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잘 하면, 좋아하게 돼."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초등교사, 초등수학을 말하다
2. "잘 하면, 좋아하게 돼."
예전과는 달리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면서, 연습의 신화는 다양하게 퍼져나가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유명 운동선수 인터뷰 등에서 '꾸준한 연습' 등의 코멘트가 수학 학습 역량 증진과도 연결되는 모양새입니다. 그럼. 역시 수학은 연습이지.
이와 같이 연습을 강조하는 이유로는 아마도, 연습의 결과로 실력을 얻게 된다면 수학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리 아이들을 더더욱 괴롭히는 일이 될 뿐입니다.
교사에게는 이런저런 연수 기회가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일반 직장에서도 직무 연수 기회가 있지만 아주 많은 편은 아니며 보통 좁고 제한적입니다. 이에 비해 교사는 미성년자인 학생에 대한 보호 차원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배움을 설계·운영한다는 특성 때문에, 교사 스스로 자기 계발을 위해 참여하는 능동적인 연수 뿐만 아니라 의무적이며 수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연수도 '상당히' 많습니다.
지역에서 '학교로 찾아가는 SW교육 연수' 강사로 여러 학교를 다닐 기회를 많이 가진 바 있습니다. 이 연수는 교육청 차원에서 2015개정 교육과정에 새롭게 반영된 SW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의 리터러시를 넓히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대면 두 시간 씩 연수를 시행하는데 사용하도록 목적사업비가 학교에 일괄적으로 지급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은 대부분 그저 학교 연수 담당교사의 연수 통보에 마지못해 참여하셨으며, 심지어 출석부에 이름만 적어둔 채 강사가 있거나 없거나 신경도 안 쓰고 그냥 나가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교사에게 주어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연수의 기회와 자리, 그러나 교사의 관심과 흥미 혹은 필요성을 자극하지 못하는 연수는 그저 짐스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일에 대해 억지 연수 자리를 만드는 셈입니다. 그나마 교사의 연수는 하루 이틀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최장 12년 이상을...
- 선생님, 수학은 너무 어렵고 하기 싫어요.
- 조금만 더 견뎌보자. 연습하다보면 잘하게 되고, 수학이 재미있어 질거야.
어린이들에게 위와 같이 이야기하시는 선생님은 아마도, 어린이의 실력을 높이고, 자존감을 향상시키며,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교육(지원)청 역시 이런 마음으로 교사 대상의 여러 연수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 교사가 하는 생각을, 아마 우리 아이들도 똑같이 하는지도 모릅니다. 뭐하러 부질없이...
물론, 교사 중에는 의무감으로 참여했던 연수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분도 있습니다. 아마 어린이 중에서도 억지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성취를 터하여 흥미를 느끼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경우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사례들이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조치'를 만드는 근거가 되어줍니다. 일단 해 봐. 그러다가 잘하게 되는거야.
그런데 과연 이러한 '조치'가 효과가 있을까요?
어릴 적 어린이들이 무언가를 시작하는 계기를 생각해보면, 사실 다 우연에 기반합니다. 우리 아이와 어린이집 같은 클래스에 다니는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내 아이가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입니다. 옆집 아이가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하는 바람에 우리 집 아이도 수영을 시작하게 되는 것 또한 우연입니다. 만약 옆집 아이가 피아노가 아닌 발레를 시작하였다면, 우리 아이도 발레를 하게 되었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가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것도 아마 우연히 옆집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비롯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우연의 주체는, 부모입니다. 부모가 허락하고, 부모가 자극하고, 부모가 격려하는 것입니다. 엄마, 어린이집 친구가 피아노를 다닌대. 오오, 그래? 아들/딸아, 너도 한 번 해 볼래? 그럴까?
어린이들이 시작하는 것은, 따라서 부모 때문입니다. 부모가 해 보라고 권유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권유를 따르는 이유는 아마도,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부모가 쥐고 있는 강력한 헤게모니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 세계의 중심은 가정, 그리고 가정의 핵심은 부모이니,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부모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격려하며 행복해 합니다.
그러다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어린이들의 세계는 확장되고, 가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친구들이 우리 아이들을 권유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부모가 허락하거나 자극하거나 격려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부모가 먼저 '해 볼래?'라고 말했는데, 어느 순간엔가 부모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아이들이 '해 보고 싶어'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부모와 어른들은, 부모가 허락하거나 자극하거나 격려하면 - 즉, 시키면 - 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매여 있습니다. 그렇게 시켜서 되는 아이들이, 물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부모의 - 혹은 교사와 강사들의 - '성공사례'가 되곤 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어른들의 아이덴티티가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수많은 아이들은 또 한 번 실패하게 되겠지요.
의도가 선하다고, 결과가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어린이들도, 어른들과 똑같습니다. 재미있어 보여야, 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런데, 어른들 중에는, 공부가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공부는 원래 힘든 것이며, 하다보면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라고 무심하게, 쉽게 말하곤 합니다.
물론, 하다보면 재미있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그러나 아주 어릴 적, 부모가 세계의 중심이고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가장 소중하던 때에나 벌어지는 일이며, 간혹 드물게 그냥 시키는 것을 잘 따라하는 성향을 가진 경우에나 발생하곤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재미있어야 더 하게 되고, 더 잘 하고 싶어하게 되며, 더 공부하게 됩니다. 어른들이 배우는 많은 것들이 그렇잖습니까. 먹고 사는 일과 연계되어 억지로 하기 시작했다가 재미를 붙이는 경우 - 거의 없겠지만 - 가 아니라면, 어른들도 우연히 흥미를 느끼거나 필요에 따라 시작하였다가 홀딱 빠져들어 공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교사 연수도 교실과 교사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재미와 감동이 있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필요를 애써 주입하여 억지로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까. 지금 필요한 '조치'는, 아직까지는 필요를 발견하기 어려운 초등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학이 가진 재미가 담뿍 묻어있는 배움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런 고민 없이, '잘 하면 재미있게 돼' 같은 말로 아이들을 꼬셔보는 일은 이제 그만 둘 일입니다. 나름 재미있게 만들었다 생각하지만 이를 어린이들이 재미없어 할 때, 이 정도 했으면 되었으니 '이제 연습하자' 같은 말로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만들까를 끝없이 고민하고 더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끊임없이 만들어 기필코 재미있는 배움이 일어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20210925 글을 매끄럽게 가다듬고 내용을 정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