일매일 꾸준히 그린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나는 과감하게 연필과 지우개를 필통 안으로 넣어버렸다.
"여진씨, 펜으로 바로 그리려고요?"
"네! 그냥 천천히 그리려고요.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리고 하니까 그게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너무나 화창한 날, 상수의 어떤 가게를 골랐다.
이 가게가 내 눈에만 예뻐 보인 건 아니었던지 4명이 쪼르르 앉아서 그렸다.
삼삼오오 나가는 야외 드로잉의 가장 좋은 점?
눈으로는 화창한 풍경을 보고, 손으로는 부지런히 그림을 그린다.
옆 사람의 얼굴을 볼 시간은 없지만, 입으로는 얼마든지 수다를 떨 수 있다.
영화를 보러 가면 꼼짝없이 두시간 동안 스크린만 봐야 하고, 이야기도 나누기 힘들다.
드로잉은 그렇지 않다.
드로잉은 그렇지 않다.
각자의 그림을 완성하면서, 함께 서로의 삶을 나눈다.
내가 함께 하는 야외 드로잉을 좋아하는 이유다.
2017년 5월엔 남산도서관으로 생태드로잉을 갔다.
산 속에 있는 도서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는가!
산 속에 있는 도서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는가!
날은 쾌청하고, 햇살의 질은 좋았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 우리가 그릴 만한 나뭇잎이 얼마든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새 잎을 뜯기보다는 바닥에 떨어진 잎을 아무거나 주으면 됐다.
다 그리고 나서 모아보면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가슴이 초록으로 물드는 순간.
반면, 실내에서 하는 드로잉은 또 그만의 매력이 있다.
일단 쾌적한 실내에서 편안하게 테이블에 앉는다. 커피는 필수!
"진짜 오랜만이다!"
"왔어?"
웃으면서 모두 가방에서 주섬주섬 스케치북을 꺼낸다.
바쁜 친구들을 위해 주로 내가 오일 파스텔과 색연필을 챙겼다. 스케치북을 못 챙겼으면?
아무 문제 없다. 내가 한 장 북, 찢어주면 된다.
모두 스케치북이 없으면?
그래도 문제 없다. 카페에서 쓰는 티슈 한 장, 볼펜 한 자루만 있으면 된다.
그곳이 바로 캔버스가 된다.
다 그리고 나서 함께 부산을 떨며 사진을 찍는 순간은 '함께 드로잉'의 백미다.
이게 없으면 드로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할 수가 없다! (히히)
커피 한 잔 하며 드로잉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우리 뿐만은 아니었던지 잠실에는 음료를 주문하면 종이와 팔레트를 빌려주는 드로잉 카페도 있다.
음료를 트레이에 담아서 주는 게 아니라 팔레트에 이렇게 올려 준다.
이 자체가 한 장의 엽서 같아서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친구들과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니다.
애초에 드로잉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건 자연스러웠다.
"얘들아, 우리 이번에 만나서 커피 마시면서 그림 그릴래?"
한동안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살짝 제안을 해 보았다.
"나 그림 못 그리는데."
"상관없어. 내가 재료 다 챙겨갈게! 스케치북만 한 권 가져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커피 한 잔, 그림 한 장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이 예술이다.
(To be continued...)
애초에 드로잉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건 자연스러웠다.
"얘들아, 우리 이번에 만나서 커피 마시면서 그림 그릴래?"
한동안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았던 친구들에게 살짝 제안을 해 보았다.
"나 그림 못 그리는데."
"상관없어. 내가 재료 다 챙겨갈게! 스케치북만 한 권 가져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커피 한 잔, 그림 한 장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이 예술이다.
(To be continued...)
<작년 4월, 서촌 갤러리 팩토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