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살림] 노래로 여는 아침 - 가을 우체국 앞에서
비 갠 뒤 기온이 뚝 떨어진 맑고 쾌청한 가을날의 아침.
이른 아침 학교에 나와 독서하는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윤도현 - 가을 우체국 앞에서(2014ver)
김현성 작사, 작곡
#가을 #은행잎 #단풍 #아름다운것들 #시간의흐름
#원곡 #리메이크 #세대를넘는명곡
10월, 단풍이 완연하게 물든 날.
일찍 눈을 떠 선선히 학교로 나선 날.
무심코 반팔을 입고 밖에 나서면 오소소 닭살이 돋아 가을을 실감하는 그런 날.
목요일이라 마음이 가볍지만 유일한 6교시 날이라 영 몸은 무거운 날.
그런 날, 나는 교실에 있고, 아이들은 화면 속에서 책을 펴든 원격 수업하는 날의 아침 독서 시간이다.
오늘은 아침독서와 노래로 여는 아침을 같이 하기로 한다.
노래로 여는 아침은 원래 화요일이고, 독서할 때는 책장 넘기는 소리만 배경음으로 하고 있지만,
학교 전체적으로 화요버스킹을 운영하는 석 달 동안은 가끔 아침독서 시간에 작은 크기로 한 곡을 들려 준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틀어 놓고,
난 김현수 선생님의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을 읽다가, 화면 속 우리 반 아이들을 쳐다 보다, 창밖의 하늘로 시선을 보내다, 이제 막 잎끝이 노르스름해진 은행나무를 본다. 두어 주만 늦게 들려줄 것을 그랬나.
2014년 버전은 전주 없이 윤도현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책에서 눈길을 떼고 3학년 아이들은 "저 이 노래 알아요!!!", "우리 아빠가 되게 좋아해요!!!"라고 이야기하거나 채팅을 보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나왔어요!!!" 김대명의 목소리도 곧고 맑아 여러 번 듣게 된다.
부모들이 듣던 곡을 아이들은 새로운 버전으로 접하고, 함께 즐기게 된다.
<열정>이 있었고, <가을 아침>이 있었고 <슬픈 인연>이 있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는 시와 다름없다.
청소년 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이 곡을 듣고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에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지만,
살아 보니
"한 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부분이 마음을 두드린다.
곱씹을수록 힘을 주는 구절.
이 가사를 쓴 사람은 누구였을까?
난 1994년 윤도현 1집에서 처음 불린 줄 알았는데,
1992년 종이연 음반에 김현성 작사, 작곡으로 처음 수록되었다.
윤도현은 당시에 키보드, 신디사이저를 맡았었고, 자신의 1집에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불러 발매했는데, 윤도현의 목소리가 더 유명해졌다.
김현성씨는 <이등병의 편지> 원 작사, 작곡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이 듣고 불렀는데, 이제야 알게 되어 참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아무리 리메이크 곡이 사랑을 받아도 원곡 가수, 원곡자의 음색과 표현에는 비할 데가 없다는 말들을 한다.
세대를 넘어도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이유. 노래에 담긴 감성에 우리가 함께 흔들리고 있다.
"여러분들은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리고 작지만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것. 떠오르는 모습이 있나요?"
가사를 음미해 보고,
"부모님 때 나왔지만, 지금 여러분도 알고 있는 곡들이 있나요?"
원곡과 다시 부른 곡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아침.
하늘은 더 높아지고, 아직 햇볕의 기세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 아침.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다시 들으니 아이들이 말수가 적어졌다.
좋아요, 또 들어요, 저도 알아요 대신 책으로, 하늘에 머무는 열 살 아이들의 시선.
조금은 깊어진 것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