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수학적 모델링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14. 수학적 모델링
우리 교과용 도서는 예컨대, 분수의 나눗셈을 풀리기 위해 분수의 나눗셈 자체에만 한정하여 단원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일견 이해되는 부분은, 중등과정에서는 분수 나눗셈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 상태에서 다음 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 수학의 계열성 - 지금 이 순간에는 분수의 나눗셈의 A부터 Z까지 안내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으로 교과용 도서를 편찬했겠구나, 라는 지점입니다.
어찌보면, 고등학교 수학과 교육과정에서 지금까지 배운 초등학교/중학교 과정을 기저에 두고 종합하여 배우는 셈이죠.
그런데 이런 교과용 도서의 의도는, 다른 양상으로 우리 어린이들을 힘들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됩니다. 그런 것입니다. 학부모는 교과용 도서의 양적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문제집을 더하며, 보통 교재를 풀릴 수 있는 학원/공부방/과외 등의 시스템도 부가하곤 합니다. 그리고 학원/공부방/과외 등의 시스템은 영리 목적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며, 이는 보통 과도한 과제량, 소수정예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학생들을 케어하느라 필요없는 과정까지 함께 해야 한다는 비효율성, 그리고 무리한 선행학습 정도의 부작용을 낳습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관리형 사교육 시스템도 들어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동기가 있는 학생들을 가려 받는 시스템이라 시스템의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조금 더 덧붙이면, 사교육에서 성과를 거두는 학생은, 스스로 해도 충분한 성과를 낳을 학생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을 받는 사교육에서도, 성과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사교육은 때려서 말을 듣게한다, 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글쎄요. 때려서 말을 듣게 할 수준의 학생이라면, 조만간 때려도 말을 듣지 않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요? 때려서 말을 듣는 아이라면 - 영화에 그런 장면들이 나오곤 하죠 - 제 생각으로는 말로 해도 알아들을테고, 그런 학생들은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하고자 하는 동기를 주어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사교육의 힘은, 테크니컬한 부분에 제한적입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사실 개인에게 가장 효율적인 테크닉은, 개인이 스스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범용의 공부법은, 없습니다. 그 말인즉은, 모든 학습의 테크닉은 개인에게 종속된다는 의미입니다. 늘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범용의 공부방법이 있다면,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지금 그걸 하고 있겠지요. 어쨌든.
즉, 확실하게 해서 보내겠다, 는 생각은, 부가적인 교육이 일상화 된 상황에서 ‘확실’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있는 셈이며, 이는 학생들에게 오롯이 학습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꼴랑 두 시간 틀린 문제 풀어주고, 대강 몇 문제 풀어준 후, 집에 가서 하라고 열 몇 페이지씩 몇 백 문제씩 과제 내는 사교육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문제풀이 양이 많아야 수학을 잘 할 수 있다, 는 말은 어찌보면 면죄부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도 학원에서 그런 말씀을 많이 드렸습니다. 부끄럽지만. 아이의 학습량이 적네요. 같은 말씀.
중등교육까지의 학습량은, 적정해도 무방합니다. 조심스럽게 주관적인 경험을 붙이자면,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일반수학(고1과정), 수1(문과과정) 정석, 두 권을 푼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이 두 권을 반복해서풀었지만... 물론, 요즘은 워낙 타겟팅된 문항들이 많다고 해서 문제양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저는 교재 한권 잘 골라서 그것만 꼼꼼하게 풀어도 충분한 학습량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점은... 뭐, 저는 비록 문과이지만 모의고사(고 3)는 전교 1등 아니면 2등은 늘 하였던 듯 싶고, 두 번째, 세 번째 대학 가려고본 수능은 뭐... 개인적인 경험이라 조심스럽지만...
사교육에서는 이과 과정도 강의했었지만 - 가고 싶은 학과가 문과여서 문과 수학을 공부했었습니다. 저희때는 그랬으니까요 - 이과는 문제양이 중요하다고 반문하시는 주장에는 일단 수긍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문제 풀이량이 중요하거나, 혹은 꼼꼼하게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는, 적어도 초등학교/중학교에서는 잘못된 진단이라고 봅니다. 누구를 위한 학습량입니까. 누구를 위한 오답노트입니까. 초등학교/중학교 과정에서는 흥미와 호기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초등학교 때 분수의 나눗셈을 못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중학교가서 문제 풀 때, 잘 모르면 그 때 가르쳐 주어도 됩니다. 어차피, 분수의 나눗셈은 곱하기 분수의 역수 할 것이니까요. 그런데, 뭐가 문제냐하면, 중학교 과정에서 분수의 나눗셈 풀이 방법을 알려줘도, 곱하기 분수의 역수로 바꿔서 계산하면 된다고 말해줘도, 아이들은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초등학교 6학년 때 분수의 나눗셈 문제를 어마어마하게 풀어댔고, 그런데 늘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고,평가 점수는 항상 별로였으니, 해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이미 이번 생 수학 공부는 틀렸어, 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차라리 백지가 낫습니다. 실패경험으로 인한 자신감 결여와, 그럼에도 할 만큼 해 보았다는 쓸데없는 고집으로 무장한 학생들보다는. 아예 아무것도 안 한 상황에서 처음부터 차곡차곡 안내하는게 훨씬 낫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고, 적어도 저희 집 아이들은 못 할 지언정, 안하겠다거나 하는 척 하면서 제대로 하지 않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대학원 수업에서 배운 이론 중에, ‘수학적 모델링’ 이론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현실 세계를 덧입은 ‘문제해결력 문항’들이 학교 현장에서 활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해결력 - 혹은 사고력 수학 - 문항들의 실제는 현실 세계를 덧입는다보기 어렵습니다.
‘영희는 철수네 집에 가기 위해 갈 때는 시속 2킬로미터로, 올 때는 시속 3킬로미터로, 두 시간 십 분을 왕복하였습니다. 영희와 철수네 집의 거리는 몇 킬로미터일까요?’
이 문제가 실생활 문제입니까. 학생들은 실생활에서 수학을 이렇게 사용합니까. 이걸 실생활 문제라고 일컫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 수학을 기만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형돈이가 4일 동안 해서 끝나는 일을 재석이가 12일 동안 해서 끝낸다고 할 때, 둘이 함께 일하면 이 일은 며칠에 끝마칠 수 있을까요?’
이미 수학의 문제해결력 문항들은 정형화되고 패턴화되어 있습니다. 풀이 방법을 정해져 있고, 수학적 사고력은 발휘될 여지 없이 연습의 과정으로 바뀌어버린지 한참이 지나 버렸습니다. 그러니 수학 본연의 재미와 즐거움은 허튼 소리로 여겨지고 -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아? 에이... 수학이 뭐가 재미있어요. 어렵고 지겹기만 하지 - ‘수학을 잘 하게 되면 수학이 재미있어져.’ 같은 수학 외적인 이야기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수학 교육이 - 아이들에게 수학 본연의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 제대로 이루어 질리 없습니다.
수학적 모델링은, 아직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조심스럽게 언급하자면, 비정형화되어 있는 실제 상황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투여한 후,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적인 해답을 찾도록 하는 수학 학습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모델링 기법은 이미 우리 생활에 굉장히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의학과 금융업에서 특히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이를 수학 교육 현장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대학원 수업에서 석사과정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 한 사람이, 수학적 모델링 기법을 이용하여 학생들이 직접 이동 경로에 따라 거리를 측정하면서, 측정에 대해 배우는 배움을 교육과정으로 준비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대학원 강의 과제로 아래와 같은 상황을 준비해서 제출했었습니다.
제 실제 경험을 모델링 상황으로 구현하였습니다. 민음사 패밀리세일에 매년 참여할 때가 있었는데, 정해진 포인트를 가지고 가장 효율적으로 도서를 구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며칠을 고민했던 경험을 수업으로 되살려 보았습니다.
이런 모델링을 통해 수학 교육이 이루어질까요? 저는 긍정적입니다. 적어도, 지루한 계산 연습으로 일관하고, 이도 모자라 사교육에서 주구장창 목적도 잘 모를 연습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적어도 정서적으로 아이들을 몰입하게 하며 호기심을 안겨 주는 배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 내용을 잘 반영하여 만들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요.
현재 교과용 도서 집필진의 고충을 이해하지만, 더 획기적인 수학 교육의 변화를 위해서, 수학적 모델링 같은 일상생활의 과정이 단원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백워드 설계가 이런 교육과정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MiC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런 배움을 교실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의 작은 과제도, 교실에서 수학적 모델링을 기반으로 한 수학과 교육과정 운영을 해 보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제, 잘 배웠는지 알아보기 위해 되도않는, 실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실생활 문제나 풀리면서 우리 학생들의 수학을 향한 욕구를 꺾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실제 상황을 토대로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 내용을 짜임새있게 반영한 ‘수학적 모델링’ 과정 같은 시도가 더 늘어야 합니다. 지금 이런 교과용 도서의 편제로는, 연습으로 귀결되는, 그래서 수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수학 외적인 요인 - 잘 하면 좋아하게 돼 - 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수학 교육 이상을 할 수 없습니다.
연습을 통하여 자신의 수학 역량을 향샹시키는 학생에게 이런 교육과정이 자극을 줄 수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연습 중심의 노-하우를 부가적으로 주면 되잖습니까. 그러나, 연습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수학 교육 뱡항으로는, 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자신감이 갈수록 결여되거나, 혹은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단지 흥미와 호기심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학적 모델링 같은 시도는, 수학 실력 향상에 문제양이 핵심적이다, 라는 섣부른 생각만 버린다면, 충분히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을 반영하여 정규 교육과정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수학 실력은 문제양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선입견이 버려져야, 우리 학생들은 수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서 수학 본연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