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선생님 #2. 맹모삼천지교
2006년에 처음으로 6학년 아이들을 맡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중입 배정 업무라는 것을 해보았다. 중입 배정 시 제일 민감한 사안은 바로 위.장.전.입.신규인 내가 봐도 이상한 주소의 등본을 가져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담임인 내가 원상복구 시킬 방법은 특별히 없었다. 의심받을 때 제출해야 하는 서류까지 완벽하게 갖춰오기 때문이었다. (물론 의심이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지금 기억나는 아이는 두 명이다. 내가 알기론 둘 다 A 중학교에 진학했어야 했는데, 고개 넘어 한 명은 B 여중, 한 명은 C 남중에 배정되었다. 또 다른 아이 하나는 학군이 좋은 다른 지역으로 2학기쯤 전학 간다고 얘기했었는데, 그대로 있다가 A 중학교로 갔다. 그 아이는 외고에 진학했다가 사관생도가 되었다.
몇 년이 흘렀다. 아주 얌전하고 예의 바르고 차분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4학년 때 내가 담임했었다. 아이 부모님이 조금 늦게, 그리고 어렵게 낳은 외동딸이라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는 티가 많이 났다. 그 아이는 4학년 때 나와 잘 맞아서 학년이 바뀌어서도 나를 잘 따르고, 종종 교실에 찾아왔다. 아이어머니도 가끔 연락을 주시고, 궁금한 게 있으면 종종 나를 찾으시곤 했다. 6학년 2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그 아이가 갑자기 전학 간다고 했다. 이 근방에서 학부모들이 제일 선호하는 D 중학교 진학이 이유였다.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라 적응이 쉽지 않을 텐데도 6학년 2학기에 전학 가는 것을 보니 뭔가 씁쓸했다.
6학년 담임을 오래 하다 보니 다양한 사례를 본다. 한번은 D 중학교 학군이 아닌 한 아이가 그 근방에서 혼자 덩그러니 D 중학교에 배정받았다. D 중학교를 학부모들이 선호하기도 하니 정작 배정받은 학부모는 그대로 진학시키려 했다. 그런데…. 주변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왜 그 아이만 D 중학교에 배정받냐, 다시 배정해서 우리 동네 아이들이랑 같은 중학교에 보내라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 아이를 5학년 때 담임했던 나는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아이가 못 갔으니 다른 아이도 못 가게 해야 한다는 심보를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걱정되었다.
배정통지서가 나오면 아이들에게 일장 연설한다. 좋고 나쁜 학교는 없다, 어디를 가나 자기 하기 나름이다, 나도 우리 동네에서 제일 기피하는 중학교를 나왔다, 너희 선배가 그때 가기 싫다던 중학교 가서 아주 잘 컸다 등등…. 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늘 진심이었다. 굳이 불법과 이사를 감행해 가며 중학교를 배정받아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담임 잔소리에 차마 배정통지를 받고 다른 말을 못 하지만, 아이들 표정을 보면 대충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사실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주변에서 듣는 얘기가 워낙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우리 딸이 6학년이 되었다. 중학교 배정과 진학에 대해 뚝심 있게 이야기하던 교사 김수연은 엄마일 때도 그럴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딸 아이 중학교 배정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를 보고 너무나도 놀랐다. 지금 우리 집에서는 100% B 여중 배정이다. 아주 오래전엔 위장 전입까지 해가며(의심이긴 하지만) 보내고 싶어 했던 학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봐도 학교 주변 환경도 그렇고 소문도 그렇고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교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가계 사정에 맞춰 이사 가자니 하필 또 A 중학교 학군이다.
여러 고민 중, 우선 급한 게 이사였다. 부동산 사이트를 여러 날 뒤지다가 오래되긴 했지만 저렴한 아파트가 매물로 나와서 보러 가게 되었다. 새 아파트 사이에 낡고 오래된 아파트. 그렇게 평지에 살고 싶었는데 또 언덕이었다. 아니, 언덕이라기보다 산에 가까웠다. 부동산 사장님과 약속했으니 올라가긴 하면서도 이 아파트는 아니구나 하던 차였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선호한다는 그 중학교 정문이 보였다. 내가 보러 간 아파트 입구와 도로 하나 차이였다. 물어보니 이 아파트가 그 학교 학군이라고 했다. 본격적으로 아파트를 구경했다. 30년이 넘었으니 오래된 느낌은 말할 것도 없고, 인프라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난, 그날 저녁 바로 집을 계약했다.
집을 충동 구매하다니…. SNS에 뜬 광고 보고 혹해서 이것저것 충동 구매한 적이 많다. 그런데 이건 부동산이 아닌가. 게다가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 주변보다 절반이 싼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통도 불편하다. 제대로 된 상가도 없다. 내가 출퇴근하는 것도, 딸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한 학기를 그대로 다니는 것도 무지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대출 끌어모아 집을 산 이유는 바로 ‘학군’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보다. ‘맹자 엄마가 된 기분인데?’ 어처구니없는 말로 자신을 위로한다.
계약하기로 하고 이것저것 살펴보니 정말 살기 불편한 곳이다. 집값도 정말 안 오르는 곳이다. 투자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 딸 중학교 3년은 일단 마음 편안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