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World] 13. 보드게임의 비대면 방식 활용
13. 보드게임의 비대면 방식 활용
한 번도 이런 제목의 글을 두드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라서 이런 주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교실에서 아이들끼리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보드게임 이야기입니다.
스트림스 Streams
스트림스는 진행자가 있는 보드게임입니다.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전략을 서로 겨루는 보드게임이 아닌, 누군가의 진행을 따라 흘러가는 보드게임입니다.
진행자가 있는 놀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마피아 게임’이며, 이를 보드게임으로 이식한 ‘어둠 속의 늑대인간’과 ‘타불라의 늑대’ 같은 류도 있습니다.
스트림스는 이렇게 정보를 감추는 블러핑 보드게임 류는 아니고, 정해진 범주 내의 수 중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수 목록을 오름차순으로 늘어놓는 보드게임입니다.
게임 구성물은 아래와 같이 주머니에 든 총 40개의 수 타일, 그리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워크시트와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타일 거치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판에는 연필도 몇 자루 들어있었는데, 신판에는 없네요.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래에 보이는 워크시트를 한 장 씩 받고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진행자는 주머니에 아래의 수 타일을 넣고 하나씩 무작위로 뽑습니다. 뽑을 때마다 큰 소리로 뽑은 수를 부르면, 보드게임에 참여하는플레이어는 워크시트의 수 적는 칸 중 하나를 골라 진행자가 고른 수를 적으면 됩니다. 진행자는 그렇게 스무 번의 수를 부르고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는 수가 불릴 때마다 그 수를 워크시트의 적절한 곳에 적습니다. 그렇게 적은 총 20개의 수가 최대한 오름차순으로 늘어설 수 있다면, 가장 높은 점수에 가까운 점수를 얻게 되겠지요.
수 타일은 총 40개로, 1~9까지의 타일 1개씩(총 9개), 10~20까지의 타일 2개씩(총 22개), 21~30까지의 타일 1개씩(총 10개), 그리고 아무 곳에나 써도 오름차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별(조커) 타일 1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평균적으로, 10~20의 수가 불릴 때에는 워크시트의 가운데 쯤에 적으면 되겠고, 1 또는 30에 가까운 수가 불릴 때는 워크시트의 양 끝으로 놓으면서 어떻게든 오름차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타일을 놓는 것이 높은 점수를 얻는 관건이 됩니다.
점수 계산은 아래와 같이 게임 설명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보드게임 제작사는 ‘200명도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워크시트와 펜만 가진 상태에서 진행자가 부르는 수만 들을 수 있다면, 인원 제한없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 사람이 참여할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보드게임이라,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실상은 진행자 한 사람과 참여자 한 사람 사이의 일대일 보드게임에 가깝습니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지만, 게임 종료 후 서로 얻은 점수를 겨룰 때에나 상대방의 존재가 의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리플레이성은 조금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재미가 덜한거죠.
게임 진행도 그렇습니다. 수를 다루는 능력이 중요해 보이지만, 수가 우연 요소에 의해 순차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전략으로 접근해도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교실에서 이 보드게임이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면, 스트림스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약간 더 복잡하지만, 훨씬 더 즐거운 보드게임은,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 같이 비대면 상황이 아니라면, 이벤트 용도로 한 번 해 볼만한 정도의 보드게임이다, 그렇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리코체 로봇/총알탄 로봇 Richochet Robot
리코체로봇은, 제 블로그에서도 굉장히 많이 소개했던 보드게임입니다.
게임판 위에 다섯 로봇이 있습니다. 목표 토큰이 제시되면, 목표 토큰과 같은 색깔의 로봇이 격자 무늬의 모서리 방향으로만 이동하며 장애물 - 벽 또는 다른 로봇- 을 만날 때에만 방향을 바꾸면서 목표 토큰이 표시하는 무늬의 공간에 가장 적은 횟수를 움직여서 들어가게 하는 보드게임입니다.
이 횟수에는 목표 토큰과 같은 색상의 로봇 뿐만 아니라, 다른 색상의 로봇을 움직이는 것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즉, 목표 로봇만 줄창 움직이면서 목표 무늬를 찾아갈 수도 있지만, 목표 로봇과는 다른 색깔의 로봇을 적절히 장애물 위치에 두면서 경로를 줄이는 것이 이 게임의 재미가 됩니다.
평소 상황이라면, 아래처럼 아이들이 게임판을 빙 둘러서서 실시간 게임을 즐기게 됩니다. 리코체 로봇이 주는 특이점은, 온 교실에 고요 속에 빠지면서 아이들이 모두 저렇게 머리를 맞대고 게임판을 뚫어져라 바라본다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비대면 상황에서는 이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게임판을 바로 위에서 찍어, 화면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안내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화면의 모습을 보고 눈으로만 로봇을 움직입니다. 그런 다음 ‘맞추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원래처럼, 모래시계를 내릴 수도 있죠.
윗 상황에서, 제가 찾은 가장 빠른 경로는, 4회입니다. :)
그러나, 아무래도 리코체 로봇을 이렇게 진행하면, 게임판과 아이들 사이의 거리감이 크기 때문에 몰입감이 떨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즐길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에서 위안을 삼아야 겠습니다.
셋 Set
셋 보드게임의 카드 한 장에는 네 가지 요소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1번에 있는 카드는, 꾸불거리는 모양, 초록색, 개수 세 개, 도형 속 꽉 차게 칠한 것, 총 네 가지의 요소가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2번 카드는, 타원 모양, 초록색, 개수 세 개, 도형 속 빗금 무늬의 특징을, 3번카드는 마름모 모양, 파랑색, 개수 두 개, 도형 속 무늬가 없는 특징으로 이루어져 있구요.
즉, 한 장의 카드는,
모양: 꾸불거리는 모양, 타원 모양, 마름모 모양
색깔: 초록색, 파랑색, 빨강색
개수: 한 개, 두 개, 세 개
무늬: 꽉 차게 칠한 것, 빗금 무늬, 무늬 없음
네 가지 요소에서 한 가지 특징 씩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카드 12장을 깔아두고, 플레이어는, 세 장의 ‘셋’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 셋 set 이 되는가. 세 장의 카드가 가지고 있는 요소가 ‘각각 다르거나’, ‘모두 같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위 세 장은, 셋이 아닙니다.
모양이 모두 다르고(꾸불거리는 모양/타원 모양/마름모 모양) 무늬가 모두 다르지만(꽉 차게 칠한 것, 빗금 무늬, 무늬 없음), 색깔이 모두 다르지 않고(초록색/초록색/파랑색), 개수가 모두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세 개/세 개/두 개).
아래 장면을 봅시다.
위 12장 중에서, 8, 9, 10번이 셋 Set 입니다.
각각 모양이 모두 같고, 색깔도 모두 같으며, 개수는 모두 다르고(1개/3개/2개), 도형 속 무늬는 모두 빗금 무늬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보드게임은 저렇게 번호 붙여두지 않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일어서게 되지만 - 그 사이에 열 두 장의 카드를 깔아놓은 후, 실시간으로 셋을 이루는 카드 세 장을 손가락으로 짚어서 셋임이 확인되었으면 카드를 가지고 가고, 아니면 이전에 획득했던 카드 중 한 장을 내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위 방식은, [더 지니어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결-합’에서 사용되었던 방식입니다. 학생들은 실시간으로 셋을 이루는 카드 세 장을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위 카드 목록 중에서 셋을 이루는 카드의 번호를, 예컨대 ‘8-9-10’ 과 같이 찾아 제출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원래 게임은 워낙 순식간에 카드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 빨리 찾는 아이들과 신중하게 찾는 아이들 사이의 갭이 있습니다 - 게임의 양상이 무리 중 몇몇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이런 방식으로 하면 모두가 공정한 시간을 두고 카드를 찾아갈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다만 카드를 획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카드의 목록이바뀌는 원래 방식과는 달리, 역동성은 조금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수업 시간이 바뀌는 시점 - 쉬는 시간 - 에, 짧게 해 보기에 적절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큐윅스 Quixx!
이 보드게임은 주사위 여섯 개가 만드는 숫자로 자신의 워크시트를 효과적으로 지워 점수를 얻어가는 보드게임입니다.
학생들은 아래와 같은 워크시트 한 장 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 씩 돌아가면서, 주사위 여섯 개를 굴리게 됩니다. 으차!
처음에, 모든 플레이어는 하양 주사위 두 개가 이루는 수의 합 - 위에서는 12 - 에 해당하는 숫자 하나를 자신의 워크시트에서 지우게 됩니다.
이 때 수를 지우는 규칙이 있습니다.
1) 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워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랑색 7을 지웠다면, 노랑색 7 왼쪽의 수는 더 이상 지울 수 없습니다.
2) 제일 오른쪽 수 - 빨강과 노랑은 12, 초록과 파랑은 2 - 를 지우려면, 같은 색상 트랙의 수 5개 이상을 지운 상태여야 합니다.
즉, 플레이어들은 현재 텅 빈 상황에서, 빨강 혹은 노랑 12는 지울 수 없습니다. 아마, 파랑 혹은 초록 12를 지우는 선택을 하게 되겠죠?
물론, 애매한 눈금이 나오면 지우지 않아도 됩니다. 항상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양 주사위 두 개의 눈 합에 해당하는 수를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워크시트에 반영 - 지우거나 지우지 않는 방식으로 - 하였다면, 이번에 주사위를 굴린 플레이어만, 한 번 더 지울 수 있습니다. 이 때에는, 하양 주사위 두 개 중 하나를 고르고 색깔 주사위 중 하나를 골라 두 눈의 수를 합한 후, 고른 색깔 트랙의 수를 지웁니다. 위 상황에서 주사위 굴린 플레이어라면, 하양 주사위 두 개의 수인 12로 파랑 12를 지우고, 파랑 주사위 4와 하양 주사위 6으로 파랑 10을 지우면 되겠죠.
게임을 조금 더 의미있게 풀어가려면, 네 색상 트랙을 적정하게 지우면서도, 하나의 색상을 조금 더 꼼꼼하게 지우는 방식의 플레이가 필요합니다. 아래는 게임이 끝난 후, 한 어린이의 워크시트입니다.
점수는, 각 트랙에서 지운 수의 개수를 아래 점수 트랙에서 찾아 적는 것으로 부여합니다. 위 어린이는, 빨강 트랙에서 세 개를 지웠으므로, 아래 3x의 6점을 획득합니다. 노랑 트랙은 총 8개를 지웠으므로, 8x의 36점을 얻습니다. 위 어린이는 제가 무심결에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자신의 점수를 잘못 적었답니다. (쿨럭)
하나의 트랙을 많이 지울수록 점수가 올라가므로, 나오는 주사위의 눈을 고려하여 하나의 트랙을 꼼꼼하게 지워나가는 방식을 수행할 수 있다면 점수가 더 올라갈 수 있겠죠.
게임은 계속 돌아가면서 주사위를 굴리고 수를 지워나가는데, 그러다가 누군가 워크시트 색깔 트랙의 가장 오른쪽 수를 지운다면, 잠금 선언을 하게 됩니다. 예컨대, 위 예시에서처럼, 초록색 12를 누군가 지우게 된다면 잠금 선언을 하게 되고, 모든 플레이어는 이제 더 이상 노랑 트랙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위 어린이는 누군가 초록색 12를 잠그는 바람에, 함께 잠기게 되었고, 그래서 초록 7 오른쪽으로는 더 이상 지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록색이 잠기면서, 초록색 주사위를 빼고, 다섯 개의 주사위로만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게임은, 두 번째 트랙이 잠기면서 종료합니다. 두 번째 트랙을 잠그고, 점수 계산을 해서 승부를 가립니다.
이 게임은 벌점 요소가 있습니다. 주사위를 굴린 플레이어는, 두 번을 지울 수 있는데 - 하양 주사위 두 개가 이루는 수, 하양 주사위 한 개와 색깔 주사위 한 개의 눈금을 더한 수 - 두 번 다 지울 수 없다면, 트랙 오른쪽 아래 -5 네 칸 중 한 칸을 채웁니다. 보너스를 받은 만큼, 위험도도 늘어나는 셈이죠. 주사위를 굴린 플레이어는 두 번 중 반드시 한 번은 지워야 합니다. 이 벌점 칸은 하나를 채울 때마다 -5점으로 반영됩니다.
색깔 트랙 두 개가 잠기지 않아도, 누군가 벌점 칸 네 개를 다 채우면 - 네 번이나 지울 수 없는 상황을 겪었다면 - 이 때도 게임이 끝납니다.
승자는, 당연히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비대면 상황에서는, 아이들이 주사위를 굴리지 않고, 교사가 주사위를 굴립니다. 아이들은 모둠을 이루어줍니다.
교사가 주사위를 굴리는 상황은 화면영상기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여집니다.
1모둠 차례에 교사가 주사위를 굴린 후, 모든 아이들은 하양 주사위 두 개가 만드는 눈금의 합에 해당하는수를 지우고, 1모둠 아이들은 한 번 더 하양 주사위 한 개와 색깔 주사위 한 개를 고른 후 눈금을 합하여 자신의 트랙에 반영합니다. 물론, 같은 모둠이라고 같은 수를 지울 필요는 없겠죠. 한 모둠을 이루는 친구들은 그저 같은 차례를 공유할 뿐이고, 교사는 두 번 지울 차례를 지정하기 위해 모둠을 정할 뿐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다섯 모둠 정도 정하여 주사위를 굴리면서 게임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저도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비대면 상황은 반쪽짜리 상황입니다. 이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결국 보드게임은 컴포넌트를 함께 다루면서 서로의 관계망을 증진시키는 놀잇감인데, 그걸 배제한 채로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빨리 상황이 좋아졌으면 합니다. 컴포넌트를 다루어가면서 서로의 관계망을 확인하면서 놀이할 때, 아이들의 놀이는 가장 즐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