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학원의 눈속임
학원의 눈속임
학원의 눈속임은 오랜 전통입니다.
고 1 여름방학 동안,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까지 버스를 타고 방학특강을 진행한다던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가는 것이 고달픈데다가 마침 제가 다니는 학교의 개학이 빨라 특강 기간을 다 채우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두 달이라는 기간을 지낸 학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의 인연은 없던 그 학원의 외벽에, 제가 대학 들어가던 그 해 겨울에 크게 플래카드가 붙었습니다. 서울대 누구 외 몇 명, 고려대 누구 외 몇 명, 연세대 누구 외 몇 명 등등등이 표시된 플래카드 말입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저도 그 중 '외 몇 명'에 카운팅되어 그 학원의 실적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 학원에 두 달 동안 몸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그 학원에서 저를 마치 대학에 진학시킨 것처럼 그렇게 포장하여 드러내는 것은 엄연한 눈속임입니다. 그 학원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잘 모르고 다니다가 별게 없어서 때려친 것일 수도 있는데, 그 과정은 없이 결과만 남은. 그것도 선별된 결과만.
요즘 학원의 눈속임은 한 발 더 나아간 듯 합니다.
학원 등록 전 레벨 테스트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특히 어학원 등록 전 레벨 테스트는 이제 당연한 과정처럼 인식되는 듯 합니다. 레벨 테스트를 통해 비슷한 실력끼리 반을 구성한다고 하는데, 어학원에서 그런 분반을 과연 학생 성장과 발달을 돕기 위한 기제로 사용하고 있는가는 의문이 있습니다. '레벨'이라고 하는 단어가 가지는 위력은 상당히 큽니다.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만 너무 뒤쳐지는 것은 아니야? 라는 생각에 가까운 학원을 찾게 되고, 등록 전 당연하게 여겨지는 레벨 테스트를 한 후 상담실장과 마주 앉아서, 학생의 수준이 저희 학원에 다니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많이 쳐지는 것처러 보입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학부모의 공포심은 하늘을 치솟아 오릅니다. 너무 늦었나, 라는 감정적인 생각이 이성적인 판단을 앞지르게 되고, 이제부터 이 부족함을 따라가기 위해 학원을 뺑뺑이 돌리는 일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학원에서 배우는 그 많은 영역들이 아이의 영어 구사 능력을 키워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입시 시스템과, 영어 사용을 전혀 하지 않아도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언어 사용 상황 때문인데, 결국 초등 수준에서 몇 년 씩 어학원에 다니면서 레벨업을 하지만, 결국 고등학교 올라갈 때쯤 보면 모든 영어 교육은 독해(와 그에 부수하는 어휘)로 수렴합니다. 그러니 초등 단계에서 그것을 열심히 하더라도 나중에 보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비슷비슷한 수준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도 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면 나중에 영어 구사 능력이 늘지 않겠는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려면 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는(모국어로써의 영어, 혹은 ESL) 곳에서 일상적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경험이 훨씬 중요합니다. 국어 사용을 생각해보자면, 우리가 어릴 적에 국어를 구사하기 위해서 어휘, 듣기, 문법, 독해, 쓰기, 대화 영역을 구분하지 않잖습니까? 어학원의 레벨 시스템으로 학생의 영어 구사 수준이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그저, 내 아이의 수준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서 공포심을 가지게하는 역할을 할 뿐이죠.
이런 어학원 시스템의 구체적 사례를 두 가지 정도로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어학원의 단어 시험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스트레스 받아하는 것인데요. 어떤 어학원을 보면 한 타임에 50~100개 정도의 단어를 외우게 하여 시험을 치룹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외우는 단어 중에는 어처구니없는, 평생 한 번 들어볼까 말까한 그런 수준의 고유명사들도 볼 수 있습니다. 외우게 하는 단어의 수준이 정제된 수준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보통 1주일에 세 타임 정도의 수업이 진행되니까, 어림잡아 한 주에 150개 정도의 단어를 외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52주. 그냥 50주라고 퉁치면, 학생들은 1년 동안 7천 5백개의 단어를 외웁니다. 중요한 단어는 줄기차게 외울테니, 중복된 것 빼고 넉넉하게 1년에 3천개씩 외운다고 하면, 3년이면 9천개 정도의 단어를 외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단어 수준이 3천 5백단어 수준 정도가 된다고 하죠? 어학원 1년만 다니면 어휘 수준이 비약적으로 늘어야하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어학원을 다녀도, 우리 아이의 어휘 수준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어 시험 때문에 영어에 대한 거부감만 잔뜩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아이러니하지만, 수능 영어 듣기평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네이티브는 굉장히 또박또박 천천히 느리게 말합니다. 중학교 3학년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수준. 네이티브가 조금만 빨리 말해도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학원에서 어릴 적부터 듣기 연습을 그렇게 많이 해도, 막상 써먹을 곳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과유불급인 셈이죠.
게다가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는 시점에서, 어학원의 효용은 내신 대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시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어학원의 효용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 오랜 시간을 그 어린 나이부터, 아이 스스로도 모르는 효용을 위해서 그 자리에 앉혀 둘 것인가. 저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학 학원에서는 주로 선행 학습의 방식으로 이런 눈속임을 불러 일으킵니다. 앞선 글에서도 두드린 바 있지만, 수학 학원의 시스템으로는 구조적으로 선행 학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나치게 되면 학원에서도 걷잡을 수 없는 선행의 굴레로 빠져들게 됩니다.
클래스를 만들었는데, 이 클래스의 아이들이 말썽도 안 일으키고 과제도 잘 해오고 그러면 책이 빨리 끝나게 되고, 그러면 다음 책, 다음 책 하다가 한 7~8개월만에 한 학년 과정을 다 끝냅니다. 그러면 다음 과정. 그리고 또 다음 과정. 그래서 빠르게 진도를 나가면 중학교 1학년 짜리들이 중 3, 고 1 수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눈속임이 발생합니다. 중학교 1학년 짜리 내 아이가 고 1 문제집을 사달라고 하면 학부모는 아이의 진도와 아이의 성취수준을 동일시합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과대평가하게 되지요.
내 아이의 수준을 정확하게 알려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 결과를 보면 됩니다. 점수가 퍼펙트하지 못하다면, 선행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신호라고 여기면 됩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중학교 1~2학년 과정을 나가고 있다는 학생이, 평가 점수가 퍼펙트하지 못하다면, 그 선행은 문제가 있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수학 교과의 특성이 그런데요. 수학은 선행 학습이 반드시 현재 진도를 품게 되어 있습니다. 2차 방정식을 해결하는 학생은 1차 방정식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이 가능한 것이죠. 물론, 2차 방정식 풀이가 가능한데 1차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해결 방법만 알기 때문인데, 어느 순간엔가 과부하가 걸리는 시점에 크게 폭발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서 두드릴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어쨌든, 선행은 성취수준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데 진도만 나가는 경우도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모릅니다.
거기에 불을 지르는 것이 '방학특강'입니다. 수학 학원의 방학 특강은 현재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더 빠르게 진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수학 학원은, 결코 현재 진도를 다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진도를 소화할 수 있는 극소수의 학생들 이외에는 서서히 한 명, 두 명씩 떨어져 나갑니다. 그 몇 명의 학생들 때문에, 나머지 학생들이 함께 강의실에 앉아 학원비도 내고 방학특강비도 내면서 학원 살림을 돕는 것이죠. 그리고, 그 극소수의 소화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결정적인 시점에서 떨어져 나가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도 아마 뒤에서 두드릴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학원에서의 테스트가 분반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원 등록을 허용할지의 여부로 쓰인다는 말을 듣고는 더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생을 가려서 받는다니... 학원은 실패할 수 없는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눈속임이죠. 싹수 있는 학생만 받아서 성과를 과대포장하는 것. 공교육도 그렇게 학생을 가려서 받으면 성과를 과대포장할 수 있습니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선남선녀들을 모아두고 그 속에서 정제된 경쟁을 시키는 것. 점점 학교와 학원이, 배움을 창조하는 공간이 아니라, 있는 것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대기만성이라는 단어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스템이 공고하게 구축되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어릴 적부터 관리받은 아이들, 그 관리 가운데에서 (소위) 성공한 아이들만이 계속 성공을 구가할 수 있는.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 사회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라고 하는 이들의 작태가 그래서 비판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관리받아 자란 이들이,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작태. 부모의 양육과 교육기관의 교육이 향해야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곰곰히 생각해 볼 지점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자녀에 대한 학부모의 공포심, 이 공포심에 대한 사교육의 눈속임, 그리고 해결받지 못한 채 점차로 커지는 학부모의 또다른 공포심이 우리 아이들을 피곤한 일상으로 밀어넣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밀어넣고 있는지 다음 글에서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