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제가 개인과외를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1994년 2월, 대학 합격증을 받아든 그 시기였습니다. 사실 개인과외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냥 교회에 중학생들 모아두고 돈 오만원씩 받고 과외랍시고 대학생 흉내를 낸 것인데... 그 이후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개인과외를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등록금을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하는 처지에, 생활비도 집에 손벌리기 어려운 처지였기 때문에, 그래도 시급이 가장 높은 과외를 계속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과외를 십 수년이나 하게 될지 몰랐습니다. 대학교를 세 번이나 다니게 될지 몰랐던 것처럼 말이죠.
첫 학교에서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주로 과외한 과목은 수학이었습니다. 수학을 잘했고, 또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인데, 가르치는 재주도 나쁘지 않았던지 그래도 끊임없이 줄곧 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줄곧 수학 과외를 한 것이 아무래도 사교육 시스템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국어나 영어, 혹은 다른 과목과는 다르게, 수학 과목은 단단하게 엮인 전후간의 계열성이 교수-학습 과정에서 줄곧 고민거리를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 학교 - 첫 학교는 5학기 다니고 중퇴 - 를 무사히(!)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을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었는지, 전도유망하던 직장 생활을 3년 2개월여만에 접고, 수능 준비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교대 진학을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없어 - 마침 첫째 아이가 막 세상빛을 본지라 - 수능 준비와 겸하여 학원 전임 강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운 좋게 교대에 입학할 때까지 1년 7개월 간 학원 강사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다사다난한 여정을 거쳐 교대에 입학해서도 - 교대 입학하기 직전에 둘째 아이를 낳았지요 - 가족 부양의 사명을 띄고 대학생 신분(!)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는 교사로 임용. 이제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온지도 6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경험을 일반화하기 쉽진 않겠지만, 고민 많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마도 지금 이 시절에도 유효하리라 생각합니다. 경험은 다르지만, 본질적 양상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니까요. 그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한 번 두드려볼까 싶습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마주 대하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제 경험을 되돌아보며 뼈저리게 되새겼던 것이 바로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격언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볼까 합니다.
사교육 현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곳에서는 왕도가 잘 포장되어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는 양상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아이들이 '이 길이 아닌가벼~'하면서 걷던 왕도에서 내려와 다른 왕도에 올라타거나, 혹은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계속 그 길을 걸어가곤 하는 모습도 함께 보곤 합니다. 혹은 학부모께서 울며 겨자드시는 경우도 있구요.
그런데 공부에 왕도는 정말 없습니다. 혹여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은 것임에 분명합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공부법이 제각기의 이름을 달고 있는지... 검색해보지 않아도 너무나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공부법 중 하나가 왕도였다면, 다른 공부법은 살아남을 시간을 갖지 못했겠지요. 왕도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무수한 공부법이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공부법에는 왕도가 없다는 방증이 되어 주는 격입니다.
혹은, 공부의 왕도를 판다는 선전을 보고 이를 구매해 보기도 하지만, 막상 내게는 왕도가 아닌 적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누군가는 분명히 효과를 보는 듯한데, 나는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 놀라운 기적같은 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책을 하나 인용해 볼까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놀랄 기회를 더 많이 허락할수록, 놀라움에 대한 기준은 더 높을 필요가 있다. 누군가 인터넷에 자신이 그동안 북아메리카산 곡물 섭취를 철저히 금했더니 몸무게가 7킬로그램 빠지고 습진이 사라졌다고 썼다고 하자. 우리는 그의 말을 옥수수 배제 식단의 효능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여겨서는 안된다. 누군가 그런 식단에 대한 책을 써서 팔았다고 하자. 수천 명의 사람이 책을 사서 따라 했을 테고, 그중 한 명쯤은 그저 요행으로 다음 주에 약간의 체중 감소와 피부 상태 개선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 한 명이 <옥수수는이제그만452>라는 아이디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들뜬 간증을 남긴 것일 테고, 반대로 식단의 효능을 보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잠자코 있었을 것이다. [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 p141
여행가기 전, 맛집 검색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온라인 상에서 그렇게 극찬을 받는 맛집이, 왜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 걸까 생각해보면, 위의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입소문은, 효과를 본 사람들을 통해서 번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문 뒤에는,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의 침묵이 침잠하여 있습니다.
성공이 과대포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성공들만 모이고 또 모여서 성공신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뒤에 드러나지 않은 어마어마한 실패들의 흔적이 감추어진채 말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 성공마저도 우연히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공부법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제 공부법은, 저를 소위 일류대학교라고 하는 곳에 보낸 바로 그 공부방법입니다. 그리고 이 공부방법으로 효과를 본 아이들도... 약간 명 있습니다. 약간 명입니다. 약간 명. 개인과외로 저를 거쳐간 150여명의 학생 중 한 두명 정도... 좋은 성취를 거둔 아이들은 조금 더 있지만, 그런 아이들 중 대부분은 아이들의 역량이 좋았던 것이고, 제 역량이 아이들을 끌어올린 것은 한 두명...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인즉슨, 제가 가진 노하우가 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에게 휘두른 잣대를 다른 이에게도 대어본다면, 아마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들 착각하는 것이죠. 아이의 역량인데 강사의 역량이라고 착각하거나, 강사의 역량이 부족한데 아이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착각하거나, 저 아이의 역량과 이 아이의 역량이 다른데 강사가 자신의 역량대로만 케어해도 이 아이들이 모두 성장할 수 있다고 착각하여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거나.
초등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지내보니 이제 확연하게 알겠습니다. 직접적인 댓가 없이, 공교육 교사라는 책임감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니 아이들의 모습이 백인백색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부모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부모의 양육 방침도 다르고, 접해온 경험도 다르고, 삶의 모양도 다르고, 지금까지 만나온 담임과 친구들도 다 다른 이 아이들에게, 한 가지 교수법으로 배움을 추동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간혹 운이 좋아 내가 가진 방법으로 이 아이의 총체를 북돋우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와 같이 상성이 맞는 경우를 우리는 결코 예단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겪어봐야 아는데, 어떻게 저 강사가 우리 아이와 맞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많은 학부모께서 과대포장된 성공사례를 보고 내 아이도 이런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에 편승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는 저 성공사례가 될 수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내 아이의 노력을 탓하고, 내 아이의 부족함을 탓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 아이의 부족함이 아니라, 저 성공사례가 우리 아이의 성공사례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보지 않는 근본적인 성찰의 부족이며, 성공사례 뒤에 감추어진 수 십 배, 수 백 배의 실패사례를 넘겨다보지 못하는 통찰의 부족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학부모를 어리석다 함부로 탓할 수 없습니다. 학부모께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