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학급운영] 1. 공정하게 대하기를 실천하다
어떻게 하면 6학년 담임교사 생활을 그렇게 줄기차게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햇수로 7년째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6학년 담임만 6년째이며 6학년 담당 교사로만 7년을 오롯이 보내다보니 받는 질문인 듯 합니다.
다른 학년으로 보낸 경험이 없는 탓에 속단하여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6학년 교사는 우선 편하고 또 보람도 있고 즐거우며 무엇보다 내 제자를 갖는다는 부분이 가장 좋아서 계속 하게 되는 듯 합니다.
올해 학교를 옮기면서도 그 부분을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6학년 교사를 할 수 있는가. 그래서 6학년 교사를 시켜달라고 부탁해 볼 수 있는 학교를 지원하였고, 덕택에 초빙교사로 과학정보예체능실습부장 업무를 담당하면서 6학년 담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어떻게 하면 6학년 담임교사 생활을 잘 해 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턱 막힙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것과 잘 해 내는 것 사이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며, 가끔 뒤돌아보면 과연 제가 정말 6학년 담임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스스로 가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래도 6학년 담임 경험이 조금은 되다보니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해 보기도 하는데, 과연 그런 나름대로의 생각이 과연 다른 분들께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초등학교에는 6학년 학급이 존재하고, 누군가는 6학년 담임을 맡아야 하는데, 저처럼 6학년이 좋아서 한 번도 피하지 않고 6학년을 찾아드는 이들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6학년을 반드시 피하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맡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6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별별 일들이 많았지만, 다른 분들이 읽으실 때 그래도 참고하실만한 이야기를 한 번 두드려 볼까 싶습니다.
1. 공정하게 대하기를 실천하다
교직에 들어와서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씀은, 남자 교사는 초등학교에서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현장에는 남자 교사가 많지 않습니다. 올해 근무하게 된 학교에는 마흔 분 남짓 되는 전체 선생님 중에, 교장 선생님 포함해서 저까지 일곱 명의 남자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매년 아이들에게서, 학부모님들께, 초등학교 6년간 남자 선생님을 처음 만나요, 라는 말을 곧잘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남자 선생님이 처음이라서 아이들이 많이 겁냈다는 말씀까지 말이죠.
여하튼, 남자 교사인데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 장대한 신장을 자랑하면서, 아랫배로부터 끓어올라 멀리 퍼져가는 우렁차고 묵직한 고함 소리를 가진 덕택에, 갓 6학년이 된 아이들에게 충분히 위압감을 줄 수 있는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들이 겁낼 만한 부분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 지난 번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6학년 담임을 내내 하니까, 아랫 학년 아이들에게서 이런저런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습니다. 6학년 몇 반의 누구누구 선생님은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면서 - 뛰지 마아아아아아아앗! - 무섭게 굴고 과제도 많은데다가 시험도 많고 어렵다더라 같은.
그 덕택에, 5학년의 마지막 날 받는 생활통지표를 통해 제가 담임임에 분명해 보이는 학급에 배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아이들 중에는, 드물게,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하며, 그 주변의 친구들은 비보를 전해받은 아이들에게 위로와 - 참 안 됐다 - 되도 않는 위안과 - 그래도 그 반 선배들은 그냥저냥 지낼만 했대 - 때로는 호탕한 웃음 - 으하하하하하! 완전 좋겠다아아아아아하하하하! - 같은 것을 보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덕택인지, 6학년 아이들을 맞이해보면 아이들 중에서는 지난 5년간 학교에서 그 명성(!)을 자자하게 떨쳤던 아이들이 모여서 올라오기도 합니다. 반 배정을 마친 후에 5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들이 새로 올라오는 6학년 아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하는데, 언젠가는 한 선생님께서 저희 반에 올라올 아이들의 명렬표를 보시고는 '아아니, 얘랑 얘가 같은 반에 있어? 이러면 맨날 둘이 싸우고 난리일텐데, 선생님이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겠어?'라시면서 제 사기(!)를 꺾어 놓으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자 교사가 가지는 무시무시함에 대한 선입견이 주는 면에 비례해서, 남자 교사로서 여자 어린이들을 대할 때의 어려움 또한 그만큼이나 크게 다가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여자 어린이들은, 드디어 자신이 예민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드러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바로 무리짓기입니다. 일반화시키기는 조심스럽기 때문에 개개인에 대한 판단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늘상 관찰하는 것이 초등학교 교사의 일이지만, 그래도 남자 아이들은 좀 덜 무리짓고, 여자 아이들은 좀 더 무리짓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학년 초 면담을 진행하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남자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묻는 질문에, 십중 팔구는 '전부 다 이야기해요?'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친구라는 이야기이죠. 그래서 많은 남자 아이들의 놀이 모습을 보자면, 항상 멤버가 다양하게 바뀌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은 조금 덜 한 편이죠. 보드게임을 하려고 해도, 항상 하는 아이들과만 하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다 그렇진 않지만, 그런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꽤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놀이하는 반도 있구요. 그래서 간혹 어떤 여자 아이들은 누군가와 꼭 함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아이가 다른 아이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이 보이는 듯 싶으면 그것을 도무지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툼이 발생하곤 합니다.
여자 어린이들은 때로 호불호를 너무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싫어하는 것을 도무지 좋아해보려고 하지 않는, 그래서 굉장히 강력하게 거부감을 드러내며 그 싫어하는 것이 자신의 생활 영역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는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런 것 중에, 학습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도드라지곤 합니다. 한 과목을 싫어한다고 스스로 결정지으면 도무지 그 과목에 대한 호감이나 흥미를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 호불호의 태도가 때로는 교수-학습 시간에 드러나서 담임 교사와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으로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어떤 책의 제목처럼, 전혀 다른 성향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남자 교사가 여자 어린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도 평생의 숙제이자 고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성의 존재와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해 온 덕택에 저는 조금 쉽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다른 남자 교사라면 이것이 쉽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한 가지 원칙을 항상 학년 초에 아이들에게 말해두고는 그것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충고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학교에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충고하는 상황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저 존중과 배려가 담기지 않은 말과 행동이 나올 경우, 성실함이 결여된 결과물이 나올 경우 정도 말고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단호함을 담아서 충고를 건넵니다.
그러려고 굉장히 노력합니다. 그 노력은
기억
을 통해서 실체화됩니다. 의도적으로 기억해 둡니다.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강력하게 충고하였던 상황, 그리고 그 때 제가 아이들에게 건네었던 목소리 톤과 크기, 동작과 여러 주변 상황, 그리고 건네었던 말 등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그 대상이 남자 어린이이든, 여자 어린이이든, 이전의 목소리 톤과 크기, 동작과 함께 주변 상황도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충고를 건넵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 제가 맡게된 반은 원래 담임 선생님의 병가로 인하여 중간에 담임이 교체된 반이었기 때문에, 여러 문제들을 그저 수습하는 것으로도 벅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공정하게 대하자는 것이었는데, 의외로 여자 아이들이 이런 부분을 당연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아이들은, 담임 교사가 단호함을 담아 충고하는 것보다 서로를 다르게 대하는 것을 더 싫어함을 말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차별입니다. 편애라고도 하지요. 똑같은 상황인데 누구에게는 A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B로 대하는 것을 아이들은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 상황을 안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공정함은 남자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얼마 전 저희 반 남자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판단하신다.
교사가 남자 아이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선입견도 존재합니다. 남자 어린이들은, 특히 이전 학년부터 명성을 떨치고 있던 남자 어린이들이라면, 아마 담임 교사로부터 '무슨 일이니?'라는 말보다는 '도대체 왜 그러니!'라는 말을 가장 먼저 들었던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아이가 이야기한 부분은 아마 그런 부분이었던 듯 싶습니다. 자신을 먼저 나무라기보다는, 일단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난 후 선생님으로서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하려고 노력하는 제 태도를 아이가 평가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자 어린이들에 대한 선입견도 어떻게든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담임하였던 아이 중에, 유난히 키도 덩치도 목소리도 컸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항상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지적을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쪼르르 달려와서 뭐라고 뭐라고 이르더군요. 그래서 키도 덩치도 목소리도 큰 아이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강력하게 충고하면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선생님도 너의 처지를 이해한다. 남들보다 단지 키와 몸집과 목소리가 클 뿐인데, 아이들은 너에게 유난히 더 예민하게 굴지. 선생님도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네들끼리는 그저 장난인데, 너가 똑같이 하면 아이들은 폭력이라고 이야기하니, 너는 얼마나 억울하겠니. 선생님이 너가 그런 부당함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겠다. 그러나, 너도 다른 아이들이 심한 장난으로 받아들일만한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에게도 알게 모르게 마음 속에 맺혀있는 것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특별하게 달라진 무언가는 없었지만, 아이와 교사는 마음을 나누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년 초를 지내가면서 점점 아이들과의 관계망이 형성되면, 아이들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학년 초에 아이들에게 보인 일관된 모습이 아이들로 하여금 금새 담임 교사의 공정성을 신뢰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담임 교사의 마음가짐을 때때로 어필하는 부분도 필요합니다. 담임 교사가 항상 공정함을 지키려고 노력한 모습을 구체적인 상황과 함께 언급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학년 초 한 달은 아이들에게 웃음을 보이지 말아라, 고 하는 말이 6학년 교실을 맡고 있는 담임 교사들에게 특히 회자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아마도 그만큼 긴장하면서 첫 한 달을 보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의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 편으로는, 6학년 담임 교사도 그 기간 동안에는 특별히 아이들에게 공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경쓰고 노력하라는 의미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 싶습니다.
남녀 어린이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학년 초에는, 가급적이면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같은 상황에서 공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해 보게 됩니다.
다툼과 갈등이 발생한 아이들에게 던지는 첫 마디.
"무슨 일인지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볼래?"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