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2022] 교실살이 System 만들기 - 03 교실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
20220406
지난 시간에는 교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우리 교실의 1년 살이 시스템을 시작하며,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두고 두 시간에 걸쳐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이는, 우리 학급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사항이 발생할 때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수립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생각을 '주고 받은' 결과, 결정 사항이 생길 경우 여러 번의 토론을 거친 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수결로 결정한다는 잠정적인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를 이어,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한 시간 동안 어린이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우리 교실의 결정 사항의 양상을 찾아 보았습니다.
이 주제의 배경이 되는 교과용 도서의 내용은 민주적 의사결정원리에 대해 알아보는 사례 - 지역에 쓰레기매립장을 만드는 상황 및 점심시간 운동장 사용과 관련한 갈등을 해결하는 상황 - 및 삼권분립 적용 사례 -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유통산업금지법이 만들어지는 과정 - 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결정 상황을 예시하고 있다고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실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결정이 과연 학생 주도적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부분 교실에서 무언가 결정되는 상황의 발의자는 교사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에 의해 발의되는 다양한 상황은, 그러나 때로는 학생들을 정해진 결론으로 향하도록 하는 암묵적 강제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초등학교 교실에서 (잠정적) 정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정답이 일방향으로 쏟아부어지는 것을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교사가 '이건 옳으니까'라며 발의하는 문제를 학생들이 수용하는 모양새보다, 다양한 생각이 부딪히지만 교사의 사려깊은 성찰과 사유가 어린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더 교육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교실에서의 발의가 교사에 의해 독점되는 상황은 교실 민주주의를 이루어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희 교실에서 담임 교사에 의해 주어진 '결정'은,
- 실내에서 뛰지 않기
- 욕하지 않기
- 싸우지 않기
- 짝은 남여가 앉게
- 급식은 번호 순
정도가 있습니다.
담임 교사는, 위 교실 규칙이 '잠정적'인 것임을 차후에 말할 생각입니다. 어린이들의 발의와 토의 및 협의 과정을 거쳐 합의 혹은 다수결로 결정될 경우, 얼마든지 담임 교사의 결정은 바뀔 수 있음을, 시스템이 확립된 이후에 안내할 생각입니다.
또한, 교실의 규칙을 정하는 시간을 따로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 때 이야기하며 교사가 어린이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여 왔습니다. 전체에게 부탁한 것은,
- 배울 때 일부러 배움과 관련 없는 내용을 묻진 않았으면 좋겠다.
- 내 이야기 쓰기장과 독후감상기록장 등 제출물이 제 때 제출되면 좋겠다.
-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물 마시러 나가거나 화장실 가지만, 가급적이면 배움의 집중력을 위해서 한 사람씩 갔으면 좋겠고, 수업 시간을 2~3분 남겨두고 혹은 수업 시작하자마자 가진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가 기억납니다. 이러한 것도 모두 수업을 위한 담임 교사의 부탁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잘 되지 않으면 담임 교사가 슬퍼할 것이라고 말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어쨌든.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실살이를 위해 어린이들 스스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지난 시간의 잠정적 합의를 말한 후, 아래의 질문을 제시하였습니다.
- 교실살이를 위해 여러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체육시간에 뭐할까? 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첫 이야기부터 교사의 반론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사는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맞추어 1년의 배움 커리큘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 수준에서 교육과정이 편제됩니다.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에 근거헤 학생들을 일정 정도의 성취수준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을 배움의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교육과정 설계·운영의 전문가인 교사는, 이를 바탕으로 어린이들의 배움을 이룰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고 설계하여 운영하고 환류합니다. 이 때 교사가 활용하는 자료는 교과서입니다. 교과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교육과정 성취기준 상의 일정 성취수준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하여 교과 전문가들이 만든 도구입니다. 이는, 교실의 교사가 교과 전문가이면서 교실살이 전문가라면, 굳이 교과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도구를 토대로 교실의 배움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다만,
-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이에 도달할 수 있는 도구여야 하며,
- 운영 이후 어린이들의 배움 정도를 평가한 것과 함께 운영 과정 전반에 대한 평가 모두 일정 수준 정도를 만족하는 것이어야 한다,
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교사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 성취기준을 정하고 있고 이러한 커리큘럼을 정하는 것은 교육 전문가인 교사인 바, 어린이들이 하고 싶은 활동에 대해 교사에게 '제안'할 수 있을 것임을 안내하였습니다. 물론, 어린이들의 제안은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을 근거로 한 것이어야 함을 또한 안내하였습니다.
어린이 한 명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할 활동을 제안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교사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교과를 벗어난 학생의 배움을 위한 것이므로 교사 자율성이 존재하며, 이 말은 어린이들에게도 더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교사는 어린이들의 교실살이에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놀이 수단으로 스물 두 차시의 보드게임 시간을 커리큘럼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가 안내하였습니다.
어린이 한 명이 자리배치 규칙을 정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다른 어린이 한 명이 급식 메뉴를 정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급식 메뉴 또한 고도의 전문적 영역임을 안내하였습니다. 급식 재료 단가 및 적정 영양소 구성, 제철 재료에 대한 고려 및 국산 농산물의 이용 등, 굉장히 고려할 부분이 많으므로, 급식 메뉴를 정하는 것보다는 제안하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건네었습니다.
어린이 한 명이 보드게임을 가르쳐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교사는 보드게임 가르쳐주는 것은 어린이들의 즐거운 교실살이 놀이를 위한 교사의 의무이므로 이건 결정 사항이 되기 어렵지 않겠냐는 말을 건네었습니다. 언제든지 가르쳐달라고 하면 가르쳐주겠다는 말과 함께.
어린이 한 명이 학급의 대표를 뽑을 때는 우리가 스스로 결정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다른 어린이 한 명이 등·하교 시간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교사는 등·하교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교실살이 차원에서 결정하기보다는 조금 더 넓은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라는 말을 건네었습니다.
어린이 한 명이 당번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당번, 이라는 말이 참 할 말이 많았는데, 다음 발표한 어린이가 너무 중요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모든 화제를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린이 한 명이 규칙을 우리가 정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전에 나온 이야기들이 교실살이 운영 영역이라면, 규칙에 대한 이야기는 교실살이 판단의 영역이 됩니다. 물론, 규칙도 운영의 범주를 포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실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규칙에 대해서는 규칙 수준에서 얼마든지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교사는 어린이들에게 교실살이의 규칙은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바 - 사회적 통념 - 및 이전에 우리가 함께 정한 '교실살이의 대원칙' 아래에서 어린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네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우리가 도대체 언제 교실살이의 대원칙을 정했냐고 물었습니다.
교사는 우리 교실 위를 둘러싸고 있는, 주제통합수업 '나, 너, 우리' 시간에 여러분들이 모둠별로 이야기나누며 합의한 캐치프레이즈가 교실살이의 대원칙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어 교사는, 우리 국가에도 우리 교실처럼 이러한 대원칙이 있으며 5학년 때 이를 배운 바 있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은 '헌법'이라고 답하였고, 교사는 헌법에 담긴 민주주의의 이상 - 인간 존엄·자유·평등 - 을 확인하였고 모둠에서 제안한 교실의 캐치프레이즈가 교실살이의 마음가짐을 담은 대원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하였습니다.
헌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법률은 행정부의 영역과 사법부의 영역으로 나누어집니다. 행정부는 법률에 기속되어 정부의 여러 일을 수행하며, 사법부는 법률을 근거로 형벌을 확정하고 분쟁을 조정하며 정부의 행위를 판결합니다.
우리 교실에서 어린이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 교실살이의 운영 영역
- 교실살이의 판단 영역
이며, 모두 담임 교사가 주도적으로 하던 일로써 어린이들이 이를 넘겨 받는 것을 목표로 시스템을 구축해가고자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누가·언제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볼 계획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