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학급운영] 5. 여학생의 무리지어 어울리기
현장에서 지켜보기에, 여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삼삼오오 모여 함께 어울리는 것은 빠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되고, 늦어도 6학년 정도가 되면 어딘가의 그룹에 속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자 아이들은 조금 다릅니다. 남자 아이들과 면담할 때 가장 친한 친구들이 누구냐는 질문을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다 얘기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대다수입니다. 말하기도 어려울만큼 많다는거죠, 친구가.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모두 다 베프(베스트 프렌드)요 절친입니다.
글쎄요. 언젠가는 결국 남자 어린이들도 내밀한 관계망을 이루고 절친과 베프와 더불어 살아가게 될테니 남자라는 성별의 특성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저 성별이 보여주는 발달의 차이라고 할까요. 남자 아이들은 무리지어 어울리는 것이 여자 아이들보다 조금 더 늦게 이루어진다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그런데 여자 어린이들의 무리짓기가 다양한 양상으로 이루어지면 참 좋겠는데, 현장에서 보면 배타적인 면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을 만만찮게 보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발달하는 시기의 아이들이고,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이 많은 편이 아니니, 일단 시작한 인간관계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은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간혹 그것이 조금 더 적극적인 모양새를 띄게 되면, 다른 친구나 그룹에 대한 배타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럴 때 현장에서 굉장히 큰 어려움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발령받던 첫 해, 중간담임을 맡았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담임이 되었을 때 이미, 저희 반 열 여섯 명의 여자 어린이들은 8대 8로 그룹이 형성된 상태였습니다. 여덟 명이 강력하게 이너 서클을 형성하면서 다른 여덟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 반발로 나머지 여덟이 그룹을 형성하였지만, 그 여덟은 다시 넷, 둘, 하나, 하나 이렇게 느슨하게 연결된 상태로 다른 여덟에 맞서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그런 상태를 강화해가는 도중에 만난 상태라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도 꽤나 큰 상태였습니다. 처음 여덟은 나머지 여덟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나머지 여덟 중에서도 그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 몇몇이 처음 여덟과 날선 감정적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순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그룹 안에는 들어가 있지만 관계의 파열음에 크게 귀기울이지 않는 아이들도 한 둘 있었고, 이전 학년부터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망에 포섭되지 못한 채 애매한 위치에서 혼자 지내는 아이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은, 중간 담임 발령 후 아이들과의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였습니다. 6학년 시간을 지내면서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해보라는 말에, 여자 아이들 몇이 울면서 이런 자신들의 상황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지난 후, 10월에 접어들면서 대강 학급 안에서 찢어진 관계망에 대해서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후, 하나의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10월 말, 2박 3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방배정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여자 어린이들 열 여섯 명이 사용하게 되는 방은 두 군데.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나서 곧, 나머지 그룹의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던 여자 어린이 하나가 와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제게 건네었습니다. 여덟 명 씩 방을 써야한다는데 자기들끼리 방배정을 결정해도 괜찮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첫 반을 맡았던 저의 학급경영관 중 하나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할 때에는 그것을 존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발령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여자 어린이에게, 이 의견에 대한 동의의 서명을 나머지 여자 어린이 모두에게 받아오면 너희들 결정에 따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서명이 하룻 사이에 완료되었습니다. 그 어린이가 다음 날엔가 모두의 서명이 담긴 노트를 뜯어서 가지고 왔을 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덟 명 대 여덟 명으로 정확하게 나뉘는 현재의 상황이 고착되는 계기가 되겠구나.
아이들 전체에게 제 처음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는 양해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여자 어린이들이 이런 의견을 낸 후, 모두 동의한다는 의미의 서명지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선생님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 서명지를 받기 전이나 지금이나 너희가 원하는 그대로 방을 배정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것을 허락하는 것이 교육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불현듯 들었다. 선생님 생각에, 우리 반 여자 어린이들은 서로에 대한 장점을 찾아볼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상태로 오랜 기간 한 학급 안에서 생활해오면서, 이제는 서로에 대한 장점을 볼 엄두도 못내게 되어버린 듯 싶다. 선생님은, 이번 수학여행이 서로에 대한 좋은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깝지 않았던 저 아이가, 알고 보면 나와 꽤나 잘 맞는 친구일 수도 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이번 수학여행 때 찾아왔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너희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선생님을 한 번 믿고 선생님이 하는대로 맡겨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방을 번호순으로 배정해 버렸습니다. 그룹이 균형있게 잘 섞여버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제 말에 그렇게 크게 실망하는 듯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불만은 있었지만, 선생님의 생각을 한 번 믿어보는 듯 싶었습니다.
그렇게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그 후 있었던 일대일 면담에서 몇 명이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같은 방에서 서로 함께 생활하는게 그렇게 크게 힘들지 않았고, 잘 모르고 지냈던 상대방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 아이들이 벌써 졸업한지도 6년이 지났고, 벌써 이 아이들이 작년에 입시를 치루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일년에 한 두 번씩 무리지어 왔었는데, 오는 여자 아이들이 6학년 당시의 관계망과는 전혀 연관없이 뒤섞여 찾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관계망이 조금 뒤섞여버린 덕도 있을 것이구요. 혹은 그 때 아이들의 뒤섞여버린 경험을 통해 서로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지워버릴 수 있는 계기를 가진 덕일 수도 있겠지요. 이번에 수능 치루고 찾아온 아이들의 이야깃 속에서도, 당시 힘들고 어려웠던 관계의 영향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끼리의 추억과 우정만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즐겁게 당시를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학년 초, 이런저런 제 생각을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주곤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 특히 여자 어린이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이 인간관계를 통해 상처받지 않도록 해주는 보호막이 있다. 특히 초등학교는 담임 교사가 그런 역할을 해 주겠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한 책임은 그 스스로에게 돌아간다. 대학교라는 곳만 해도 공강 시간에 함께 어울려 차 마시고 밥먹고 하는 것도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결정해나가야 한다. 누가 어떤 수업을 들으라고 지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들을 수업도 스스로 결정해야하면서, 함께 다닐 클래스메이트에 대한 책임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어쨌든 1년 동안 한 공간 안에서 지내면서 함께 수업 듣고 밥 먹고 함께 어울려 갈 수 있게 정해주고는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피드백해주는 교사가 있지 않는가. 그것은 결국 이 보호막 속에서 인간관계를 배운 후 나중에 더 나은 관계망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더 넓은 관계망 맺기를 연습해보려고 하기보다는 가진 관계망 속에 갇혀버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흔히 절친, 베프라고 하는 울타리에 갇혀서 그 바깥을 보기를 꺼려하는 모습. 잘 생각해보면 그 절친이나 베프도 참 우연한 계기로 맺어진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우연한 계기로 깨어질 수도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천천히 연습해가며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도 키우고,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갖춰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어야하는데, 가진 관계가 단단하다고 해서 거기에만 갇혀 있으면 나중에 그 친구들이 어떤 경로로든 너의 옆을 떠나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당황하고 난감함을 느낄 수도 있다.
절친, 베프, 다 좋다. 이미 형성한 관계망을 굳이 깨거나 없애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학교에 와서까지 절친, 베프에 너무 매달리지는 말라는 말이다. 절친과 베프는 학교를 벗어나서, 집에 돌아가서, 방과 후에, 주말에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다. 학교에서는, 교실에 와서 있을 때에는, 이 속에서 함께 지내는 모두가 친구라고 생각하고 이 친구들과 잘 어울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친한 친구와만 항상 함께 다니면서 놀려고 하는데, 솔직히, 친한 친구보다 더 필요한 것은 좋은 친구가 아닌가. 좋은 친구는 무엇인가. 친한 것을 넘어서서, 내가 옳지 않은 것을 하려고 할 때 그것에 대해서 충고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아닌가. 그저 무슨 못된 짓을 하든지 함께 하는 친구 말고, 혹여라도 내가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옆에서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 아니겠는가. 친한 친구에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좋은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놓쳐버리면 얼마나 안타깝고 슬프겠는가. 학교에 와서는, 절친과 베프는 잠시 내버려두고, 모든 교실 안의 친구들과 두루두루 함께 어울리면서, 더 좋은 친구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려고 노력해라.
인생을 절친과 베프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 프(프렌드, 친구)도 있어야 하고 동료도 필요하다. 프와 동료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도외시한 채, 절친과 베프에게만 몰두해서 지내다가, 절친, 베프와 어떤 일이 생겨서 헤어지게 되면 그 다음의 힘듦과 상실감은 극복하기 힘들어진다. 좋은 친구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키우고, 두루두루 모두와 좋은 관계망을 맺으면서 다양한 층위의 인간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배우기도 하는 이 교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6년간의 담임 생활 첫머리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지속적으로 담임 교사의 생각을 전달하면서, 한 5년 정도는 아이들이 두루두루 친한 모습으로 잘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더 친한 그룹이야 맺어 나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그룹과 뒤섞이지 않거나 배타적이거나 다툼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나머지 한 해는 조금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해서... 그 특수함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두드리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생략.
결국, 관계맺음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인생관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투사될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6학년 담임교사로서 학급 운영을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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