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고력 수학?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5. 사고력 수학?
제가 본 사고력 문제 중에 가장 황당했던 문제 중 하나는, 측우기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장장 예닐곱 줄에 걸쳐서 기술한 후, 측우기의 둘레를 원주로 나누어서 측우기의 지름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무지개떡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떡의 부피를 구하는 문제도 기억에 나네요. 초등학교 사고력 수학이랍시고 팔리는, 상식 만도 못한 내용을 담은 문제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2009 개정 6학년 1학기 수학 교과용 도서에 있었던 마법학교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스토리텔링기반이라고 만든 맥락인데, 막상 스토리는 마법학교라는 큰 틀의 상황만을 공유할 뿐 각각의 차시는 개별적인 이야기를 띌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 수염을 잘라서 마법 쥬스를 만든다든지, 나무를 잘라서 지팡이를 만든다든지 하는 상황들. 실생활 맥락을 가미한 스토리텔링과는 전혀 무관한, 그저 문제를 위한 문제 상황일 뿐인 교과용 도서의 구성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현장의 의구심만 높였을 뿐입니다.
한창 열풍이었던 서술형 평가. 문항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맥락을 활용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잭 스패로우의 이야기를 떠올렸더랬습니다. 물레방아를 타고(!) 도망치는 잭 스패로우. 지름이 10미터인 물레방아를 굴려가며 도망치는데... 하면서 만들었던 문제가 그래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동료 교사들에게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또한 문제를 위한 문제일 뿐.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초등학교에서 ‘사고력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소위 심화 문항들이 소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교과용 도서의 빼대를 이루는 ‘개념-기능-적용’ 구조에서 심화 문항이 적용의 한 축을 담당하며 아이들의 수준을 변별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를 따라 다양한 경로로 사고력 수학 문항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대로, 초등학교에서의 사고력 문항은대체로 수학적 맥락을 담고 있지 못하거나, 또는 수학적 맥락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연산 문제를 포장해 둔 것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제일 조심해야 할 사고력 문항은, 선행 과정을 은근히 내포하고 있는 문항들입니다. 무늬는 6학년 수학 문항이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 과정을 알아야 하는 문항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의 변화와 함께, 기존에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던 방정식, 함수, 등식의 성질 등의 성취기준이 모두 중학교로 올라갔지만, 그 잔재는 남아 사고력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팔리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가장 피해야 할 문제 유형은, 예컨대, ‘가로가 3.2cm인 직사각형의 넓이가 2.56cm^2일 때 직사각형의 세로의 길이는’ 같은 것입니다. ‘이건 그냥 직사각형의 넓이를 직사각형의 가로 길이로 나누면 되잖아?’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실제 이런 문항은 곱셈의 역연산 의미로써의 나눗셈이고 역연산은 정확하게 말하면 등식의 성질과 이에 기반한 ‘이항’의 기능을 배워야 능숙하게 풀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직사각형의 세로 길이는 직사각형의 넓이를 가로 길이로 나눈거야’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설명하기 위해서는 등식의 성질 개념을 빌려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그런 거라고 외워’라고 말해 줄 수 밖에 없고, 그 순간부터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수학이 아닙니다. 사고의 모든 과정에서 엄밀함과 체계성을 기반으로 하는 수학에서, ‘그냥 외워’라는 설명이 가당합니까.
그런데 그런 일을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고, 아이들에게 사고하는 수학이 아닌 다른 수학을 가르치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문제 풀이 중심의 수학 교육이 낳은 폐해입니다. 이 폐해는 연습으로 귀결되고, 유형 풀이 문제집 같은 것을 양산할 뿐입니다. 패턴을 연습하는 수학. 이렇게 길러지는 수학 역량은, 아이들을 사고할 수 없게 만듭니다. 유형이 아니면 풀 수 없는 아이들만 만들 뿐입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수학 문항은 추상적 맥락을 해결하는 문항으로 바뀝니다. 흔히 말하는 ‘말장난’ 수학은 없어집니다. 꼬아놓는 문제도 별로 없고, 고작 방정식과 함수 쯤에서 맥락을 입은 문제들이 나오지만, 점점 그마저도 수학 교과서의 추상적 맥락을 입습니다.
중학교 방정식 영역에서 ‘거속시’나 ‘농도’ 등의 문제가 나오지만,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속력 또는 농도의 의미를 이용한 문항들이며, 따라서 수학 맥락을 가진 문제들입니다. 이런 문항을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얼척없는 문항들이 아이들의 수학적이고 추상적 맥락을 가진 문항에의 접근을 막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소위 ‘사고력 문항’이라는 것이 필요할까요? 저는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지금같이 문항의 뜻이나 이해시켜야 하는, 그러면서 막상 이해하고 나면 수학적 맥락과는 전혀 연계되지 않는 그런 문항은,아닙니다. 무늬는 현재 학년에서 배운 것 같지만, 실상은 선행학습을 염두에 문항 같은 것이 사고력 문항으로 여겨지는 상황은 아이들의 수학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꺾을 뿐입니다. 우리 교육이 몇 명의 능숙한수학 문제 풀이자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인식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교사야말로, 그런 문항으로 아이의 실력을 알아보겠다는 생각을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수학이야말로 그 과정을 되짚어가며 아이들의 성취수준 정도를 파악해야 하는, 요즘 의미로 과정중심평가가 필요한 과목입니다. 사고력 문항 풀면 수학을 잘 하고, 그걸 못하면 수학을 못한다는 이분법적 판단을 지워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수학적 사고력의 증진을 위하여, 앞으로 쓸 글에서 두드리겠지만, ZPD를 아우를 수 있는 상황, 수학의 역량을 바닥에 두고 있는 상황, 문항의 문구로부터 제약받지 않는 상황을 담은 문제를 만들고, 이를 함께 논의해가는 방향으로 수학 배움의 모습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