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등단기 #1. 일기 대신 수필을 쓰세요.
"독자가 있는 글쓰기를 하세요."
14년 차 교사입니다.
신규 발령 때부터 매년 새로운 걸 시도하느라 꾸준히 한 게 없습니다.
딱 한 가지만 제외하고요.
바로 ‘글쓰기’입니다.
발령 1년 차에는 매일 일기 검사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아이들도 고역이었지만 저도 무지 힘들었습니다.
모두 읽고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현실과 타협해서 결국 일주일에 한 편 정도만 쓰게 되었습니다.
2011년부터는 일기 대신 수필을 씁니다.
일기와 수필의 다른 점은 독자의 유무입니다.
학기 초,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독자가 있는 글쓰기를 하세요.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이 본다고 생각하고 쓰세요.”
결국에는 일기 같은 수필을 써오지만 제가 자신의 글을 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다.
저희 반은 수필을 쓸 때 3가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3월 세 문단을 시작으로 매달 한 문단씩 늘려갈 것.(대신 2학기에는 2주에 한 편.)
둘째, 각 문단에 문장은 5개 이상으로 할 것.
셋째, 글쓰기 전에 마인드맵으로 개요를 짤 것.
그중 첫 번째 원칙은 작년부터 바꾸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해서요.
8월부터 졸업할 때까지 여덟 문단으로 계속 쓰도록 했습니다.
작년 아이들은 이제 막 중학생이 되어서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와 수필을 썼던 아이들은 모두 수필쓰기가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 하나만큼은 1년 동안 꾸준히 끌고 가야겠다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된 것도 아이들이 해준 피드백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의 수필이 아까웠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쓴 글을 책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가출판입니다.
아이들이 손으로 쓴 수필을 한글 파일로 옮겨서 진짜 책을 만들었습니다.
부크크라는 사이트를 통해서요.
그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도전한 아이들 다섯 명과 저는 아주 뿌듯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올해는 더 많은 아이들이 책을 완성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기본 원칙은 그대로 하되, ‘클래스 123’ 보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공책에 쓰는 대신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학년 말에 한꺼번에 컴퓨터로 옮기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시도하게 된 방식입니다.
대신, 어플이나 사이트 이용이 어려운 친구는 공책에 써서 제출해도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행히도 올해 저희 반에는 컴퓨터 이용이 어렵다고 하는 친구는 없습니다.
오늘, 올해 아이들과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 반은 수필을 쓸 거예요.” 하면서 2년 전 선배들이 만든 책을 보여줬습니다.
아이들이 “우와~”하고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정말 멋지다.”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우리 같이 마지막에 책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 물으며 아이들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아이들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기특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클래스 123에 보드를 만들었고, 아이들은 앞으로 거기에 댓글로 수필을 제출하게 됩니다.
교사는 재댓글로 아이들 글에 피드백을 해주면 됩니다.
아이들이 글 쓰게 하는 데에는 교사의 피드백이 필수이겠지요.
‘수필작가 등단기’라는 제목으로 보드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 이름으로 게시물을 작성했고, 다음 주부터 아이들은 1년 동안 댓글로 자기 글을 모을 예정입니다.
댓글을 작성한 본인과 선생님만 보도록 설정하는 방법은 다음 편에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feat. 몽당분필 이민영 선생님)
실패기가 될지 성공기가 될지 모르는 어린이 작가 ‘강제’ 등단기가 저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