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살림] #9. 학부모 총회의 대화 점유율
볼 점유율과 유효 슈팅
몇 년 전 축구 경기를 보다가, 인상 깊은 지표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볼 점유율"과 "유효 슈팅"이었습니다.
순간의 인상, 혹은 최종 결과만으로 누가 우세했는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공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고 과연 얼마나 유효한 기회를 만들어 갔는지를 실시간 데이터로 보여주는 데에 새삼 감탄했었습니다.
"점유율"은 지금도 제가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할 때마다 생각하는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주도적으로 참여하되 내가 다른 이의 공간을 얼마나 남겨 두는지, 상대가 나의 응답을 기다려 주는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고려하며 말하는지 등이지요.
언젠가 어느 포스팅에서 대화의 양은 1/N(전체 참여자 수)여야 바람직한 의사소통이 되고, 자신은 말이 많아지는 것을 깨달으면 말을 줄인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는데, 원문이 기억나지 않네요. 기계적으로 맞출 수는 없겠지만, 대화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대화 참여자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지요. 매년 아이들에게도 대화 점유율을 이야기해주며 서로 보조를 맞추어 소통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합니다
한편, 목적의식적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유효성, 즉 의도를 드러내는 말을 날카롭게 꺼내는 순간이라든가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말을 분위기를 타고 드디어 털어놓게 되는 강렬한 순간, 또는 직소퍼즐처럼 서로가 늘어놓았던 말들이 딱 공감되는 순간의 소름돋는 느낌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순간들이 대화를 나누는 상대와 함께한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뿐만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 기억되지요.
수업이라면 핵심질문이자 수업 목표가 드러난 순간이,
상담이라면 문제가 명료해지는 상담적 대화의 순간이 있었는가가 유효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공개수업, 학부모총회 참석을 부탁드렸습니다.
수요일은 공개수업과 학부모 총회가 있었습니다.
공개수업에서는 6학년 사회 <수원화성 안내지도 만들기>를 주제로 하였습니다.
알림장에 학부모 총회에 꼭 참석해 달라고 말씀을 두세 번 드렸지요.
제 수업의 분위기, 우리 반 수업에서 질문과 서로 가르쳐 주기가 차지하는 위치, 협력학습 방법 중 전문가 학습 소개, 교실 공간 활용, 발표 방법, 그리고 학생들의 현재 상태가 드러날 수 있기를 바라며 수업을 구상하고, 진행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져서 안내지도를 만드는 활동은 다음 시간으로 미루었지만 나름 실제 우리 반의 모습, 제가 만들고 싶은 수업의 기본 모습, 학생들의 질문이나 의견을 수용하는 제 방식 등은 어느 정도 보여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부모 공개수업에서는 제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지는 않고, 학부모님들께서도 자녀들에게 관심을 집중하시게 되지요. 긴장이 되었는지 뒷자리가 가득 찼다는 것, 예상보다 많은 열 대엿분 정도 참석해 주셨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납니다.
학부모총회에서 교사의 대화 점유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이번 학부모 총회에서의 대화 점유율을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25분간 방송으로 진행된 학부모 총회 및 연수
학부모 총회는 전교 학부모회 임원 확인,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대표 확인, 학교폭력/장애교육 연수를 거치고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학급 학부모 총회를 하고, 그 이후는 각 학부모회 학급 대표들 연수로 이어집니다. 방송으로 25분간 진행되는데, 본인 아이의 자리에 앉아 주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학교 일람과 7장의 유인물을 나누어 드렸는데, 아이들에게 미리 나누어 주었다면 오신 분과 안 오신 분을 구분짓지 않고 편하게 배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해 손이 고생
2. 25분간 말했던 나
제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의 슬라이드 수는 25장이었습니다. 수업에서, 생활지도에서 제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하는지 보여드리려 했었습니다. 클래스팅에 이미 공유했던 학생 활동 사진을 열 장 정도 넣고 저게 어떤 장면이며, 어떤 교육적 의도를 가졌고,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짧게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수업 참여자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선생님은 놀이만 해", "우리 선생님은 귀찮은 것을 자꾸 시켜", "우리 선생님은 회의를 길게 해" 처럼 왜곡된 인식을 가정에 전달할 수도 있겠지요. 지식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량, 그와 관련된 우리 반 시스템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6학년 학생의 특징, 바라는 말씀 등을 담습니다. 조금 길다 싶었지만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저의 철학을 말로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까. 공들여 설명합니다. 제가 업그레이드 시켜 온 교육방법들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말이죠.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3. 부모님 말씀 15분
여기까지 하고 나자 아뿔싸, 학부모님 말씀을 듣고 싶었는데 학부모회 임원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계획은 참석한 부모님의 삼각이름표를 만들고, 김성영(똘밤이 엄마) 처럼 아이 이름과 본인 이름을 적고, 이영근 선생님의 추천처럼 아이 칭찬(자랑스러운 점) 2각지, 걱정되는 점 1가지 말씀해 달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름표는 두고, 칭찬과 걱정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걱정되는 점은 그 자리에서 답변드릴 수도 있지만,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규칙을 만들면서 해결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ㄱㄱ이 어머니께서 "우리 애는 말을 잘 해요. 사랑한다고도 잘 말해요."로 시작해 주셔서 다른 분들도 편안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내 아이 칭찬할 때 어색하고, 아이 친구 칭찬을 들으면 부럽기도 하고, "책 읽느라 밤에 잠을 너무 늦게 자요" "그런 걱정을 해봤으면 좋겠네요" 처럼 아이를 읽을 수 있는/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인상을 들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ㅎㅅ이 어머니께서 "작년 담임 선생님은 ~ 했지만 선생님은 ~해서 좋습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여섯 번 이상 담임을 만나고 계시기에 비교가 되시리라 이해합니다. 다만, 그 선생님께서도 의미 있는 교육을 하셨을 거예요. 또 아이가 받아들이는 데 합이 안 맞았을 수도 있고, 선생님마다 강점과 약점이 차이날 수 있답니다. 제가 이전 담임선생님은 잘 모르니 저의 방식을 믿고 살펴봐 주세요." 라고 답해드렸습니다.
ㄷㅎ어머니께서는 "발표력이 부족하니 선생님께서 자주 눈빛을 주시고, 억지로라도 발표할 기회를 많이 주세요"라고 하셨는데요, 저희 반이 수줍은 아이들이 여럿 있다 보니 발표력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저는 발표 방식을 다양화하고, 자신 있게 표현하려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다만 꼭 여럿 앞에 발표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둠발표, 짝토론, 짝이 되어 토론하기 등을 활용하고 있으니, 생각공책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정에서 가지며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일 년 동안 지켜봐 주세요." 말씀드렸습니다.
4. 도서명예교사 부탁ㅜㅜ
저희 학교는 학부모회 2분, 도서명예교사 2분을 지원 받아 운영합니다. 녹색학부모활동은 3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 모든 부모님이 하십니다. 학부모 참여가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어진 일을 누군가 나누어 맡아 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임원 부모님께서 반/자발적으로 맡으시는 경우가 많죠. 도서명예교사 한 분이 필요한데, 시간 내어 오신 분들께 더 부담을 드리기도 조금 그래서, "도서명예교사는 한 분만 지원하셔서 한 자리가 공석입니다. 꼭 지원 부탁드립니다."라고만 말씀드리고 말았습니다. 문자로 학부모회 지원하셨던 학부모님께, 학부모회는초과되었는데 도서명예교사는 어떠시냐고 했더니 딱 거절하셔서 저도 약간 마음이 그랬습니다. 아직도 지원하신 분이 없네요.
동학년 선생님들께 그런 상황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김선생님, 학부모회 조직부터 하셨어야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랬어야 했을까? 아니면 임원 어머니들께 전화 드려서 지원자 없으니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려야 했을까. 알림장에 며칠을 "한 분 지원 부탁드립니다"라고 썼는데, 콕 짚어서 더 얘기를 했어야 했을까요. 씁슬한 기분이었습니다.
말함으로써 참여하고 마음이 모이게 됩니다.
칭찬&걱정시간에 어머님들께서 처음에는 당황하셨지만 정말 활기차게 우리 아이, 다른 아이를 떠올리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사의 대화 점유율을 낮췄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이어진 학부모 상담 기간에서,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여쭤 보았더니, "공개수업, 학부모 총회 시간에 다 보여 주셔서 궁금한 것이 없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라고 여러 분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학부모 총회에서 교사가 먼저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는 것도 부모님들께서 바라는 부분이겠지요.
<대화 점유율의 적당한 정도>은 개방성, 체계성, 경청과 공감에 따라 정해집니다. 대화가 끝난 뒤 얼마나 서로 만족스러운가를 살펴보면 되겠지요. 앞으로 저의 대화 점유율 분석은 계속될 것입니다.