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이야기] 1.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
Kim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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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22:51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
제 졸업생 중에 외고에 들어간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잊을만하면 메시지를 보내어, 동아리 들어간 이야기, 오해가 생겨서 당황했던 이야기, 시험 망한 이야기 등등등을 들려 주었습니다. 마침 저도 요즘 고등학생들의 생활이 궁금했던 터라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면서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선생님, 한 번 뵈어요' 하길래 얼마 전에 같이 만났습니다.
어머니께 허락을 받고는, 대신에 학교에다가는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가요'라고 말해봐야 이해를 못할테니 학원에 간다고 하고는, 교복 차림으로 교문을 나서더군요. 아마 어머니께서는 스승의날도 있으니 선생님 뵙고 와도 좋다고 허락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나온 아이를 데리고 차도 사 주고, 밥도 사 주고, 공원에서 산책도 하다가 야간자율학습 종료 시간에 맞추어 들여보냈습니다.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한 듯 싶습니다. 아이 부모님 이야기, 제주도에서 지내시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신 이모님 이야기, 동생 이야기, 그리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매표 이야기, 학교 동아리 이야기에 같은 클라스 아이들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화수분처럼 쉴새없이 흘러나왔고, 아이와 깔깔거리면서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자기 클라스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대단한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 그런지 다들 너무 잘하고 자신은 따라가기 좀 벅찬 부분이 있다는 부분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시점에, 아이를 만나게 되면 꼭 해 주어야겠다는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이를 만나기 얼마 전 읽었던 책,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마침 이 아이 생각도 났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라는 책은, 재능의 원천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책입니다.
우선, 재능은 경력으로부터 온다는 세간의 통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책은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하면 더 잘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경험이 재능이다, 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저자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과업들에 있어서 저경력의 직원과 고경력의 직원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규모가 작은 대기업에서 3년 넘게 근무했기 때문에 저자들의 이런 의문에 공감을 표하면서 글을 읽었습니다. 직장생활 3년차에 접어들면서 저 또한 제 윗분들의 업무에 대해서 똑같은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업무가 다른 것은 업무에 대한 책임의 위치가 다른 것일 뿐, 실제로 업무의 난이도는 3년차 신입사원인 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더랬죠. 여하튼, 저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재능은 경력과는 무관하다는 소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능은 수치로 결정되는 것인가. 우리의 능력치를 드러내는 많은 수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IQ가 있겠지요. 그러나 저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IQ라는 수치가 얼마나 해묵은 수치인지 설명하고 있고, 요즘은 EQ라든지 다중지능이론 등, 수치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 역량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재능을 수치로 결정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능은 결국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것인가. 많은 이들의 생각(과 믿음)대로, 결국 유전자가 재능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 저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합니다. 통념은 그렇지만,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연구 결과는 없지 않는가라는 설명이 뒤를 따릅니다. 재능이 부모로부터 온다는 생각은 꽤나 그럴듯 하고, 그 근거도 풍부한 듯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 반대의 근거도 만만찮게 많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인 듯 하며,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도 재능은 유전이다를 입증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재능은 유전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를 입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왜 유전적 요인으로 재능을 설명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 방법이 그나마 무난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답이며,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별 의문이나 거부감없이 편리하게 끌고와서 제시할 수 있는 근거로 쓰이는 셈이죠. 하지만 저자들은, 이러한 설명은 편리하기만 할 뿐, 물증없는 심증일 뿐이라는 의미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재능의 원천이 된다고 믿어지는 여러 통념들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 후에, 저자들은 이제 묻습니다.
재능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리고 저자들은 이 답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 사람의 예를 듭니다.
제가 미식축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생소한 인물이긴 하지만, 미식축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리시버로 평가받는 제리라는 사람이 바로 그 예입니다.
제리는 프로구단에 지명될 때 그렇게 높은 순위로 지명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를 갈 때도 그리 빛나는 선수가 아니었는데, 대학교에서 프로구단으로 향할 때도 그리 크게 빛나는 존재는 아니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리시버는 이후 20년 동안 미국 미식축구 프로리그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로 활약했다고 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가 보니, 제리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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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통해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자신의 강점을 더 단단하게 만듦으로써 완벽함에 가까운 선수로 꾸준한 활약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준 까닭은,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이 아이가,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을 강력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단 이 아이 뿐만 아닙니다. 자신의 성취에 대한 의심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재능을 의심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어릴 적부터 선행학습을 통해 자기자신보다 더 많이 더 오랫동안 과정을 해 온 아이들을 주목하여 봅니다. 즉, 경력이 재능의 원천이라고 쉽게 단정지어버리고는, 난 쟤보다 더 잘 할 수 없을거야, 라고 지레 결정지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자기 자신보다 더 높은 수치를 보이는 아이들, 그리고 정말 맨날맨날 노는 것 같고 게으르게 하루를 보내는 것 같은데 유전적으로 타고난 무언가가 있는지 평가만 보면 월등함을 드러내는 아이들을 주목하게 됩니다.
결국, 최상위권을 향해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 중에,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으며, 그 의심은 바로 자기보다 경력이 더 많은 아이들, 자기보다 월등한 수치를 드러내는 아이들, 자기가 봤을 때에도 뭔가 타고난 것 같은 아이들에 의해 심화됩니다.
제가 제 졸업생 아이에게 했던 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너가 볼 때 뛰어나보이는 아이들의 재능은, 너가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통한 것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극복할 수 없는 경력 차이와 따라잡기 벅차보이는 점수라는 수치의 차이, 그리고 타고난 무언가의 아우라로 인한 근본적인 타고난 차이 같은 것은, 실제로는 실체없는 착각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런 실체없는 착각으로 내 자신의 의지와 노력과 열정을 힘없이 소멸시켜버리지 말고, 내 자신에게 잘 맞추어진, 내 자신을 성장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는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이 가능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기가 부여된 사람. 실제로 위의 이야기는 동기 부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참 의미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은 어떻게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뜬구름 잡듯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은, 계획으로도 불가능하고 의도를 가지고도 실현할 수 없으며 훈련을 통해서 쌓아나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동기는 정말 별안간, 불현듯 벼락같이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 졸업생 아이는, 동기 부여가 된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가지고 외고에 진학을 했겠지요. 동기 부여가 된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의 재능이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재능을 계발하는 것이 바로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메타인지적 인식이라고 생각했으며, 제 조언은 그 방향으로 아이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조언이었던 듯 싶습니다. 제 길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표정이 무언가 생동감있는 얼굴로 바뀌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헤어지는 아이에게, 제가 읽은 이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때는 정말 얼굴에 생기가 돌더군요. 역시 선물은 좋은 것인가봅니다.
위에서 두드리지 않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신중하게 계획된 훈련을 위해서, 적절한 코칭과 멘토의 조언이 필요하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적절한 코칭과 멘토의 조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저는 사는 것에 너무 바쁘셔서 저희 삼남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살아가신 부모님 밑에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무언가를 묻거나 조언을 구할 어른을 주변에 두지 못한 채 좌충우돌하면서 인생의 많은 시간을 그저 흘려 보냈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런 어려움과 고통들이 적절하게 자리잡아 안정된 삶으로 연결되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결과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일 뿐입니다. 한 군데의 갈림길에서 무언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제 인생은 그 때 그 다른 선택을 회한하면서 걸어보지 못한 다른 갈림길을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코치의 적절한 코칭과 멘토의 적절한 조언인데, 과연 우리들 중에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그저 발을 동동거리고 있지만 겉으로는 쎈 척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코칭과 조언을 적절하게 해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저는 우리 아이들이 강해보이고 당당해 보이고 커 보이지만, 실제로는 닥친 갈림길에서 어쩔줄 몰라하면서 잘못된 어른들의 지시에도 너무나도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는, 한없이 약하고 보호받아야하는 존재임을 절감하였습니다. 그저 우리는 중2병이라는 말로 그 아이들을 묶어서 쉽게 말해버리지만, 세월호의 참사는 우리 아이들을 누가 지켜주어야하는가를 숙고해보게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어찌보면 아이들이 훌쩍 커버리는 성장의 초입에서, 부모보다 더 긴 시간을 1년간 지켜보는 어른으로 지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졸업을 시킨 후에는, 이제는 더 이상의 코칭은 의미가 없겠지만, 멘토로서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으리라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으며, 이를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항상 말해줍니다. 스승의 날 같은 때, 떼지어서 오는 아이들은 그냥 선생님 얼굴만 슬쩍 보고 갈 뿐이다. 그렇게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해 줄 것이 없다. 그저 너희들 노는 핑계거리가 될 수 있을 뿐. 그러나, 잊지 말 것. 너희에게 무언가 인생의 중요한 국면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의 조언이 필요할 때, 너희의 성장의 초입을 지켜 본 6학년 담임 선생님도, 너희의 성장의 모습을 통해 너희에게 무언가 조언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찾아갈 어른이 없을 때, 선생님이라도 찾아오면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올 때는 혼자 와라. 그게 부끄럽고 망설여지면 둘이서 와라. 그래야 선생님이 너희와 함께 너희의 고민을 부여잡고 이야기나눌 수 있다.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해결을 해 줄 수는 없다. 해결은 너희 몫이니까. 다만 선생님이 해결의 과정에서 너희의 해결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다. 너희의 성장을 1년 동안 지켜봐왔으니. 선생님이 그렇게 A/S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가끔씩 찾는 아이들이 있어, 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통해 확실하게 결정한 것이 있습니다. 졸업생들에게 디테일한 코칭을 해 줄 수는 없겠다. 다만, 멘토로서 적절한 원 포인트 레슨, 조언은 해 줄 수 있겠구나, 라는 부분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시간 나는대로 두드려볼까 싶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