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학원에 다닐수록 수학이 싫어져요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6. 학원에 다닐수록 수학이 싫어져요
저는 독서와 보드게임 정도 가진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입니다. 주변 분들을 보면 동호회도 다니고 배우는 곳에 가서 이것저것 배우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하기에는 망설임이 큰 편이라 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쩌다 가지게 된 보드게임 취미 덕택에,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기쁨은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아이들의 놀이로 이런저런 보드게임을 같이 하면서 안목도 좀 늘어나는 것 같고, 아이들이 하면 좋아할만한 보드게임을 선택하는 것도 조금은 수월하게 하고 있습니다. 주변 선생님들이 ‘좋은 보드게임 좀 추천해 봐요’라고 말씀하시면, 그래도 몇 가지 간단한 규칙 안내와 함께 소개해 드릴 정도는 되었습니다. 목소리에 점점 자신감이 붙어 갑니다.
그러고 보면,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해서 이걸 꾸준하게 해 나가면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고 아는 척도 하게되고,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눈도 반짝반짝 거리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제 반 아이들에게 몇 년 전 부터인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곤 합니다. ‘너흰 평가 전문가들이야’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굉장히 많은 평가 국면을 경험하여 왔습니다. 요즘은 소위 ‘총괄평가’라고 하는, 중등학교의 중간, 기말고사 같은 방식의 평가는 치루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한 학기에 최소 스무 개 정도의 수행평가를 지필평가 방식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해 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아이들은 평가의 현재 전문가입니다. 아마, 몇 십 년 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분들보다 초등학교 평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평가는 아이들을 주눅들게 합니다. 아이들이 잘 배웠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평가가 아이들을 위축하게 만드는 까닭은 아마도, 자신들의 평가의 주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가를 치루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그래서 그렇게 많은 평가를 경험하였는데도, 아직도 평가를 싫어하고, 또 앞으로도 평가를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학습의 성취 정도를 스스로 점검하게 만드는 ‘자기평가’의 국면이 초등학교 현장에서 조금씩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아이들의 메타인지 역량 증진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를 스스로 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학교 현장에서 강화해야 할 평가 방식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을 신뢰할 수 없어 자기평가 결과를 실제 평가에 반영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의 자기평가 역량을 늘려가면 됩니다. 수행평가 국면이 아닐 때에도 끊임없이 자기평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기평가와 동료평가, 그리고 교사의 평가를 계속 크로스 체크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확인해가면 될 일입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이들이 가장 많이 신경쓰고 스트레스 받는 과목을 말하라면 단언코 수학입니다. 잘 하는 아이들도 더 잘하기 위한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못 하는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잘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정에서 수학에 대한 투입이 가장 많기도 하고, 가장 적극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공교육 수업 이외에도 학교 바깥에서 수학을 배우는 것을 봅니다. 뭐, 저도 (세 번의) 대학교 재학 중의 이런 바깥 수업 덕택에, 학비도 내고 생활비도 하고, 가장 노릇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배우고, 교과용 도서에서 취급하는 문항의 몇 십 배나 되는 문제를 풀고, 심지어는 선행도 하는데, 아이들은 수학을 싫어하고, 어려워하고, 자신없어 합니다.
상식에 어긋납니다. 분명히 하면 할수록 더 자신감도 늘고, 조금 더 잘 알고 파악하게 되며, 나름대로의 경험을 토대로 목소리도 커져야 하는데... 진급도 하고 학년도 올라가는데 아이들의 수학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더 하락합니다.
물론, 배우는 내용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등산을 취미로 갖고 계신 분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점점 더 높은 산, 험한 산을 위해 장비를 갖추고 훈련하며 등산 루트를 공부하며 준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배우면 배울 수록, 더 높은 과정에 대한 도전 의식, 더 깊이있는 깨달음에 대한 갈망, 그리고 끊임없이 몰두하는 자세를 보게 됩니다.
수학은 보드게임이 아니고, 등산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 불가능 한 것일까요?
수학 학원 혹은 개인지도 국면에서 볼 수 있는 모습 중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평가 국면에서처럼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부분입니다.
사교육이 시작될 때 가장 먼저 취해지는 조치는, 답안지를 빼앗는 것입니다. 과제를 내었을 때 아이들이 답안을 베껴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실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조치입니다.
아이들은 문제를 푼 후에, 스스로 결과를 확인할 시간을 유예 당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학창 생활 중에 모두 경험하셨겠지만, 중간, 기말고사 보고 바로 답 맞추는 것은 국룰입니다. 수능 보느라 긴장한 와중에서도 수험표 뒤에 답안을 적는 것은 빼놓지 않습니다. 예전, 수험표에 자신의 답안을 쓰는 것을 막았던 시절에는, 그래서 시험 끝나자마자 EBS 등을 보거나 다음 날 신문에 부록으로 오는 수능 시험지에 자신의 답을 체크해서 가채점을 하곤 하였습니다. 본능입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확인하고자 하는 태도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취하는 행동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기본적인 행동을 꺾어가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과제량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답안을 베끼게 됩니다. 학원의 수학 과제가 너무 많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왜 학원은 그렇게 많은 과제를 내어서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포털 사이트에서 답안지나 구걸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이들을 편하게 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안 그러면 학원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사교육은 수익이 나야하는 공간입니다. 보완재이기도 한 것인데, 지금은 학원 수업 때문에 학교 수업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양새입니다.
(학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글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물론, 제 글입니다.)
https://www.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KimTaehui&wr_id=111&page=5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자꾸 연습 이야기가 튀어 나오고, 잘 하게 만들면 좋아하게 될 것이다 같은 이야기가 튀어 나옵니다. 아이들이 수학 배움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없는 시스템 아래에서, 연습을 하면 어쩔 것이며, 과연 잘 하게 만들 수 있는가는 의문스러울 뿐입니다.
하면 할 수록 아이들이 싫어하고 재미없어 한다면, 그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너무너무 착해서, 교사가 열정적인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제공할 때, 모두가 아주 즐거워 해 줍니다. 저는 그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진짜 이 아이들이 이걸 재미있어 하는 것일까? 혹시 자신들이 신뢰하는 담임이 하자고 하는 것이라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교사가 제공하는 것 자체의 즐거움인지, 교사이기 때문에 느끼는 즐거움인지도 면밀하게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작년 아이들은 재미있어 했는데, 올해 아이들은 재미없어 하네요' 같은 말씀은, 아마 교사가 아이들과 만들었던 관계의 차이 때문에 나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재미없다고 한다면. 그건 재고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학원의 선택은 학부모로부터 나오는 일입니다. 학부모가 자기 자녀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자기 자녀의 미래에 의구심을 가지며, 공교육 교실 공간의 배움을 신뢰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학원에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초등교사들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원을 좋아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데, 배우면 배울 수록 자신없어하고 힘들어 하는데, 그런 아이들과 함께 교실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초등교사는, 과연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 연습을 시켜야 한다, 같은 이야기는 좀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배움이 아이들 주도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