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World] 3. 블러핑 보드게임
3. 블러핑 보드게임
보드게임은 자신의 현재 조건을 감추고 플레이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현재 조건에 대해 상대방을 기만하며 진행하는 보드게임의 종류를 흔히 블러핑 류의 보드게임이라고 말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블러핑 보드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두드려 볼까 싶습니다.
뱅!
뱅! 을 가장 먼저 소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들의 보드게임 월드가 뱅! 이전과 뱅! 이후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뱅! 을 소개하는 순간, 이전까지 교실에서 즐기던 모든 보드게임은 다 어디론가 휩쓸려 사라져버리고, 교실에는 오롯이 뱅! 만 남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교실에서 소개하면 항상 2학기가 되어서야 소개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다른 보드게임들을 해 보라고...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리고 어른 세계에서도 리플레이성이 아주 높지 않은데, 왜 아이들 세계에서는 이리도 사랑받을까 생각해보면, 우선 블러핑 요소인 '역할' 이야기를 해야할 듯 합니다.
뱅! 은 보안관 편과 무법자 편, 그리고 배신자가 서로를 물고 물리는 블러핑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스트 7인 플레이 기준으로) 우선 보안관 역할과 부관 역할, 무법자 역할과 배신자 역할, 게임은 총 네 가지의 역할로 나뉩니다. 보안관의 목표는 무법자와 배신자를 게임에서 모두 제거하는 것입니다. 부관의 목표는 보안관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무법자의 목표는 보안관을 게임에서 제거하는 것입니다. 배신자의 목표는 게임의 마지막에 홀로 살아남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역할을 숨긴 채 시작하게 됩니다.
보안관 역할을 하는 플레이어만 자신의 역할 카드를 공개합니다.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입으로 싸웁니다. 서로 자신이 부관이라며 보안관 옆에서 아첨을 떱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서서히 본색을 드러냅니다. 적절하게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잘 포장하다가 마수를 휘두릅니다. 이에 낚여버린 보안관이 잘못된 총질이라도 하여 부관이라도 죽인다고 치면 게임은 무법자들에게 극도로 위험해집니다. 드러내놓고 보안관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배신자는 이 때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합니다. 배신자가 게임 마지막에 홀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보안관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보안관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게임은 점점 협잡의 수렁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그래서 뱅! 은 블러핑을 기반으로 하여 협상 - 이라고 쓰고 협잡이라고 이해한다 - 의 요소가 강력하게 뒷받침해주는 보드게임입니다. 아이들은 협상에 능숙하지 않지만, 무언가 협상해나가는 느낌을 좋아하고 그런 활동을 즐거워합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은 잘 해서 좋아하기 보다는 그저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뱅! 과 관련해서는 2013년도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아이들과 가장 즐겁게 뱅! 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자 아이 하나가 정말 게임을 잘 했습니다. 이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플레이하지 않고, 즐기겠다는 목표로 플레이하니까, 다른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아직도 찾아오면 뱅! 부터 찾습니다. 그저 자신의 역할을 즐기면서 다른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블러핑을 기반으로 협상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뱅! 은 기본적으로 공격하고 공격받는 보드게임입니다. 게임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자신의 차례에 뱅! 카드 한 장을 사용하여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는 것입니다. 공격을 막을 수 없으면 생명력 하나를 잃고, 공격을 막으면 자신의 생명력을 지킬 수 있습니다.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무기 카드가 있고, 공격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있습니다.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아이템 카드도 있고, 상대방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들도 많습니다. 서로의 생명력을 공격하면서 이루어지는 뱅! 은 따라서 아이들이 좋아할 요소가 하나 더 있는 셈입니다.
학교에서 뱅! 을 하기 가장 어려운 이유는, 그런데 설명이 까다롭습니다. 기본적으로 역할이 있고, 캐릭터가 있습니다. 캐릭터는 미국 서부 시대의 유명한 총잡이를 모델로 하여 게임 속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도록 도와주는 카드입니다. 캐릭터와 역할을 중심으로, 자신의 차례에 카드를 받고, 카드를 쓰고 - 공격도 하고 생명력도 회복하고, 견제도 하고, 아이템도 장착하고 - 카드를 버리는 - 생명력 만큼만 카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 그런 간단해 보이는 보드게임이지만, 직접 게임을 해보지 않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실에서 돌아가지 못하는 듯 싶지만, 고학년 아이들에게 뱅! 은 굉장히 매력적인 보드게임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두부왕국
두부왕국은 여덟 장의 두툼한 타일로 이루어지는 보드게임입니다. 이 여덟 장의 타일은 두부왕국에서의 역할을 나타내는 타일들입니다. 우선 찹쌀떡 왕자가 있습니다. 찹쌀떡 왕자는 두부공주를 찾아 결혼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두부공주와 그녀를 돕는 두부요리사가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두부공주를 찹쌀떡 왕자와 결혼시키는 것. 이것을 방해하는 편이 두부여왕과 그녀의 충실한 부하인 두부대신, 두부 호위대장이 있습니다. 두부여왕과 그 일당(!)은 찹쌀떡 왕자가 두부공주와 결혼하는 것을 막고 자신의 세력과 결혼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두부공주나 두부여왕과는 전혀 상관없는, 푸딩 스파이와 두부 하녀가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찹쌀떡 왕자가 두부공주 세력이나 두부여왕 세력과 결혼하는 것을 둘 다 막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구조가 유사합니다. 뱅! 의 보안관-부관-무법자-배신자 구조가, 두부왕국에서는 찹쌀떡 왕자-두부공주(와 그녀의 편)-두부여왕(과 그 일당)-나머지 구조로 변형됩니다. 그런데 두부왕국의 게임 방식은 뱅! 과 사뭇 다를 뿐만 아니라,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기조차 합니다.
게임은 찹쌀떡 왕자가 나머지 플레이어들에게 아래 세 가지 질문 중 하나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찹쌀떡 왕자는,
1) 당신은 누구에요? (당신의 역할이 뭐에요)
2) 공주님은 어디에 있어요?
3) 다른 캐릭터를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에요? (저 사람의 역할은?)
위 셋 중 하나의 질문만을 한 번 씩 플레이어들에게 던집니다. 이 때, 다른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역할에 따라,
1) 두부공주의 편은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합니다.
2) 두부여왕 일당은 오직 거짓만을 이야기합니다.
3) 푸딩 스파이와 두부 하녀는 자기 마음대로 대답합니다.
결국 게임은 (베스트인 8인 플레이를 기준으로) 일곱 번의 질문과, 마지막으로 아무나 한 사람 골라 질문을 던지는 것까지 총 여덟 번의 질문만으로 끝이 납니다.
저희 반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였는지는 이미 두드린 바 있습니다.
물론 그 열풍이 굉장히 빠르게 사그라들기도 했지만... 굉장히 간단하게 아이들에게 소개해 줄 수 있는, 블러핑 보드게임이 주는 핵심만을 아주 빠르게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런 보드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렴하기도 하구요.
사보티어
이 보드게임은 2013년과 2014년 아이들에게만 소개해 주었던 보드게임입니다.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2013년 아이들에게는 사보티어가 공히 1학기 최고의 보드게임이었더랬는데, 2014년 아이들은 생각보다 심드렁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는 제 스스로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 부터는 소개해주기가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꺼내어놓지 못했더랬습니다. 그럼에도 사보티어에 대해 두드려보는 것은, 얼마 전에 만 원 아래 쪽의 가격으로 한글판이 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보티어도 기본적으로 역할을 가집니다. 선한 광부와 사보티어(태업) 광부가 있습니다. 역할 카드를 각자 받아 자기 혼자만 본 후, 함께 미션을 수행합니다. 미션은, 광산의 입구로부터 황금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세 군데 목표지점으로 부지런히 굴을 파서 - 굴 카드를 놓아가면서 - 황금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선한 광부의 목표는 세 군데의 후보지 중 금이 묻혀있는 한 군데를 찾아내기 위해서 굴을 파는 - 굴 카드를 연결해가는 - 것이며, 사보티어 광부는 어떻게든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보티어 광부는 자신의 차례에 이상한 굴 카드를 놓아 경로를 요상하게 만들어 괜시리 지탄을 받기도 하고, 선한 광부들에게 아이템 카드 폭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보티어 광부들은 그래서 아주 의뭉스럽게 꼭 실수인 것처럼, 혹은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처럼 다른 친구들을 끊임없이 기만하는 플레이를 해 갑니다.
굉장하 간단한데, 꽤 많은 아이들이 들러붙어서 - 최대 10명, 베스트는 6~7명 -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므로 교실에서의 쓰임새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보드게임 중 하나입니다.
이웃집 몬스터
이웃집 몬스터는 누군가 가지고 있을 몬스터 카드를 찾아내는 보드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보드게임이 다른 보드게임과 다른 블러핑 특징은, 몬스터 카드가 옮겨 다닌다는 것입니다. 게임에서 사용되는 카드들의 기능은 끊임없이 서로의 카드를 바꾸도록 만듭니다. 처음에 몬스터 카드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 몬스터 카드는 계속 누군가의 손으로 옮겨 갑니다.
물론 몬스터 카드를 손으로부터 떨쳐 낼 필요는 없습니다. 게임의 마지막까지 몬스터 카드를 들고 살아남으면 - 몬스터 플레이어로 생존하면 - 그 보상 - 승점 - 이 다른 보상에 비해 크기 때문에 아이들은 몬스터 카드를 들고 영리하게 플레이하기도 합니다.
역할은 몬스터와 몬스터의 친구, 그리고 나머지 선량한 마을 사람들로 나뉘어지고 몬스터는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자신을 몬스터의 편이 아닌 선량한 마을 사람들의 편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는 보드게임이기도 합니다.
삼국지 비밀결사
삼국지 비밀결사는 중국 소설인 삼국지연의를 배경으로 만들어 진 보드게임입니다. 꽤 많은 인원이 플레이 할 수 있어, 베스트 인원이 약 8~10명 정도 되는 보드게임입니다.
세력은 총 네 편으로 나뉘어집니다. 황실의 위엄을 떨어뜨리고 자기 맘대로 전횡을 휘두르는 동탁을 처단하기 위한 비밀결사 편, 허수아비에 불과한 황제를 자신의 손으로 끌어내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모략을 펼치는 동탁, 동탁을 호위하며 비밀결사로부터 동탁을 지키는 호위무사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정치 때문에 살기 힘들어 봉기하려고 하는 평범한 농민 편. 이 보드게임은 서로 자신의 역할만을 가지고
1) 남의 카드를 훔쳐 보거나
2) 역할 카드를 바꾸거나
3) 자신의 역할 카드를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미션을 수행하거나
4) 공개되었던 카드를 다시 숨기고 암암리에 활동하거나
하는 행동을 해 나갑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세력이 수행해야 할 미션에 성공하면 게임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간 자잘한 룰이 있긴 하지만, 함께 모여서 왁자지껄 즐겁게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기도 합니다.
레지스탕스
사실 이 보드게임은 아이들에게 조금 어려워서... 방과후교실로 수학심화반을 운영할 때 그 아이들과 해 본 것 말고는 교실에서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올해는 한 번 시도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플레이어들은 두 세력을 나뉩니다. 레지스탕스 세력과 스파이 세력. 두 세력 다 겉보기에는 독재 정부의 폭압과 압제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부대원인 것 같지만, 실제로 정부의 스파이가 숨어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레지스탕스는 정부에 대항하는 미션을 수행합니다.
리더 플레이어가 미션을 함께 수행할 플레이어를 지정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미션 참여 카드를 배부합니다. 이제 모든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리더에게 지명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이 미션을 수행하도록 할지 투표를 진행합니다. 과반수 이상이 참석하면 리더 플레이어와 지명된 플레이어들은 미션을 수행합니다. 실제로 무언가 미션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고, 미션 수행 플레이어들은 미션 성공 또는 미션 실패 카드를 몰래 낼 뿐입니다. 그런데 진짜 레지스탕스 플레이어는 성공 카드만 낼 수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 스며든 스파이 플레이어만 성공 또는 실패 카드를 낼 수 있습니다. 만약 미션 실패 카드가 한 장이라도 스며들면 이번 미션은 실패! 결국 이번 미션에 참여한 누군가는 스파이라는 이야기이고, 레지스탕스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미션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누가 스파이인지 짐작하고, 스파이를 미션으로부터 배제해나가도록 플레이해야 합니다.
굉장히 심리적인 요소가 강한 블러핑 보드게임이라서, 아이들은 굉장히 어려워하는 편이지만, 2014년도의 수학심화반 아이들은 아주 즐겁게 이 보드게임을 플레이 해 냈습니다. 심화라기보다는, 이 아이들과 매일 수업은 제대로 하지 않고 아마 보드게임만 주구장창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총 다섯 번의 미션을 수행하게 되고, 그 중 세 번을 먼저 성공하면 진짜 레지스탕스 들의 승리, 만약 세 번을 먼저 실패하면 스파이들의 승리로 게임은 막을 내립니다.
레지스탕스 보드게임은 실제로 보드게이머 사이에서는 굉장히 화제가 되었던 보드게임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역할을 가미한 스핀오프들이 나와서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던 보드게임이라서,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적절한 보드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타불라의 늑대
대학생의 엠티에서 사랑받던 놀이인 마피아 게임은 굉장히 단순한 룰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 편과 마피아 편. 서로 변론하고 모함하고, 협잡과 협박을 일삼으며 밤이 오면 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그런 게임. 타불라의 늑대가 바로 그런 마피아 게임에 몇 가지 역할을 더 첨가하여 조금 더 다이나믹한 마피아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늑대인간이 인간을 해치는 방식이지만, 예컨대 천리안 캐릭터가 있어서, 늑대인간이 활동하기 전에 누가 늑대인간인지 진행자에게 물어보는 등, 다양한 요소를 첨가하여 자칫 지루한 말놀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마피아 게임에 흐름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위에 소개했던 레지스탕스 보드게임의 스핀오프 중에도 레지스탕스 아발론 보드게임도 마피아 게임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항상 마피아 게임은 무언가 정체를 추리해나가는 요소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사랑받는 보드게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1학기 중반을 지나가면서 저희 반 여자 아이들끼리 마피아 게임을 한참 했었습니다. 두부왕국이 뜨겁게 불타오르다가 금새 사그라진 직후의 열풍이었는데, 아무래도 두부왕국이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대로 된 사진 하나 없는 보드게임 소개글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직접 모시고 한 게임 같이 해 보는 것인데, 그것이 쉽지 않네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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