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이야기] 6. 관계를 지키는 법
메시지가 온 것은 주말이었습니다. 선생님, 시간 되시냐, 로 시작한 메시지는, 고민거리가 생겨 선생님을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이어졌고, 금요일에 찾아뵙겠다고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담임했으니 대충 짐작하는 바에 따르면, 아마도 교우 관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C는 교우 관계로 고민할 리가 없는 아이니까요. 만약 다른 사람의 무례함을 경험하면 '안 보고 말지, 뭐'라는 태도로 상대방을 대할 아이이고, 스스로는 성향이 밝고 활발하지만 혹여라도 상대방에게 실수하면 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사과할 수 있는 아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일 크게 두었던 가능성은, 학교 교사와의 갈등이었습니다. 뭐, 상호 간의 갈등이라기보다는 교사의 꾸중 혹은 편견에 아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런 그림 정도를 예상하였습니다. 6학년 올라올 때 이전 담임 선생님께서 '사춘기'라는 한 마디로 규정했던 아이였던지라, 그래도 저와는 잘 지냈지만, 지금의 담임 교사와는 또 생각보다 잘 안 맞을 수도 있겠고... 게다가 원래 반장 같은 것은 관심도 두지 않던 아이인데, 올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반장이 되어버린터라, 그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습니다. 그런 문제라면 6학년 때의 담임 교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너무 이상한 그림은 아니죠.
혹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중학생 또래 아이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감정이기도 하니까요.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이 아이는 그런 문제라면 웃으면서 칼같이 쳐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때이기도 하고...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고민이 깊을 수도 있지요. 다만, 그런 고민을 저와 나눈다는 것은 얼척 없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알겠지요. 저는 공감의 대화보다는 해결의 대화를 선호하는 편이니까, 그런 문제가 생기면 저에게 올 친구는 없습니다.
부모와의 갈등은, C에게는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C의 부모님은, C의 단호하고 강력한 요구에 '어떻게하지? 어떻게하지?'라고 발을 동동 구르시다가 최종 순간에 아이의 뜻을 꺾고 결정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C가 부모를 휘두를 것 같지만, 실상 부모님이 이 아이를 늘 이기고 계십니다. 다만, 결정이 지체되는 탓에 부모도 아이도 조금 지치는 구석은 있어 보입니다.
뭐, 그러나저러나, 주말에 연락이 왔는데 금요일에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는, 아주 큰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정말 급했다면, 아마 당장 오겠다고 했겠지요.
금요일 오후에 만나서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선생님께 메시지 보낼 때는 되게 답답하고 어쩔줄 몰랐는데, 며칠 지나니까 조금 잠잠해 지더라구요, 였습니다.
그리고 하는 이야기는, 자신이 친구에게 아무래도 큰 잘못을 저지른 듯 한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C와 H는 6학년 때도 꽤나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렇다고 교실에서 함께 다니거나 하는 관계는 아닌. 이는 C와 H의 성향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H는 관계에 몰두하거나 집착하는 성향은 아닙니다. 찾아오는 관계 막지 않고, 떠나가는 관계 잡지 않는. 그리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액션은 항상 수동적인, 하지만 맺어진 관계에 대해서는 신의를 지키는, 그런 학생입니다. C도 그런 편입니다. 관계에 집중하거나 하는 편도 아니고, 자신의 생각에 더 몰두하는 편인 그런 학생입니다. 그런 성향을 가지고 둘은 편할 때 편하게 서로 놀고 어울리는 그런 사이로 지내던 것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에서도 둘은 그런 사이를 유지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 때문에 서로 만나지는 않지만, 메신저 서비스로 메시지를 간헐적으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관계를 유지해갔다고 합니다. 다만, H의 경우 메시지를 받는다고 바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간격을 두고 답을 하는 터라, C도 거기에 적응이 되어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답을 보내곤 했다고 합니다.
일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H가 C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C는 그것을 확인하고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C의 말인즉슨, 요 근래에 너무 정신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실 등교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반장으로서 교과전담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상당히 부여받고 있었던 터라, 메시지를 보고도 답하는 것을 놓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졸업생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에 대해서는 C가 반응을 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C는, 단톡방 메시지를 보는 순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바로 답을 달 수 있어서 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H가 이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메시지에는 응답하지 않던 C가 졸업생 단톡방에서는 반응하는 것을 본 H는 C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혹시 자신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어려운 점이 있느냐고 묻는 메시지가 왔다고 합니다.
C는 물론 아니라며, 자신이 요즘 너무 정신이 없고 그래서 메시지를 보고도 반응을 제때 하지 못했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런데 이전에 H 너도 내게 이런저런 잘못을 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네요. H는 메시지를 받고, 별 일 없다니 다행이고,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마 굉장히 속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미안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메시지를 주고 받은 뒤에, 그런데 C는 요 근래에 이렇게 여러가지 일 때문에 마음이 분주한데 자신이 지속적으로 H와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H에게 메일을 보냈답니다. 자신이 조금 더 관계에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 연락을 쉬자고.
H의 답장은 빨랐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지만, 여러가지로 분주한 탓에 연락을 쉬자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너의 뜻이 그러하다면 연락을 쉬는 것을 받아들이겠지만 자신이 먼저 너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C는 제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문제를 지금 이 시점의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과거의 문제와 자꾸 병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초등 교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너 왜 그랬어. 선생님, 이건 제가 잘못했는데요, 쟤는 4학년 때 저에게 블라블라블라. 이러면 절대 갈등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는 그럴 때 말을 자릅니다. 4학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은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아. 그건 그 때 해결했어야 하는 일이지,지금 이 순간 일어난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지금의 일에 대한 이야기만 할거야.
마찬가지로, 제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에도 같은 태도를 견지합니다. 간혹, 화 낼 타이밍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는 찬찬히 과정을 되새기면서 했어야 하는 말을 잘 갈무리 해 둡니다. 타이밍은 다시 오고, 그 때는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 두었던 말을 건넵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의 시점에서 말이죠. 지난 일을 다시 꺼내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 순간, 문제의 범위는 지금 이 순간에서 끝나지 않고 과거의 그 시점까지 길고 넓게 확장됩니다. 문제는 간명해지지 않고, 해결은 요원해집니다.
1년 전의 그 일 때문에 화가 났다면,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분명하고 명확하게 내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면, 어떻게 내 마음과 생각을 전달할지 숙고하여 둡니다. 그리고 오늘 그 일과 같은 일 때문에 화가 났을 때, 그 때 하고 싶었던 말을 오늘 이 일에 대해서 하면 됩니다. 그 때 일, 그 때의 감정은 입 바깥으로 꺼내지 않아도 됩니다. 충분히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고, 상대방은 보통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C에게도 같은 말을 해 두었습니다. 지난 일에 대해서 꺼내어 드는 것은,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는 말이다. 너는 충분히 화나고 슬프고 짜증났겠지만, 그 시점에 상대방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상대방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아무 일도 없이 그저 지나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나, 너 때문에 그 때 짜증났었어'라고 말한다면, 너의 화나고 슬프고 짜증난 감정이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한 채 의례적인 사과에서 끝날 뿐이다. 그 때의 화와 슬픔, 그리고 짜증을 꾹꾹 눌러두다가 터트리지 말고, 관계 속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 때, 그 때 그 일에 대해서 명확하고 단호하게 너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너의 상처난 감정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전달받는 방법이다.
너가 H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아니, 너가 지키고 싶은 관계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비록 언젠가 너를 화나게 했던 일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에게 뒤끝처럼 보이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게 명확하게 인정받으면서, 관계를 발전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더하여, 자꾸 관계를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는 행동 중, 전화번호부의 목록을 정리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지금은 핸드폰에 저장된 목록을 지우는 것이죠. 저도 한 때 그런 일을 주기적으로 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기를 멈추고 있습니다. 실낱같은 관계라도 이어져 있으면 언제라도 단단하고 두껍게 덧이을 수 있지만, 끊어져버린 관계라면, 다시 잇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켜야 할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가늘고 질기게 유지하여야 할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기왕 받아둔 전화번호라면 굳이 지울 필요 없을 것이며, 기왕 맺은 친구 관계라면 억지로 먼저 끊어버리려고 시도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먼저 끊어버린 관계, 만약 되살릴 일이 생긴다면 제가 노력하고 품을 들이고 매여야 할 일이 생깁니다. 그저 조금 소원해지고, 조금 멀어지고, 약간의 거리가 생겼다고 할지라도, 그냥 그 상태로 두면 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C의 생각도 이해가 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모호함의 감정을 잘 못 견딥니다. 이러든지 저러든지 할 것이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하는 상태를 어떻게든 타개하고자 합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는 말은 어른들의 용어입니다. 그런 모호함에 쩔어버린 어른들에게는, 그저 시간에게 맡겨버리는 수동성에 의지하는 것이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편리한 선택지가 됩니다. 어찌보면 명확한 관계의 정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위해 달려보고자 하는 젊음의 선택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C에게 단서를 달았습니다. 너가 지키고 싶은 관계라면, 그렇게 단절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고, 실낱같은 끈이라도 달고 있는 것이 맞다는. 그리고 아마도, 너가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H와의 관계가 지킬만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H에게서 온 예측하지 못했던 반응에 대한 당혹감 때문일 것이라는 말도 해 주었습니다.
C에게 건네준 제 해결책은 이것입니다. 메일을 써라. 지금까지 너가 선생님에게 했던 일련의 과정들, 그리고 그 때마다 느꼈던 너의 감정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너가 한 행동에 대해 가졌던 너의 당혹감이 충분히 드러나도록 너의 마음을 담아 사과의 메일을 써라. 가 닿지 않더라도, 써야 하는 것이 너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관계는 그렇게 함부로 단절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때 가지게 되는 책임은 그 만큼이나 막중한 것이니까.
잘 해결되어 가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잘 해결될 것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