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딸 이야기] 1.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름대로 전도유망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우선 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든 늘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돈 벌어오는 아빠에서 끝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빠로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사로의 전직을 시도했고, 그것을 이룬지 벌써 7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덕택에 저희 아이들의 학부모 상담에는 유초중 가리지 않고 항상 와이프와 함께 다니고 있으며, 아이들의 성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아이들과 와이프에게 조언할 수 있는 아빠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많은 학부모 상담 중에, 저희 둘째 아이와 얽힌 상담이 문득 생각납니다.
2년 전, 둘째 아이가 4학년, 2학기 상담때 였습니다.
6학년이었던 큰 아이 상담을 30분 동안 무난하게 끝마친 후, 둘째 아이 반으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뵈러 갔었습니다. 대부분의 초등학교 학부모 상담은 짜여진 듯 30분이라는 시간을 준수하지만, 그 날의 둘째 아이 상담은 근 한 시간 가깝게 이루어졌습니다. 둘째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저희 아이와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 상태였고, 저희와의 한 시간 상담 동안 아이의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하나씩 꺼내셨습니다. 요지는, 저희 둘째가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이죠.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저희 둘째가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은 채 수업과 관계없는 것을 꺼내어 그것에 몰두하는 모습이 종종 드러나던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저희 아이에게, 수업 시간에 이렇게 선생님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배우는 것을 따라올 수 없게 되고 점점 더 해야 할 공부가 어려워진다고 말씀하시면서 수업에 집중해야 할 것을 권유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저희 아이가 담임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수업은 재미가 없어서 안 듣게 되어요.
...... 어휴...... ...... ...... 아마 제 심정이 어떠했을지 이 이야기를 읽으시는 분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아빠가 초등학교 교사인 것을 담임 선생님도 이미 알고 계신데 - 아이들은 자기 아빠가 선생님인 것을 잘 못 감추더라구요 - 어떻게 아이가 자기 담임 선생님에게 그런 버릇없는 말씀을 드렸을까. 그 자리에서 정말 아주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게다가 선생님의 말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담임 선생님께서 저희 아이에게 말과 관련한 훈계를 하실 일이 생겨, 선생님들께 말할 때에는 예의바르게 의젓하게 말씀드려야 한다고 알려주시던 도중에, 컵스카우트 담당 선생님께서 저희 아이의 버릇없는 말 때문에 겪으셨던 속상함도 함께 전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들은 둘째 아이가 득달같이 컵스카우트 담당 선생님에게로 달려가서는, 선생님 때문에 제가 담임 선생님께 혼났잖아요, 라고 말했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같이 앉아있던 와이프는, 자신이 둘째 때문에 겪는 마음 고생에 대해서 말하다가 울컥하고...... 아주 마음이 곤란하고 힘든 학부모 상담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교실 문을 나서고 학교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집에 들어가서 이걸 그냥 죽여, 살려, 붉으락 푸르락 하는 마음으로 차에 시동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왜 저희 아이가 그렇게 말과 행동으로 학교에서 교사를, 혹은 가정에서 부모를 힘들게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부모 상담을 가던 도중에, 와이프가 그 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둘째가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고 엄마한테 떼를 쓰면서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빠락빠락 대들었다고, 그래서 아이를 아주 따끔하게 다스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저희 부부가 아이에게 늘 그랬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버릇없는 말과 행동 때문에 저 또한 아이를 꽤 많이 야단치고 혼내고 잔소리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와이프도 저 없는 사이에 아이에게 그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스스로에게 내가 너무 아이를 몰아세우면서 닦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 분노 게이지를 한참 올려가고 있던 제 마음에 찬물을 끼얹어주는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상담 전 와이프가 했던 이야기,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조금 다르게 곱씹고 나니, 둘째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잔소리 들을 일을 하는 것은 결국 관심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 아이들은 언제나 부모의 관심에 목마른데, 부모가 관심두지도 예뻐하지도 않을 때 결국 아이는 잔소리라는 관심에 머무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이에게 노파심 가득 담아 해 주어야 할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아이를 예뻐하기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돌아오는 차에서 와이프와 그렇게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오늘 담임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는 아이에게 되물으며 확인하지말자. 그거 얘기해서 아이를 채근해봐야 우리에게나 아이에게나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부모에게도, 선생님께도, 누구에게도 야단만 맞고 혼만 나는 아이. 결국 사랑해주고 이해해주어야 할 것은 학교도, 바깥에서도 아닌, 바로 집에서이다. 우리가 조금 더 허용하고, 우리가 조금 더 사랑한다는 말 아끼지 말고 해 주자. 와이프와 집에 오는 짧은 시간,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주 초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와이프가 둘째에게 씻고 과제하라는 말을 하는데, 둘째가 미적미적 미루기만 할 뿐 아니라 엄마한테 버릇없이 말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부르면서 매를 가지고 오라며 엄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물론 아이를 매로 다스리지는 않습니다만, 매를 함께 가지고 오라고 하면 더 바짝 긴장해서 오기 때문에 그렇게 아이를 부르곤 하였더랬습니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마침 매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아 그저 아이만 제게 쭈뼛거리며 다가왔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조곤조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요즘 둘째 너 때문에 여러가지로 속상하고 힘들고 아쉬운데, 그 이유는 너가 아빠 엄마를 배려하는 모양새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빠도 엄마도 너희들에게 배려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대상인데, 바깥에서 돈 버느라고 힘들고 집안일 하면서 너희들 챙겨주느라고 힘든 엄마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엄마 아빠는 언제 스트레스를 풀겠느냐. 아빠도 엄마도 우리 둘째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말해주면서, 아빠가 우리 둘째를 사랑한다고 꼭 안아 주었더랬습니다.
오랜만에 아이를 안아준 듯, 참 묘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생각해보면, 첫째 아이는 야단치고 나서 항상 안아주었더랬는데, 둘째 아이는 그걸 잘 못하였습니다. 야단치고 나서도 그냥 뒤돌아서 보내고...... 생각해보니 그런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서 아이의 마음에 전달된 것이 아닌가. 이상하게도 첫째 아이보다 둘째 아이가 항상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있는 편입니다. 항상 엄마한테 와서 안기고, 엄마한테 (아직도) 재워달라고 조르고, 막내가 엄마 아빠에게 안겨 있으면 항상 그것을 부러워하고......
와이프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며칠 후, 바로 집으로 퇴근할 수 없어 와이프와 전화하는 도중에, 와이프가 아침에 둘째를 아주 크게 혼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엄마한테 바보 멍청이라고 막말을 했다면서, 아주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혼을 어마어마하게 냈다고 합니다. 그런 와이프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바보 멍청이 정도가 어떻게 막말이냐...... 진짜 막말은 아이를 야단치면서 아이의 심정을 건드리면서 아이를 윽박지르고 정서적으로 꼼짝 못하게 하는 그것이 정말 막말이 아니겠느냐...... 아이가 그런 말을 하더라도, 머리 끝까지 화를 내지 말고, 비록 화는 나겠지만 일단 조곤조곤 말을 해라. 아이에게 엄마 마음을 이야기하다보면 화도 조금 누그러지고, 아이의 마음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냐. 그리고 아이한테 엄마가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꼭 끌어안아 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아이에게 그렇게 해 주었던 이야기를 곁들여서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아빠 엄마가 아이를 혼내면서, 야단치면서, 간혹가다가 용돈을 금지하겠다, 컴퓨터를 금지하겠다, 방에 들어가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라, 이렇게 말했던 적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른들에게야 별 말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규칙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혼을 낼 일이 생기더라도, 아이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규칙에 대한 것을 깨면 안될 것입니다.
둘째 담임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정에서의 규칙 적용이 언제는 느슨했다가, 언제는 엄격하고 그러면 아이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아이는 언제는 느슨했다가, 언제는 조금 엄격하게 하더라도 그냥 그렇게 저렇게 잘 맞추어서 지냈습니다. 무던한 성품인 아이. 그러나 둘째는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스타일입니다. 그런 아이에게 일관성이 없지는 않았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참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모가 먼저 아이를 사랑해내고, 아이에게 먼저 귀기울어야 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자기 의지로 저희 가족에게 찾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아이를 품고 사랑해내야 합니다.
물론, 그 후에도 잔정없는 저희 부부는 항상 사랑을 갈구하고 인정을 간절히 바라던 저희 둘째를 그렇게 닭살돋게 사랑하고 예뻐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훨씬 더 허용적으로, 아이의 여러 말과 행동들을 더 인정하고 받아주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6학년인 지금, 둘째 아이가 그 때보다는 많이 성장했음을 느낍니다. 2년 전 그 때, 그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이를 아주 잘근잘근 뭉개었다면 저희 아이는 또 하나의 슬픔을 마음 속에 응어리 품은 채 더 큰 인정과 허용에의 갈구를 드러내며 더 더 하였겠지요. 제게는, 저희 둘째와의 관계에서 분수령의 역할을 하였던 그 때 그 일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