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個讀者, 獨立書店] 무엇을 파는가
이제, 서점은 책'도' 파는 곳이 되어가는 듯 합니다. 대형서점들에서는 커피와 소품들을 팔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고, 온라인 서점들은 매력적인 굿즈를 사은품의 명목으로 함께 (끼워) 팔고 있습니다.
커피. 예술과 다방(혹은 살롱)이 함께 해 온 것은 아마도 인류가 커피를 커피로써 소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서점이 커피와 어울린다는 느낌은, 빼빼로를 사랑의 상징으로 기만하는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가공된 것은 아닐 듯합니다. 서점에 커피, 뭔가 잘 맞는 페어입니다.
그러나 커피는, 책은 아닙니다. 커피는 책의 벗일 뿐. 그래서 아마도 제주도의 한 서점에서, '이 공간을 이용하실 때' 도서 구입 또는 1인 1메뉴 주문을 '당부'받았던 것에 못내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찾아온 것은 그 까닭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방 아베크에서 만난 안내문, 아베크는 참 예쁜, 푸근한, 좋은 서점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당부'도 이해가 됩니다.
독립서점을 찾는 분들 중, 책 하나만 보고 오시는 분들이 꽤 많으시겠지만, 어떤 분들은 추억을, 사랑을, 사진을, 서점이 가진 외형의 아름다움을 사러 오시기도 하시니까요. 그리고 그 비용은 무료. 무료라는 값을 치루고 추억을, 사랑을, 사진을, 서점이 내뿜는 아름다움을 구입해 가시면, 결국 그 서점은 더 이상 추억도, 사랑도, 사진도, 자신의 아름다움도, 그리고 책도 더 이상 팔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한 독립서점의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넉넉히 이해됩니다. 처음에 서점을 열 때에는, 좋은 책이 사람을 끌어당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책 만으로는 유지하기가 어렵더라는 말씀. 그래서 대형서점들도 굿즈와 소품을, 커피를 함께 파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개(一介) 독자 주제에, 쓸데없는 고민이 시작됩니다. 독립서점은 어떻게 팔아야 하는가. 제주도 고산리에 자리잡은 무명서점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여섯 차례의 제주도 가족 여행 중, 항상 기회가 되면 독립서점에 닿으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무언가 쫓기는 듯한 마음으로 서점을 두리번거리다가 아쉬운 빈손으로 나왔던 기억이 태반입니다. 그런데, 무명서점의 유리문을 슬며서 열고 들어갔던 지난 겨울, 저희 가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점원의 소장 도서를, 혹은 판매를 위해 진열된 도서를 하나씩 잡아 들고는 군데군데 마련된 푹신한 쇼파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불편하게 책장 사이를 배회하다가 바쁘게 나오기 급급했던 다른 독립서점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무명서점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들, 자리를 펴다>
생각해보면, 무명서점에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무명서점은 그리 찾기 편한 장소는 아닙니다. 어찌보면 제주도에서 가장 발걸음을 하기 어려운 곳인 고산리에 무명서점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요즘에야 신평-용수 해안도로의 낙조가 각광받아 찾는 발걸음이 조금 더 많아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산리는, 제주시에서도, 서귀포나 중문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고, 무명서점은 한가로운 고산리의 한 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저희도 당산봉에 오를 목적이 아니었으면 일껏 무명서점까지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서점원 님과 큰 동질감을 느꼈던 소장목록. 터치를 가진 분이면, 믿을만 하죠. :D>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간 서점에, 친근한 서점원의 소장 도서들이 진열되어 독자를 만나고 있고, 푹신하게 준비된 자리들이 독자의 발걸음을 쉴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 무명서점은 독자가 앉아 책과 조우할 수 있는 '자리'를 무료로 파는 곳이었습니다.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그에 맞추어 변모해가는 삶의 모습과 사고의 변화에 맞서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몸부림을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과 함께 소개하는 책. 그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 누군가 아날로그한 삶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껏, 유명하다는 독립서점을 돌아다녀보는 이유는 아마도, 온라인 상에서 책을 만나고 누리고 향유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자, 도서인의 총체를 새롭게 정립해가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명서점은 넉넉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준비해두고 독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개(一個) 독자는 여유있는 마음과 함께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명서점을 찾았던 그 날, 저희 아이들과 저는 각자 원하는 책을 한 두 권씩 집어들고 넉넉하게 서점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올 겨울, 자신의 서가를 무명서점에서 채울 기회를 가진 첫째와 둘째>
<이번 가을, 통통통거리면서 크지 않은 무명서점을 뛰어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몫을 받아든 셋째>
물론 전제로써, 책방 소리소문에 대한 앞선 글에서 두드렸던 것처럼, 넉넉한 큐레이션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독립서점을 찾는 많은 이들이 이미 지갑을 열 준비를 하고 그 곳을 찾는 것임을 생각할 때, 독립서점의 본질인 좋은 '책'을 선보이기 위해서 더 애써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개(一介) 독자의 짧은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책을 사랑하는 이로써, 기억에 가장 남는 독립서점들은, 넉넉한 큐레이션, 그리고 넉넉하고 편안하게 책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