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World] 10. 어른들의, 교사의 놀이
어른들의, 교사의 놀이
제가 보드게임을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7월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던 새벽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제헌절이 공휴일이라, 밤새 내내 즐겁게 놀려고 마음 먹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사를 마친 후 정장 차림으로 바로 신촌에 도착하였습니다. 함께 대학교에 입학했던 동기들보다 서너살 많았던 터라 저는 스트레이트로 학교를 다녀 5년 만에(!) 졸업하고 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창 때인 동기들은 졸업을 미루면서 시험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습니다.
만나서 PC방 가서 놀다가 자정 거의 다 된 시간에 나와서는 뭐 할까 이야기 나누다가, 불현듯 누군가에게 들었던 보드게임방이 생각나서 거길 가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밤새 보드게임.
보드게임을 처음 해 본 후, 저는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다,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두 곳의 대학교를 거치며 누려왔던 대학생의 놀이 문화. 술, 영화, 당구, 피시방, 노래방, 만화방... 즐거운 놀이였지만, 항상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었고, 무언가를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영화를 제외한 놀잇감들은 한창 놀고 난 후 이를 되새겨보지 않습니다. 술 마실 때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술 마시고 나면 그저 술기운의 뒤끝에 몇 마디 더 나누다가 그저 헤어지기 일쑤.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지만, 나온 후에는 '이제 뭐 하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보드게임을 하고 난 후에는, 할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아까 했던 내 플레이 이야기, 보드게임 상황에 대한 이야기,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 놀이가 끝난 후, 놀이가 가득 채우는 경험을 보드게임이 제게 제공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보드게임을 하는 어른들끼리 만나면, 보드게임을 하면서 노는 시간보다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다가, 누군가 다른 보드게임 하실래요? 라고 말하면 그 보드게임 펼쳐들고 또 다른 놀이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10년을 넘는 시간, 보드게임은 어른들의 놀이로써 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놀이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전 운이 좋았습니다. 어른에게 놀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깊이 있게 하기 전에, 제게 필요한 놀이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놀이를 하면서 보니, 제 주변의 어른들 중에서는 자신의 놀이를 만나지 못한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직장 다닐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늦은 퇴근, 그 후에 가지는 회식 시간. 술이 술을 부르고, 술이 말을 꺼내도록 하는데, 말도 술도 돌고 도는 이 시간이 매 회식 때마다 다시 도는 느낌. 그러면서, 아, 이 분들은 술이 없으면, 술기운이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하기 어려울만큼 여유도 없고, 관계하고 함께 누리고 나누는 법도 이제 다 잊었구나.
진짜 놀이가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어른입니다. 어른들이야말로 자신에게 맞는 놀이가 필요한 이들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시는 모습을 봅니다. 저희 지역의 퇴근길 직무연수인 '고학년 놀이 보드게임' 연수에도 그렇게 배우러 오신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선생님들께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연수가 무언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을 탐색하는 연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 아이들의 수업을 위해,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 배워가시는 연수를 넘어서, 선생님들께서 보드게임이라는 놀이의 매력을 맛보고 가시면 좋겠다는 말씀.
아이들의 놀이권을 보장하기 위한 어른들의 노력 만큼이나, 어른 스스로의, 그리고 교사 자신의 놀이권도 중요하게 여겨지면 좋겠습니다. 하위징아의 말대로, 인간은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보드게임이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바,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가 다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좋은,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놀이가 아니라 놀이 이후에 자신을 들뜨게 만들어주는 놀이, 다른 사람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어 세상을 혼자 하지 않음을 알려줄 수 있는 놀이, 그런 놀이를 모든 어른들이 가지고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기하게도, 자녀와의, 학교의 아이들과의 연결 고리도 부모가, 혹은 교사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놀이로부터 비롯됨을 경험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하게 된 저는, 저희 집 아이들을 데리고 참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차를 타고 몇 시간 걸려서 도달하고는, 탑 하나 덩그러니 서 있는 장소를 들러 들러 온 기억도 있습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일에 아이들을 억지로 함께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있었지만, 지금 아빠와 그렇게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면서 여기저기 함께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빠의 진심이 아이들에게도 가서 닿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놀이도 그렇습니다. 교사가 좋아서, 교사가 즐기고, 계속 즐기고, 언제나 즐겨야 아이들도 즐깁니다. 던져주는 놀이가 아니라, 교사 자신은 즐기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즐기라고 알려주는 놀이가 아니라, 교사가 먼저, 부모가 먼저 즐기는 놀이어야 아이들에게도 그 즐거움이 전달됩니다. 놀이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놀이하는 것이, 교사의 놀이와 교사 아닌 이들의 놀이와의 차이를 만들어 내겠지요.
이제 배우는 놀이를 넘어서서, 누리고 향유하는 '나의 놀이'를 하나쯤 갖고, 어른들끼리, 아이들과도, 즐겁게, 놀이해봅시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 지난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