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선생님 #1. 나는야 엄마 선생님
한 엄마가 있다. 딸래미는 6학년이 되었지만, 아직 새 학년 시작은 맛도 보지 못했다. 1월 10일에 종업식을 했으니 두 달이 넘게 집에 갇힌 처지다. 이제 제발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교에 못 가는 상황이 불쌍하면서도 종일 탱자탱자 노는 꼴이 너무나 보기 싫다. 요리에 흥미 없는데 삼시 세끼 밥 해먹이려니 그것도 고역이다. 늦잠 자는 것도 보기 싫지만, 10시까지 자고 일어나면 아침 겸 점심 한 끼와 저녁, 총 두 끼만 먹이면 되니 늦게까지 자도록 내버려 둔다. 학교는 휴업인데 학원은 3주 만에 수업한다고 연락이 왔다. 안 보내려니 본전 생각이 나고, 보내려니 안전이 걱정이다. 아직 아이들도 어떤 분인지 모르는 담임 선생님 전화를 받았다. 서로 어색하게 통화하다 전화를 끊었다.
한 선생님이 있다. 사상 초유의 개학 연기 사태를 맞았다. 3월 첫날 할 활동지와 아이들에게 나눠줄 유인물을 프린트해서 교탁에 올려놓은 지 3주가 다 되어 간다. 매년 돌아오는 새 학기,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들이 지겹다 지겹다 입에 달고 살다가 벌 받는 느낌이다. 지겹단 말이 쏙 들어가도록 1년 생활 리듬이 완전히 깨졌다. 역시 말조심해야겠다 느낀다. 원래라면 폭풍 같았을 3월을 다소 여유롭게 보내자니, 이런저런 고민과 준비를 할 수 있어 좋으면서도 불안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폭풍전야라는 말의 의미를 체감한다. 아직 아이들 얼굴도 못 봤는데 학급 SNS를 열었다. 가정학습을 안내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을 안다.
6학년 딸을 둔 엄마 김수연과 6학년 담임인 교사 김수연.
바로 내 이야기다.
어제 딸 아이 친구가 놀러 왔다. 같이 닭발을 시켜 먹으면서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이야기 끝에 그 아이가 “제가 아는 언니가 많아서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나는 들고 있던 닭발을 떨어트릴 뻔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물었다. 그 언니들은 어떻게 아느냐, 언니들이라고 하면 다 노는 아이들 아니냐 등등…. 그 친구는 그런 언니들 아니라고, 전교 1등 하는 언니도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학교에서 보면 6학년 여학생들에게 중학교 언니들이 크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학생 언니들이랑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는 게 목적인 것은 본 적 없다. 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마 모두 다 알 것이다. 그러다 보니, 딸 아이 친구 한 마디에 그만 심장이 내려앉고 만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우리 딸이 얘랑 친하게 지내면, 이 아이가 친한 언니들이랑도 친해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 다음은 불 보듯 뻔하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다른 엄마들도 순간적인 반응이 나와 같을까? 내가 6학년 아이들을 너무 많이 보아와서 그런 것은 아닐까?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밥 먹고, 게임기를 잡았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주야장천 노는 것 같아 약간 거슬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에 안 오는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가정학습을 안내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얘기해왔다. 하라고 해도 하는 아이가 거의 없을 거라는 이유였다. 자기주도학습을 잘해온 소수의 아이만 관심을 가질 거로 굳게 믿었다. 결국, 나는 아이들은 집에서 내내 놀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길어진 방학 동안 우리 반 6학년 아이들은 아마 신나게 놀고 있을 거라 예상하면서도, 집에 있는 6학년이 마냥 노는 것은 꼴 보기 싫은 나는 ‘엄마 선생님’이다. 올 한해 겪을 수많은 일 중에서 몇 가지 엄마 선생님 이야기를 ‘엄선’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