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개념-기능-적용'의 구조를 바꾸자!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12. '개념-기능-적용'의 구조를 바꾸자!
전문(대학원)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두드리고 싶었습니다. 전문교육의 장에서 현장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한 채, 현장의 배움을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보고서 수준의 논문을 쓰기 위해, 다섯(또는 여섯) 학기나 매달려 있으면서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전문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또, 교구를 사용하여 개념과 원리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시도들이, 결국 주객이 전도되어 교구를 익히는 수준에서 전락해버리는 현장 수학 교육의 문제점도 짚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세심하게 다룰만큼 생각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스무 편으로 기획한 이 글은, 열 여덟 편에서 끝날 듯 합니다. 지난 1편부터 11편까지가 문제 의식에 대한 글이었다면, 12편부터 17편까지는 초등교육 현장에서 수학 교육을 이렇게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일개교사의 아이디어입니다. 고민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안이자, 실천담이기도 합니다.
국어 교과도 마찬가지이지만, 수학이야말로 ‘개념-기능-적용’의 구조로 교과용 도서가 편제되어 있습니다.예컨대, 원그래프가 뭔지 알아본 후, 어떻게 원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는지 배운 후, 원그래프가 적용된 구체적인 사례를 배우는 것으로 ‘여러가지 그래프’ 단원 중 한 부분이 이루어집니다.
도형 영역은, 그런데 약간 다릅니다. ‘각기둥과 각뿔’ 단원에서 각기둥을 보면, 각기둥의 의미 및 구성요소에 대해 배운 후, 3D의 각기둥을 2D로 표현하여 나타낼 수 있는 전개도를 배우고 바로 각뿔로 넘어갑니다. 도형 영역은 도형에 대한 약속을 확인한 후 - 주요 용어 정리 - 실제 도형 속에서 이를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비교합니다.
더 나아가, 초등 수학 도형 영역은 아예 공간이해력을 ‘쌓기나무’ -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공간과 입체’ - 라는 단원에서 배우도록 편제하고 있습니다. 이 단원은 아이들도 쉬워합니다. 본대로 이해하고 이해한대로 말하면 되는, 구체적인 단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재의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대수/확률 영역과 기하 영역이 서로 다른 난이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어린이들은 대수/확률 영역을 버거워하고, 기하 영역을 상대적으로 마음 편하게 받아들입니다.
물론, 어린이들로 하여금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배움을 구성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굳이 쓸모없이 아이들에게 배움을 형식적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6학년 1학기 ‘여러가지 그래프’ 단원이 그렇습니다. 2009 개정 교육과정 때까지는 ‘비율그래프’라는 단원으로 원그래프와 띠그래프에 대해 배우는 단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림그래프를 넣으면서 그래프를 사용할 필요성 및 적절한 그래프를 선택하는 데에까지 배움의 범주를 넓혀서 구성한 단원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여러가지 그래프’ 단원입니다. 그러나, 역시 교과용 도서도, 여러 시중의 문제집들도, 핵심은 비율그래프로 나타내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비율그래프는, 전체에 대한 부분의 비율을 원 또는 띠라는 형태로 나타낸 것입니다. 꺾은선그래프처럼 변량의 변화를 나타내거나, 그림그래프 혹은 막대그래프처럼 변량의 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도수 전체에 대한 일정 범위의 도수가 이루는 비율을 나타낸 것이 원그래프와 띠그래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율그래프는 비와 비율(및 백분율)을 배운 후에 배우게 됩니다.
학생들은 변량을 도수로 나타내고, 전체 도수에 대한 해당 범위의 도수 사이의 비율을 구한 후, 전체에 대한 부분의 비를 도형 위에 나타내는 방식으로 비율그래프를 표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끊임없이
1) 변량을 도수로 나타내기
2) 전체 도수에 대한 해당 범위의 도수 사이의 비율 구하기
2’) 비율을 백분율로 표현하기
3) 띠그래프로 나타내거나, 원그래프로 나타내기
연습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띠그래프 또는 원그래프로 나타낼 때, 우리 성취기준은 띠그래프나 원그래프의 성질, 예컨대 원그래프에서 중심각의 크기를 이용하여 부채꼴의 넓이 방식으로 비율을 구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으니, 학생들은 각 범주의 비율을 원그래프 위에 표현할 때 이미 원주에 표시된 눈금을 활용하여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이 단원에서 전체와 부분 사이의 관계로써 비율에 대한 의미를 확인하고, 비율을 전체에 대한 부분의 넓이 비율로써 나타낼 수 있음을 알고 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저희 교실에서는 작년과 올해, ‘여러가지 그래프’ 단원을 설문조사 후 보고서 형식으로 국어 교과의 발표 단원과 연계하여 배웠습니다.
요즘 한참 수학교육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통계교육의 방식으로, 그러나 평범한 초등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도록 배움을 구성하였습니다.
1) 기존의 통계 활용 보고서 분석하기 - 어떤 주제를 선정하였고, 어떤 질문을 구성하였으며, 어떻게 이를 시각화하여 표현하였는가
2) 주제가 될 수 있는 다양한 토픽 이야기 나누고 주제에 대한 질문 구성하기
3) 질문에 대해 설문조사 실시하기
4) 설문조사 표로 나타낸 후 적절한 그래프로 나타내기, 설문조사 결과 및 의미 나타내기
5) 설문조사 1차 발표, 보완하여야 할 점 발견하여 반영하기
6) 질문 수정/추가/보완하여 설문조사 재 실시하기
7) 보고서 작성하기
8) 발표하기
어찌보면,우리 교과용 도서는 성취기준이 요구하는 내용 수준에 대해 어린이들이 해결할 간단한 문제 상황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냅니다. 그 문제 상황은 열린 문제 상황이라기보다는, 닫힌, 짜여진, 잘 구성된, 인위적인 문제 상황일 뿐입니다. 그런 문제 상황을 잔뜩 가져다 두고는, 전체에 대한 부분의 비율을 나타낼 수 있는가, 그리고 전체에 대한 부분의 비율을 길이 관계 - 띠그래프에서는 띠의 세로 길이로, 원그래프에서는 중심각 크기 혹은 부채꼴의 호 길이로 - 로 나타낼 수 있는가를 줄곧 묻고 있습니다.
사교육과 문제집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소위 심화라는 이름으로, 굳이 지금 여기에서 배우지 않아도 되는 내용들까지 넘나들면서 자신의 필요성을 구축하고 있기도 합니다. 쓸데없이.
어린이들이 해결할 닫힌, 짜여진, 잘 구성된, 인위적인 문제 상황이 아니라, 열린 문제 상황에 어린이들을 놓고, 다양한 활동 속에서 어린이들이 비율그래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탐구하는 방식으로 배움을 설계하고 운영하면 될 일입니다. 지금의 배움은, 과유불급입니다.
6학년 2학기 쌓기나무(2015 개정에서는 공간과 입체)가 공간감을 위해 교육과정에 도입된 이후로, 저는 줄곧 쌓기나무 쌓기, 보드게임을 통해 공간감 익히기, 탐구과제를 통해 공간요소 이해하기 활동을 통해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배움을 이어가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과용 도서에서는 쌓기나무의 위/옆/앞에서 본 모습을 그리고, 위/옆/앞에서 본 모습을 토대로 쌓기나무를 쌓는 활동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교육과 문제집은 교과용 도서의 범주를 확장시켜 쌓기나무를 잔뜩 쌓아올린 입체로 문제 상황을 던져놓고 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입체를 위/앞/옆에서 본 모습과 연결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입체를 평면에 표현할 수 밖에 없는 한계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개도를 배우는 이유도, 전개도가 입체의 특징을 평면 위에서 구현하는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이 종이나 화면 같은 평면을 사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터라, 학생들에게 공간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굳이 이를 4, 5, 6층짜리 쌓기나무 블록을 쌓아두고 연습시킬 필요는 전혀 없는 셈입니다.
그래서, 그냥 쌓게 시키고, 쌓아서 하는 블록형 보드게임들도 수업 시간에 같이 해 보면서, 연결큐브를 이용한 연결관계 확인하는 탐구 보고서를 쓰게하면서 단원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실에서 배움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바꾸어야 합니다. 첫 시간에는 개념을 가르치고, 다음 시간에는 방법을 가르치며, 그 다음 시간에는 활용 문제를 풀리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배움의 구성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아이들은 계속 연습의 굴레에 얽매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쌓기나무를 6층, 7층까지 올려야 합니까. 우리 교육과정에서는 원의 중심각을 활용하여 원그래프를 그리도록 의도하지 않고 있는데, 왜 어린이들은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서 벗어나는 문항을, 심화라는 이름으로 풀어야합니까.
이를 위하여, 교과용 도서의 편제가 바뀌고, 교실 현장에서 어린이들의 배움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교사들이 바꾸어야 합니다. 교육과정 상의 성취수준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우리 어린이들이 교실 수학에서 주도성을 획득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배움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