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이야기] 8. 나는 너를 응원한다
6학년 때는 지극히 독립적인 어린이었습니다. 다른 6학년 어린이들은 주로 관계로 움직이지만, 이 어린이는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담임이 매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쨌든, 다른 어린이들과도 무난하게 잘 지냈고 나름대로 인기도 누렸습니다. 2학기 때 여자 부반장 후보로 아무도 출마하지 않은 탓에 후보를 추천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추천받았던 여섯 명의 후보 중에 1등이 되어 학급 부반장을 하기도 하였으니 아마 적보다는 친구가 많았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가진 성격을 익히 생각했던 터라, 졸업하면 아마도 담임 교사를 찾아오진 않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주관이 확고하니,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중학교 1학년 때 간혹 와서 얼굴을 보고 가곤 하였습니다. 아마도 6학년 때 하였던 보드게임이 워낙 좋아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용조용 혼자 와서는 담임과 보드게임 잠깐 하고는 조용조용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이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고, 관계망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꾸준하게 분기마다 한 번씩 오거나 먼저 연락하였습니다. 가진 역량도 많고 성과도 드러내던 아이인데, 혹시 사춘기인가 생각하며 의아함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꾸준하게 보던 와중에, 고3 초엔가 만나서 밥을 먹을 때였습니다. 정말 뜬금없이, ‘제가 선생님한테 말씀 안 드렸었나요? 저희 부모님이 저 중 2때 이혼하셨어요.’ 그 말을 들으며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그랬던 거였구나. 물론, 아이의 말과 행동과 생각과 태도를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흘러 지나가던 하루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나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MBTI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엠비티아이 해 보셨냐고, 무슨 유형이냐고 묻길래, 선생님은 INTP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반색을 하며, 자기도 INTP라며, 그런데 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다들 넌 그 성격일 줄 알았다, 그 성격은 이상한 성격이더라 같은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다니는 미술학원 선생님이, 넌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꼭 사이코패스 같다고, 선생님, 제가 정말 그래요? 라는 물음까지 이어졌습니다.
중고등학교를 지나치고 있는 와중이라면 그리 넓은 인간 관계망이라고는 할 수 없을텐데, 그나마 조금 더 밀접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무심결에 던지는 말들이 이 아이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며 상처입히고 흔들어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실은 그렇게 말하는 이였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또 졸업시킨 아이들을 만나며,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인데 아이들이 이렇게 크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저의 생각과 말도 바뀌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되새기며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정반대의 성향이 나오기도 한다는, 낮선 곳에서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하지만 편한 곳에서는 활발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도 한다는, 그런데 그런 상황과 맥락을 보지 못한 채 그저 현상만 주목한 사람들이 대척점에 서 있는 서로 다른 두 결과만 보고는 섣부르게 판단하기도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듣기 편한 말을 해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야, 너는 좋은 성격으로 많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야 같은. 그런데 그런 말을 도통 하지 못하다보니 조금 다른 방식의 답을 해 주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성의 없는, 요즘 표현으로는 영혼을 1도 담지 않은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오가다가, 자신의 작은 소망 이야기까지 이어졌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작은 아뜰리에 하나 마련해서, 밤이고 낮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내내 그림만 그리다가, 그림이 완성되면 방 바깥으로 나와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하곤 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다는.
단박에 꺼낸 이야기는, ‘야, 그러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다’. 몇 날 며칠씩 두문불출하면서 그림을 그려대면 시중은 누가 들 것이며,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극히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럴거면 차라리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면서, 휴가 내고 그림 그리고, 모은 돈 까먹어가면서 그렇게 살면 되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걱정이라는 그런 이야기. 어른들이 노파심에서 던지는, 뻔한 이야기를 저도 입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뱉고나니 문득,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의 이런 이야기에 모든 어른들이 다 나 같은 이야기만 하겠구나. 나도 뻔한 이야기를 해대고 있구나. 재빨리 말을 고쳐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너의 그런 생각을 응원해야겠다. 아마 너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모두가 너한테 뻔한 이야기를 할텐데, 사람이 돈으로만, 돈을 위해서만 사는 존재는 아니니까, 그리고 선생님도 돈을 좇아서 사는 사람은 아니니까, 나는 너의 그런 꿈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꼭 이루라고 말해 줘야겠다.
네, 맞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이 이 아이가 가진 가능성과 역량을 낮추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며칠씩 처박혀서 그림만 줄창 그려댄 후 자신의 그림을 들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그 그림이 이 아이의 그런 삶을 응원하고 격려할 만큼의 가치를 가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우리 어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저 조금 더 경험하고 겪었다는 알량한 이유로, 혹시 어찌보면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는 일도 모릅니다.
이건 영혼없는 추임새와는 다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꿈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꿈에 대해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저 또한 그런 꿈을 좇고 있습니다. 졸업한 아이들을 시간내어 만나고, 밥 먹고 차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그들이 조금 더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꿈. 세상물정과 통하지 않는, 하지만 누군가 한 사람 정도는 함께 꿀 수 있는 꿈 말입니다.
아이는 그래도 저와 함께 이야기 나눈 시간이 나쁘지 않았나 봅니다. 요즘 한참 영화를 즐겨본다던 그 친구는, 나중에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다같이 보러 가자는 그런 이야기로 만남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저는 아이의 부모님께 안부를 전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그 아이의 부모님이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