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 #1. 알고 보면 이름 없는 귀신들을 위한 이야기(귀신 감독 탁풍운)
이 책을 구매해야지 했다 잊어버리는 것을 반복했었다. 그게 한 다섯 번 정도 되는데, 온라인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난감했다. 매번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귀신도 들어가고, 풍자도 들어가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안 떠올라 비룡소 홈페이지를 몇 번이나 들락거렸는지 모른다.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제목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게 조금 안타깝다. 물론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진 출처: 비룡소 홈페이지)
천계에서 태어나 신선이 되고 싶은 탁풍운이 주인공이다. 스승은 조 신선이다. 조 신선은 탁풍운의 행실을 보고 수행 점수를 매긴다. 점수는 상점과 벌점으로 나뉘었는데, 3년 동안의 점수를 합산해 상점이 벌점보다 높아야 신신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 탁풍운은 조 신선과 옥탑방에 살며 수행 점수를 쌓아 나간다. 어느 날, 풍운이 실수로 귀신 출석부를 도둑맞게 되는데, 이것은 커다란 벌점으로 이어진다.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스토리 구성이 단순하다고 느껴진다. 신선이 되고 싶은 아이와 스승, 악귀와 착한 귀신의 등장, 권선징악은 귀신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실제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맞으면 커졌다가 쓰다듬으면 다시 작아지는 조마귀하며, 귀신 출석부에 이름이 없는 구멍귀라는 인물을 보고 작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다. 귀신이 접근할 수 없도록 막는 결계를 치라는 부분이 나와 찾아보니 실제로 그런 단어가 있었다. 역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기초 지식, 탄탄한 조사 자료가 어우러져야만 재미있는 동화가 탄생하는 것 같다.
내가 제일 감탄한 부분은 귀신을 보는 서늘이와 그 아이의 친구 란비에 대한 내용이다. 서늘이와 란비는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폐렴에 걸린 란비는 그만 죽고 만다. 그리고 란비는 구멍귀가 되었다. 귀신 출석부에 이름이 없는 것이다. 구멍귀가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 작가가 왜 이 동화를 썼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사회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이들은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한다. 아마도 이 책은 아이들이 무섭다기보단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재미난 귀신 이야기였다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책장으로 밀어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그러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귀신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보였다. 물론, 사건의 전개가 지루하지 않고 힘 조절이 잘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마지막쯤 등장하는 구멍귀들의 이야기에 꼭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동화가 모두 끝난 다음 이어지는 작가의 말도 인상 깊었다. 북유럽 어느 나라에서 만난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 그때의 경험이 귀신 감독 탁풍운을 쓰는 데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 마무리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귀신이 난무하고, 무당까지 등장하는 이야기를 쓴 작가는 개신교 신자였다. 이 책 최고의 반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