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학급운영] 2. 항상 면담
제가 처음 6학년 담임을 맡았던 것은, 발령난 지 1주일 만에 과학전담교사에서 담임교사로 보직이 바뀌었던 2012년이었습니다. 9월 1일자로 발령이 난 후, 처음에는 6학년 과학전담교사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주일만에, 기존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병가를 내시면서 그 반 담임교사가 되었고, 그 아이들을 끝까지 맡아 졸업까지 시켰습니다.
그 때 맡았던 반은, 참 힘들고 어려운 반이었습니다. 이전 담임 선생님께서는 정년을 3년 앞두고 계신 여자 선생님. 아이들을 참 사랑하시고 친할머니같은 마음으로 대하셨는데, 아이들이 참 드셌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도 자신의 마음을 서툴게 표현하신 부분도 있으시구요. 어쨌든. 제가 담임을 맡던 시기에는,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감정의 골도 깊었고, 아이들 사이의 감정의 골도 꽤나 깊었습니다.
담임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점심 면담이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선생님께서 병가에서 돌아오시면 들어도 되는 문제이니, 아이들의 힘들었던 이야기, 속상했던 이야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듯 싶습니다. 서른 두 명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세명의 아이들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울지는 않았지만, 깊은 한숨과 함께 자신의 속내를 조심스레 드러내는 아이들도 약간명. 아이들은 참 속상한 일이 많았습니다.
아이들 편에만 서지는 않았습니다.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하여야 할 이야기도 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아이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는 아니니, 그런 이야기도 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의 생각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주였던 듯 싶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교사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은, 어느 정도는 답을 정해두고 말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옳다고 여겨져야 하는 부분과 옳지 않다고 여겨져야 하는 부분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옳지 않다고 여겨져야 하는 부분에서는 또 옳지 않음을 고치고 교정하려는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담 이론의 첫 장은 늘상 '공감과 수용'인가 봅니다. 그게 더 어렵습니다. 무조건적인 공감과 수용은, 그저 기계적인 상담이 되기 십상이겠지요. 공감하고 수용하되 그것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계속 재어봐야 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운 듯 싶습니다.
그래도, 그 해, 그렇게 어려웠던 것 말고는, 그 이후로는 조금 수월하게, 쉽게, 지금까지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점심에 아이들과 일대일로 시간을 가지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6학년 담임 교사가, 점심 시간을 아이들과의 일대일 면담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 굉장히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6학년 담임 교사로서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점심 시간의 면담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전문적으로 무언가를 처방하는 상담에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과의 관계망을 개별적으로 형성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일대일로 관계망을 형성할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별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다가 초등학교 6학년 쯤 되면, 아이들에게는 그런 시간을 필요로하는 시기가 다가옵니다. 특히 여자 어린이들의 경우, 이제 서서히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가면서 자신이 만들어가고 있는 자신에 대해 표현하는 시기가 다가오는데, 표현하는 대상 중에 어른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는 극히 일부입니다. 주로 친구들에게 자신에 대해 드러내고, 그것이 무언가 일그러진 형태로 표출되었을 때에서야, 어른들은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늦었죠. 그래서 여자 청소년 중에서 학원 강사에게 밀접한 관계성을 느끼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원 강사는, 교사보다는 조금 덜 엄격할 수 있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조금 더 밀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항상 가지지 않나 싶습니다. 학습을 매개로 항상 무언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도 하구요. 부모에게는 표현해봤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학교 선생님은 항상 맞는 이야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과 거리감을 가지는, 그런 것들이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어른들과의 관계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초등학교 교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도, 교사가 그런 역할을 해주면 아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6년도에 담임했던 아이와 면담할 때의 일입니다. 여자 아이 하나랑 점심 시간에 면담을 하는데, 그저 편하게 이야기하다가 무심결에 물었습니다. '학교 끝나면 뭐하니?' '집에 있어요' '학원은 안 다니니?' '네. 학원 안 다니고 그냥 집에 있어요' '부모님은 몇 시쯤 들어오시는데?' '저녁 아홉시 반 쯤 들어오세요' '그럼 혼자 있는거야?' '동생하고 같이 집에 있어요' '그럼 집에서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냥 집에서 카톡하면서...' 그러다가 이 아이가 갑자기 펑펑 울었습니다. 꽤 길게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울음을 그치고 물었습니다. '왜 울었니... 선생님 당황스럽게... (쿨럭)'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났어요'
제 짐작에는, 아마 누구의 터치도 받지 않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막연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확인하거나 대안을 고민하거나 하지 못하면서 커진 그 어려운 감정이 그저 표현된 것이 아닌가라는 짐작을 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참혹한 일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질서 정연하게 지시에 따르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누가 우리 아이들이 비뚤어지고 제 멋대로라고 말해 왔느냐고 말입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질풍노도의 아이들에 대한 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제 곁에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고 만나고 관계맺고 있는 저희 반 아이들, 그리고 졸업하여 훌쩍 커버린 청소년들. 이 아이들이 그토록 질풍노도연한 까닭은, 그들이 가진 불안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른들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 아이들의 속내는 그렇게 반듯하고 착하고 순하고 멋진데, 혹시 어른인 내가 아이들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6년간 6학년 담임 교사를 하면서, 목표에 항상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아이들 한 명 당 다섯 번의 일대일 면담을 항상 계획하고 실천하려고 애썼습니다. 처음 면담 때는 주로 전년도의 일을 물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누구셨는지, 혹시 작년에 힘든 일은 무엇이 있었는지, 학원 같은 것은 뭘 다녀왔는지 등등등. 두 번째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흥미있는 것에 대하여 물으면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으면서, 진로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어떤 인격체로 성장하고 자라야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평가 이야기를 하면서 학습에 대한 어려움을 듣고, 학습에 대한 관심도를 물으면서 때로는 조언도 해 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함께 차를 마시면서 - 저는 커피, 아이들에게는 아이스티/핫초코 등 - 주제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구요. 다섯 번째 상담은 지난 1년간 담임 선생님과 지내면서 느꼈던 것들, 생각했던 것을 묻고자 했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거기까지 도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아이들, 은근히 담임 교사와의 점심 면담을 기다립니다. 워낙 무섭고 흉흉한 소문이 나 있는 교사인지라, 학년 초의 처음 면담 때에는 겁에 질려 오기도 하는데, 한 2~30분 같이 이야기하면서 선생님에 대한 소문 이야기, 막상 며칠 겪어본 선생님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아이들의 마음도 조금은 더 풀리고, 저도 조금 풀어주면서 같이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간혹가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매해 몇 명씩, 전년도에 겪었던 교우 관계의 어려움, 갈등을 조심스레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항상 안심시키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앞선 글처럼,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공정함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올해는 그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을 합니다. 혹여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놓치거나 미숙하게 대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때마다 선생님께 꼭 조언해달라고 하면서, 조금 실망이 들더라도 선생님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보일테니 너무 쉽게 선생님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선생님 믿어달라고 아이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저으기 안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정말 한 학년 동안, 공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내기도 하구요. 제가 지켜나가는 공정함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어필하면서 공감하도록 하는 것은 작은 테크닉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지내면서 이전 해에 힘들었던 아이에게는 끊임없이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지 확인하고 또 신경쓰면서 계속 응원하고 격려하는 일을 해 줍니다.
담임 교사와의 지속적인 일대일 관계는, 물론 담임 교사를 너무나도 힘들게 하는 일이겠지만, 그 힘든 것이 더 큰 힘든 일을 미연에 막아서는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체의 발달과 함께, 겪지 않은 삶에 대한 앎에 더 빨리 도달하는 아이들에게, 부모 아닌 어른과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눔은,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하게 실천하여 왔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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