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04
2019년, 개정 교육과정 교과용 도서가 처음 현장에 선보일 때는 교과용 도서의 흐름을 따라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6학년 1학기에 편제되어있던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사 부분부터 현대사까지의 역사 영역이 5학년 2학기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면서 5학년에서 6학년 올라오는 어린이들을 위해 그 해에는 사회를 두 단원이 아닌 세 단원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 6학년 1학기 사회 1단원의 시작이 4·19 혁명인 것은 아마도, 5학년 2학기 역사 영역을 현대 민주주의 역사와 연결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덕택에 교과용 도서의 순서대로 단원을 진행하면 정말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가게 됩니다.
4·19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이 초등학생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연코 평범한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배우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 세 가지 민주화 운동을 배운 후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배우는 우리나라 교과용 도서의 편제는 자칫 4·19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이 가진 '민주적' 가치에 집중하지 못한 채 그저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만 훑고 지나가는, 반쪽짜리 배움에 그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중단원 2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가장 앞서 배우면 됩니다. 정치는 무엇인지 배우고 나서, 정치 제도로써의 왕정과 민주정을, 소수의 사회 구성원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정치 참여를 대비하여 배운 후,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었음에도 어떻게 독재정으로 변질되는지를 배운다면, 4·19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의 핵심적인 쟁점을 간추려 제시하는 것이 쉽습니다.
4·19혁명은 유사 왕정을 꾸려 나갔던 이승만 박사 및 그 추종자들에 대하여 민주주의 제도를 되돌려 받기 위한 시민의 혁명이고, 5·18 민주화 운동은 (어쨌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행정부가 민주주의 제도를 망가뜨리면서 독재로 변질된 후유증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이며, 6월 항쟁은 훼손된 민주적 절차를 시민의 힘으로 복원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정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무력이 오히려 거꾸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정부를 전복하고, 허용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반민주적인지 짚어볼 수 있습니다.
4·19혁명을 배울 때는 김주열 열사를, 5·18 민주화 운동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법, 그리고 인혁당 사건을, 6월 항쟁을 배울 때는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를 꼭 건넵니다. 평범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시민들이 어떻게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반민주적인 힘에 의해 희생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린이들이 민주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제공합니다. 민주 시민은, 정치는, 어린이들의 삶으로부터 분리된 영역이 아닙니다. 그저 일어난 사건으로 배우지 않고, 이후에 다루어지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적 측면,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구조 등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민주 시민으로 자라갈 수 있기 위하여, 간단하게 배우는 순서를 조금만 바꾸어도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배울 때, 87년 체재 이후 중요한 민주적 시스템인 대통령 직선제와 지방자치제도로의 접근도 원활합니다. 특히, 지방자치제도는 시민이 살아가는 생활 영역에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동질성을 토대로 각 지역에 당면한 여러가지 과제를 지역에 맞게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중앙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 집행도 필요하지만, 지방의 특징을 고려한 정책의 수립 및 집행도 필요하며 이것이야말로 거대화된 행정력를 분산하여 효과적인 맞춤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시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써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담론은 헌법을 토대로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헌법입니다. 우리는 '법치주의'라는 말을 '법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용어는 국가를 향한 것입니다. 정부는 '법대로' 나라를 운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법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바,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표하여 정부를 기속하는 법률을 제정합니다.
법이 시민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헌법입니다. 1단원에서 배우는 모든 민주적 가치와 제도는 다 헌법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자연스럽게 헌법 조항들과 연결하여 배움을 안내한다면 어린이들에게 민주적 이상과 가치를 조금 더 체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