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리는 인간이 다녀온 에듀콜라 워크샵
언젠가부터 이런저런 모임을 굳이 찾아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대에서의 경험이 그런 단초를 제공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대학을 다니던 때 -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대학에서 기말고사를 스물 두 번 치루었습니다 - 에는 모둠별로 하는 것이 뭐 별다르게 많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대학에서는 모둠 활동이 다 좋은 기억들 뿐입니다. 모둠 발표를 위해 밤을 꼴딱 새우며 즐겁게 준비하였던 경험, 강화도까지 답사 다녀오면서 굳이 타지 않아도 되는 자전거를 타고 고생고생하다가 결국 트럭 뒤에 얹혀 왔던 기억들. 좋았던 추억들, 즐거웠던 경험들을, 교대에 와서는 하기 어려웠습니다.
누군가 앞장서면 나머지는 그저 따라오는, 재미와 감동을 얻기에는 너무 많은 모임, 모둠과제, 협력과제들.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나서도 그런 경험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 연수를 가도, 결국 그 분들이 보여주는 것은 적당한 타협일 뿐. 그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사 안에 얼마나 강력한 교육관이 내재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협력하고 융합해야한다고 말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그걸 하기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업무를 따라 교사의 학년이 결정되는 구조, 한 땀 한 땀 교육과정을 함께 의논하기에는 꽤나 많은 교과 과목과 준비할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그리고 교사 자신이 학급 운영과 교과목 운영을 하면서 해 온 경험들이, 우리의 학습공동체를 무늬 뿐인 것으로 만들 때가 많다는 것을 옆에서 보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다른 교사를 설득하기에는 내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도 있을 뿐만 아니라, 설득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까지 더하여져서, 교사가 이루는 공동체는 결국 서로의 생각들이 병렬적으로 놓여질 뿐, 화학적인 결합은 어렵겠다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는 개인의 성향 탓인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굉장히 관계지향적인 면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학을 하나 둘씩 경험하면서 그런 면이 점차로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학 동문회가 셋이나 있는데, 나가지도 않을 뿐더러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는 것을 보면, 성향이 바뀌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교사가 되고는 항상 개인의 배움에 더 열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혼자 책 보고, 혼자 교재 연구하고, 혼자 교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유하는. 그리고 꽤나 즐겁게 그것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좋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무언가를 몰두할 수 있는 이 여유로움. 물론 주 52시간 근무제가 법으로 강제되기 시작하면서 대기업들도 천천히 이런 여유를 얻게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바짝 몰두한 후 일과 이후에 누리는 개인 성장과 발전의 여유는 참 좋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교사의 성장과 발전은 개인적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미술을 잘 못하는 내가, 다른 누군가의 미술 커리큘럼을 받아서 가르친다고 한다면, 그 수업에서는 교사인 나 자신이 아이들에게 개입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사인 내가 미술을 잘 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게 되진 못할지라도, 어떻게하면 잘 그릴 수 있는지, 무엇이 잘 그린 것인지 연구하고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에듀콜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흔쾌히 받아주신 에듀콜라의 필진 선발 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에듀콜라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은, 결국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는 자극이 필요하다는 지점이었습니다. 혼자 하는 무언가는 내적 성장은 꾀할 수 있을지언정, 외연을 넓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적 성장의 깊이도 자극이 있을 때 조금 더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듀콜라의 필진들은, 물론 그 깊이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다 어느 한 부분에서의 고민을 담아내고 있고, 그것을 전달하고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분들입니다.
생각해보면, 스스로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내는 분들은 에듀콜라 바깥에도 꽤 많은 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꾸준하게 자신의 진보를 드러내는 분들.
그리고 에듀콜라 워크샵은 '팔이 안으로 굽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결국, 저 분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새롭고 다양한 자극들이 내 삶에, 내 생활에, 내 학급 운영과 교육관에 다가설 기회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제게 에듀콜라 필진이 된 후의 세 번의 1박 2일 워크샵과 두 번의 일일 워크샵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성장하기보다는 침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던 중에, 누군가를 쳐다 볼 기회를 가지게 되면서, 내가 바라보던 방향을 조금 빗겨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며, 조금 더 그 뱡향을 바라보아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를 워크샵이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에듀콜라가 잃지 않아야 할 점은, 우리가 각자를 지향하는 집필 공동체라는 지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설득하거나 계도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아마 서로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동기로.
저도 이번 워크샵에서 15분 발표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당일에 캔슬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저부터 그 자리에 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나간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하여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즐겁게 다른 분들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 주신 준비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에듀콜라 퀴즈에서 2등을 함으로써 - 절세가인 만세! - 제가 에듀콜라에서 거저 있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건네어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저 그런 자리가 너무 좋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너무 애쓰신 불 앞 세 분의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덕택에 너무 호사스럽게 먹고 즐기다가 왔습니다. 저희 막냇딸을 함께 봐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저희 아이가 다녀와서 너무 즐거웠다고 여러 차례 말해주어 아빠로서 면이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결국 현장의 고민들이 함께 나누어짐으로써, 현장에서 조금 더 교사로서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할지 단초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임에 참여하면서 하나 다짐했던 것은, 모임 자리에는 빠지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잠시 다녀가는 한이 있더라도,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자극받는 자리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